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3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존감은 임금님도 구제 못 한다

by 소로소로 Dec 02. 2024


뜬금없이 형님이 정해준 직업에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은 해야겠고 딱히 뭘 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 어명처럼 내려온 목표를 받잡아 어떻게 하면 취업을 할 수 있을까 검색에 돌입했다. 우선 학교경력은 하나도 없기에 맨땅에 헤딩처럼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잡았다.



소싯적 자격증 취득 몇 번 해본 경험 삼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3가지 정도 자격증이 추려졌고 만만하면서 있어 보이는 컴활자격증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 필기를 5일 만에 취득했다는 글이 있는 걸 봐서 넉넉하게 실기까지 한 달이면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무료동영상 강의도 많아 세상이 좋구나 옛날에 자격증하나 취득하려면 학원등록 설명까지 듣고 비교해야 하는데 집에 앉아서 취득하다니 공짜 세상이구나 감탄이 나왔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동영상 강의는 세상만 좋아졌고 귀와 눈은 20년 전 그것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강사의 딕션은 쏙쏙 내 귀에 들려와 질리지 않았는데 도대체가 무슨 외계어 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냥 늘어지게 듣고 있으면 안 된다는 강사의 말에 일주일 뒤 필기시험 일정을 잡아 둔 것을 슬그머니 2주로 미뤘다. 평일 하루 6시간을 앉아서 강의를 듣고 또 들으며 첫 시험은 경험이라 생각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20년 만에 마주한 시험장은 컴퓨터용 사인펜도 마킹하는 용지도 없이 모니터와 마우스로 클릭하는 시험은 긴장도를 더 높였고 내가 하는 행위가 맞나 틀리나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시험 결과는 다음날 속성으로 알려주었고 보기 좋게 딱 반을 맞추며 다음엔 붙겠군 자신감을 실어주었다. 이번엔 반드시 붙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아이들 등교 후 다시 열공 모드로 6시간씩 강의를 차근차근 다시 들었다. 두 번째 시험은 불안한 마음이 시험 보는 내내 들었고 긴장도가 더 올라가 시험을 끝낸 후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아려왔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떨리지 않고 봤을 텐데 대충 하니까 마음이 불안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예상처럼 보기 좋게 두 번째도 떨어져 버렸고 이쯤 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5일 만에 붙는 시험이 맞는 건가 아니면 내 공부 방식이 잘 못 되었나 열심히 듣고 이해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시험 후 아이들은 붙었냐 물어볼 때마다 아니라고 말하며 올해 시험이 바뀌어서 많이 어려워졌다는 변명과 빨갛게 달아오른 어미의 귀는 행여 볼세라 자리를 피했다.



한 달이 다 되어가자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 억울한 마음만 가득했고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는 건가 답답한 마음에 의기소침해졌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자격증 하나가 날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지 좋아하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취득할 때까지 그 어떤 것에 한눈팔지 말자 다짐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심스러웠다. 땅에 떨어진 마음을 어떻게든 추슬러 다시 듣고 또 듣고 반복하다 보니 남는 건 피로함과 잠자리에 들면 눈이 빠질 거처럼 아팠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입에 달고 살던 나였고 세 번째 시험은 붙는다 이 악물고 다시 도전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이제껏 봤던 시험 중에 최악의 점수를 남겼고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꾹꾹 참았던 설움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폭발해 애꿎은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버럭버럭 화내는 엄마를 아이는 알 길이 없었다.



공부한다고 한 달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일조차 뒷전인 모습이 제일 실망스러웠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다른 대안도 없거니와 형님이 알려준 공무직 시험을 준비하려면 반드시 필요하기에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평생 강의를 이렇게 눈 빠지게 들으면서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 좀 해두지 늙어서 고생하고 있구나 연민의 마음까지 들었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네 번째 필기를 접수하며 원서비로 학원 등록비 나오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 번의 시험과 달리 네 번째는 풀면서도 이상하리 만치 쉬웠고 그동안 왜 이런 문제들이 나오지 않았나 악마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결과는 예상대로 합격했고 바로 실기시험에 등록했다.



네 번의 시험을 치르며 느낀 점은 시험이 붙을지 아닐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연달아 접수해 시험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3번의 시험을 연달에 접수했다. 실기는 필기와 다른 전략이 필요했고 시험장 연령대 중에서 내가 상위에 있다는 것과 눈이 침침하고 손이 느리다는 것을 상기시면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점수를 올기로 했다.



첫 번째 실기는 긴장한 나머지 아는 것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시작과 동시에 젊은이들 타자 소리는 속기사들의 전쟁터를 방불케 해 정신이 혼미했다. 시험의 반도 풀지 못하고 돌아와 다음 시험을 위해 마음을 다 잡았다. 이제껏 떨어졌던 게 약이 되었는지 아니면 다 풀지 못해 어차피 떨어질 운명을 알아서 인지 마음은 편안했다. 두 번째 시험은 첫날의 타자소리를 진공상태처럼 뒤로하고 할 수 있는 문제 먼저 하나씩 해결하면서 지워 나갔다. 마지막 5분을 남겨두고 차근차근 검토까지 마치며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는 후련함과 실수만 안 하면 붙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마지막 세 번째 시험까지 도전하고 컴퓨터와 문제집은 꼴도 보기 싫어서 다른 방으로 치워버렸다.



3주 뒤 발표날 예상했던 그대로 두 번째 실기 시험만 합격했고 나머지는 불합격이 나왔다. 4번의 필기시험과 3번의 실기 시험은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기쁨보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은 남이 아닌 자신이 아니면 끌어올릴 수 없다는 확신을 남겨 주었다.



모니터에 합격이란 두 글자를 보자마자 행여 닳아 없어질까 바로 자격증을 신청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은 자격증을 받으면 얼마나 기쁠까 언제 도착하나 목 빠지게 기다렸고 그렇게 받은 자격증을 손에 쥐어보니 막상 생각과 달리 허탈했다. 첫째 아이는 그동안에 노력을 아는지 반짝이는 자격증을 보며 멋있어 자격증은 이런 거구나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엄마 최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줬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합격을 축하합니다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에 엄지를 날려주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케 메인 직업이 뭐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