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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ui Dec 16. 2022

하늘이 무너진다.

잠결에 아련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잠귀가 밝은 편이라 번쩍 눈을 떴다. 

평상시에 들을 수 없는 소음인 지라 눈 뜬 김에 거실로, 화장실로, 부엌으로 다니며 집 안을 돌아보았다. 

뭐야, 별 이상 없구만.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저녁,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실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다 열리지 않는다. 마치 문 뒤에 무엇인가가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밖으로 나가 집 주위를 돌아간다. 세탁실에 밖으로 나가는 다른 문이 있다. 깜짝 놀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 보니 천장이 무너졌네. 천장에서 떨어진 무거운 석고보드가 문을 막고 있다. 떨어지는 충격으로 조각난 파편이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세탁실 바닥에 흩어져 있다. 


어느 정도 치우고 난 뒤의 모습



새는 파이프에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둘렀다. 부동산 관리인에게 연락을 하니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 암요, 그렇지요, 주말인데 일하면 안 되지요. 급한 마음에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도 남기고 이메일로 쪽지도 남겼다. 그래도 1시간 만에 연락을 받았다. 급히 배관공을 파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배관공이 사고 당일에 이렇게 일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천장이 무너진 게 큰일인가 보다. 

뉴질랜드에서는 바로바로 처리되는 서비스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은행, 관공서, 학교… 어디든 내가 급하게 무엇을 처리하려 해도 내 마음 같지 않은 곳이 뉴질랜드이다. 


한국 여행을 기대하는 친구들이 먹거리는 어떤지, 추천할 만한 관광지는 어떤 곳이 있는지, 쇼핑은 어디에서 할 수 있는지 궁금한 걸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24/7을 강조한다. 밤새 쇼핑도, 식사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와~ 하고 놀라는 친구들. 


뒤돌아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밤새 쇼핑과 식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렇게 좋게 들리지 않는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누군가는 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밤새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니까. 


저녁 7시만 넘으면 길가에 사람을 보기 힘들고,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니 도대체 저녁에는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는 고객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당장 하루 만에 배관공이 오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고 감사해하는 것을 보면 여기 이곳에서 많이 적응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관공은 내가 임시로 감싸 놓은 테이프를 떼어 내고서는 익숙한 손길로 파이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저 깊숙한 곳까지 손전등을 비추어 본다. 혹시 한 군데가 아니라 또 다른 곳에서 새고 있진 않은지를 확인한다. 집으로 들어오는 상수도관의 밸브를 잠근 후에 새고 있는 파이프를 잘라내 새것으로 교체한다. 배관공 데이빗에 따르면 특정 시기, 그러니까 70년대 후반 주택 시장에 공급된 상수도 파이프 중에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지금 이런 식으로 벽과 천장 안쪽에서 누수가 발생하면 십중팔구는 그때 공급된 파이프가 문제라고 한다. 다만 이런 파이프를 전부 교체할 수는 없으니 일종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물이 새는 곳, 확인


며칠 후에 부동산 관리인이 찾아왔다. 보험사 직원과 함께다. 견적을 내고 보험처리를 하기 위한 방문이다. 일주일 후에 보험처리가 승인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후에는 플라스터, 페인트 작업이 더디게 진행된다. 

천천히 느릿느릿. 확실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어떤 – 중국인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 집은 이 과정이 좀 더 복잡하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절약정신이 몸에 밴 어떤 중국인들은 이 과정을 몸소 시행한다. 대응도 느릴 수밖에 없고 마무리도 좀 어설프다. 다들 기술을 어디서들 배워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쨌든 집 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고. 

집을 소유하게 되면, 내가 전부 다 직접할 게 아니라면 이런 전문가들 전화번호는 필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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