겨울은 춥고 눈도 내려줘야 겨울 답다고 했다. 막상 비 온 뒤 영하로 떨어진 날씨는 어깨를 움츠리게 했고 밖에서 키우는 해피도 걱정이 되었다. 태생부터 밖에서만 자랐던 아이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어련하게 엄마가 잘 보살펴 줄 것을 알지만 퇴근하고 갈 때는 항상 마음이 짠했다.
하루 24시간 중 내 자식보다 더 오랜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해피라서 그런가 아기였던 몸이 2.5배로 커버렸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할 땐 영락없는 2개월짜리 강아지였다.
레트로 느낌 벽돌에서 한 컷
남향집답게 햇살이 비칠 때면 이렇게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슬렁어슬렁 거리기도 하고 멍타임을 즐겼던 가을이 지나갔다. 예쁜 옷 두어 벌을 사줬는데 물고 뜯고 잘근잘근 씹었다고 하니 여동생이 겨울 옷 한 벌을 선물했다.
이것이 뭐냐 아우!! 뻑뻑하다. 걸음걸이가 어색하게 뒤뚱뒤뚱 꺾기 하는 로봇이 되었다. 벗고 싶은데 맘처럼 안되는지 연신 고개를 흔들고 어색하다.
이 옷 맘에 안 들어!! 내 허리 길어 보이잖아요. 중견처럼 보이는 거 딱 싫거든요. 원래 옷 입혀줘! 안 그러면 다 물어서 없애버릴 거야. 미안 그냥 입으렴 날이 춥다. 며칠 입더니 적응을 했고 털 색이랑 찰떡같아서 잘 어울려 디스커버리 못지않다. 실컷 카페에서 놀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상꼬맹아 너도 날 좋아하냐? 내 입에 손가락 넣지 말아 줘!!
너희 엄마가 나 예쁘다고 하랬는데 왜 너를 쓰다듬니?
어머어머 초면인데 내 발은 왜 가져가서 조물딱조물딱 거려 놔줘라!!
아줌마 아기 맨발인데요?? 여보세요 제말 듣고 있죠?
손도장 찍어줄게 다음에 또 만나자 꼬맹아! 근데 나도 4개월이야 우리 친구야. 히히
카페에 아기 손님은 해피를 보자마자 유모차에서 내려 달라고 손짓 발짓 했고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어설픈 발걸음을 옮길 찰나 해피는 모녀를 향했다. 사람을 어찌나 좋아해서 항상 불안했는데 역으로 모녀는 집에서 개를 키운다며 오히려 해피를 만져도 되냐고 물어봤다. 혹시 사고 날까 봐 끝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손님의 반응은 반대라 안심반 불안한 마음 반 뒤 썩였고 한 참을 놀던 아이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문을 나섰다.
내가 팔자를 고칠 상인가
주말에 충주에서 외삼촌과 외숙모가 올라왔다. 우리에게 해피를 소개해 주신 분이자 해피에게는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존재이다. 그날 엄마가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외숙모가 키우라고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런 인연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외숙모는 해피를 보자마자 기절할 듯이 너 어쩜 이렇게 컸냐고 놀라며 그래 어미가 작지는 않았다고 민망해하셨다.
예쁜 옷을 입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시곤 "야 너 시골에서 올라와 팔자 고쳤다"며 시간 맞춰 밥 주고 간식에 깨끗한 옷까지 입은 모습이 영락없이 입양 가서 부내퐁퐁 풍기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곳에 살았다면 목숨이나 잘 부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잘 먹고 잘 자라는 모습이 좋아 해피 간식과 개껌을 주문했다. 첫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에 택배는 도착했고 기분이 좋아 2층에서 놀던 해피를 불러 개껌을 뜯어 줬다. 중간사이즈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개껌은 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살살 녹아내렸다.
딸아이가 하원할 시간까지 해피는 연신 개껌에 초집중을 하며 거의 다 먹어갈 찰나 마지막은 꿀꺽 삼켰다. 아우 저 먹보 굶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진심인지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과 달리 해피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며 항상 깡충깡충 뛰던 아이가 걸음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엄마 빨리 내려와
분명 뭔가 잘 못 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삼킨 것이 탈이 났는지 해피는 아무것도 안 하고 소리도 희미하게 켁 거릴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라 등을 두드려본들 뭐가 될 리 없어 불안하고 무서웠다.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그 사이 해피는 더 상태가 안 좋은 듯했다.
딸아이가 도착하고 이상함을 감지한 아이는 빨리 뭐라도 해보라는 눈짓이었다. 해피를 들어 하임리히법을 했다. 사람한테도 해본 적 없는데 개한테 해본들 개껌이 튀어나올 리 없고 죽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엄마 손에는 고무장갑과 기름이 들려 있었다. 다시 한번 등을 두드리고 하임리히법을 시도해도 안되자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기름을 손에 묻혀서 개껌을 빼내려 애썼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있기 힘들었다. 상황이 빨리 종결되기만 기다리며 먼 곳을 바라봤다. 내 정신은 점점 혼미해지고 죽을까 봐 덩달아 내 몸도 경직되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찰나의 시간이 흘러 해피는 가로로 걸려있던 개껌이 꿀떡 넘어갔다. 기쁨의 감격은 누릴 새도 없이 가족 모두 멍하고 해피도 앉아 있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물을 떠 왔지만 먹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온전히 다시 일어서며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후 물을 마셨다. 해피는 바닥에 흘른 포도씨유를 핥아먹었다. 이렇게 놀라게 해 놓고서 이 와중에도 그걸 또 먹니 미쳤어라며 안도한 말보다 투덜투덜거렸다. 엄마는 야간 근무에 늦었다며 부리나케 나가셨다.
맛있게 열심히 먹던 개껌과 목숨을 살려준 포도씨유다. 정말이지 개껌을 다 내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해피를 보는 사람마다 유치를 빼야 한다며 개껌을 권하던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갔고 먹깨비 해피가 미웠다. 우선 살았으니 더 이상 오늘은 말 안 할게 대신 잘 살아서 내일 만나야 한다 속 마음을 전달했다. 카페 뒷정리를 하고 가면서 행여 죽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저녁에 돌아온 남동생이 아주 잘 있다는 말을 해줬다. 역시나 저녁 사료는 30초를 넘기지 않고 먹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염이 심한 남동생 때문에 털이 날릴까 봐 옷으로 감쌌다.
팔자가 아니라 생명의 은인입니다
시골에서 간택해 데려온 해피의 두 번째 엄마를 소개합니다. 사람도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개에게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주간근무를 하고 돌아와 밥을 주면 항상 아쉬움에 사료 계량할 때 쓰는 종이컵을 물고 다닌다. 그 모습마저 귀엽다고 집 안으로 안고 들어와 한 바퀴 구경을 시키며 같이 셀카 찍는 정성이라면 팔자를 고친 게 아니라 은인을 만난 거나 진배없다.
소로소로 언니 미안해. 제발 개껌 버리지 말아 줘.
내가 천천히 먹도록 해볼게. 거짓말인걸 알지만 저 눈빛을 보고 어떻게 간식을 안 줄 수 있단 말인지.
건강하게 오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