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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ui Dec 16. 2022

운동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Akoranga YMCA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뉴질랜드에서 처음 축구를 접한 건 동네 YMCA에서였다 

대학 때까지는 그래도 축구 좀 했는데 직장 잡고 나서는 온종일 책상에 앉아있고 어데로 나갈라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를 타고 붕~달리니 체력은 떨어져, 뱃살은 나와, 이제 운동과는 담을 쌓았더랬다. 

그러던 내가 뉴질랜드에 와서 운동 좀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은 차에 indoor soccer라고 적힌 안내판을 보니 의욕이 마구마구는 아니고 적당히 샘솟는 기분이랄까?


풋살보다 훨씬 큰 규격의 운동장, 그러니까 농구코트 3개를 가로로 늘어놓은 실내 코트 전체를 이용한 실내축구는 11대 11로 뛰기에는 넘 좁고 5대 5로 뛰기에는 좀 큰 그런 크기다. 적정인원은 한 팀당 6~7명. 

쉬는 시간 없이 1시간 반 동안 실내 코트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공은 일반 규격의 축구공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쓰는데, 테니스공을 축구공 크기로 부풀린 듯한 통통 잘 튀는 공을 사용한다. 


코트를 둘러싼 벽에는 2m 높이에 빨간색 줄이 빙 둘러서 그려져 있는데 공이 이 선 보다 높이 올라가면 반칙이 주어진다. 사이드라인 아웃도, 골라인 아웃도 없다. 벽을 맞고 공이 튕겨 나와도 경기는 계속 진행. 

선수가 벽을 짚으면 반칙이고 지나친 몸싸움은 심판 재량으로 호각을 불러 반칙을 준다. 실내경기의 특성상 슬라이딩 태클은 불가능하고 또한 반칙의 대상이다. 골대 앞에는 반경 3m의 노란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건 골키퍼 보호구역이다. 이 구역에는 골키퍼 이외에는 공격수든 수비수든 출입 불가. 마찬가지로 골키퍼는 골키퍼 보호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경기 후 드레싱룸에서 맥주 한 잔


파란 하늘, 푸른 잔디, 숨넘어가는 소리

예전에 미국에서 날아온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1999년인가… 하여간 그때 공연팀의 무대 설치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감격이란. 내 인생 처음 잔디 구장을 밟은 기쁨은 평생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런 내가 뉴질랜드에 오니 운동장엔 죄다 잔디, 잔디, 잔디. 이건 뭐 동네 조그만 운동장도 잔디가 빼곡히 들어찬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잔디에서 뛰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사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잔디구장에서는 공간감각이 좀 제멋대로인 느낌이 든다. 패스를 길게 넘기는 게 좀 힘들더라 이거지. 맨땅에서보다 뛰는 것도 오히려 많이 힘들고. 그래서 코트 위에서 뛰는 실내 축구가 더 쉽게 느껴졌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의 DNA는 생활 축구의 현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내 축구 스타일은 일단 열심히, 부지런히,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내 성격, 바로 그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내 지론은 같이 팀원으로 공을 차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이다. 


그렇게 실내 축구를 하다 보니 친구도 생기고, 친구도 생기니 코트 밖 리그에서 뛰자는 의견도 있고, 뭐 그렇게 우리들끼리 팀을 만들었더랬다. Glenfield Juggernaut. 각 동네마다 그 동네를 대표해 1군 리그에 참여하는 팀이 있다. 글렌필드에는 Rovers라는 팀이 있고 우리 팀은 그 아래 2군 리그에 참여하는 2군팀. 


얼마나 열심히 축구를 했냐면, 

월요일 1군 연습. 

화요일 실내축구. 

수요일 2군 연습. 

토요일 2군 리그 경기. 

일요일 실내 축구. 


이렇게 일주일에 4일을 축구를 하고 지냈다. 

축구를 통해 없던 체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있던 체력도 조금씩 까먹던 시절. 


NZ NAVY팀과 시즌 전 연습경기

2군 리그에 참여한 첫 해에는 리그 3위.

승강권에 한 발이 모자라 2군 리그에 머물렀다. 


다음 해에는 꼭 1군 리그로 올라가리라 마음먹고 도전한 이듬해에는 급전직하, 리그 하위권을 시즌 내내 전전했다. 그때 팀의 평균 나이가 35세쯤 되었지 싶다. 


원래가 실내축구에서 결성된 팀이라 다들 적당히 배가 나오고 머리도 좀 벗겨지기 시작했고, 직장생활도 바쁜 30대들. 결국 20대의 쌩쌩한 친구들과는 경쟁 자체가 무리였던 게지. 




7인제 써머리그의 에이스


슈~웃


지난 시즌은 어찌어찌 관록으로 버텨냈다만, 안 그래도 힘든 훈련의 연속에 더해 어깨 위에, 마음속에 짊어진 한 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상으로 낙마하는 팀원들이 속출,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경기에 11명의 명단을 채워 넣는 것도 겨우겨우 할 만큼 팀이 망가져 버렸다. 


그렇게 두 시즌에 걸친 도전은 막을 내렸다. 





지금은 일요일 오후에 한 번 실내 축구로 되돌아왔다. 같이 팀원들은 벌써 몇 년째 얼굴 보는 사이들. 코로나를 거쳐 여름을 맞아 다들 게을러지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요즘은 한 경기를 온전히 뛸 수 있는 인원을 모으기도 힘든 시절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다같이 땀을 흘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참여를 원하시면 오클랜드 North Shore에 있는 Akoranga YMCA로 일요일 오후 4시에 찾아오세요. 

다 같이 즐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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