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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ui Dec 16. 2022

불멍의 밤

불꽃 하나에 당신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생일을 달포쯤 남겨둔 어느 날, 친구가 물어본다. 

“어이 친구, 뭐 필요한 거 없어?”

없으요. 그러다 문득 갖고 싶던 게 떠올랐다. 

“화덕을 갖고 싶어요, 친구님.”


고기 구워 먹는 BBQ용은 따로 집에 있다. 

필요한 게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은 장작불을 놓을 수 있는 화덕이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순간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가끔은 넷플릭스에서 벽난로며 화덕이며 불꽃 화면을 띄워놓는다. 넷플릭스에 제공하는 벽난로 화면은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서너 개는 찾아볼 수 있다. 

소리와 화면 밝기, 불꽃의 크기 등 나에게 맞는 벽난로를 쉽게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혹시 ‘나한테 맞는’이라는 부분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에게 맞는’ 벽난로라는 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혹은 다 똑같은 화면일 뿐인데 그중에서 변별력을 발휘할 수 있냐라는 의문을 갖는다는지 말이다. 그건 벽난로를 무시하는 처사. 벽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집안에 설치된 벽난로는 각기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아예 벽안으로 들어가 있는 대저택의 벽난로도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는 거실 한편에 난로를 설치해 연통을 집 바깥으로 설치한 집도 있다. 

달궈진 난로의 열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세라믹 타일을 올린 것도 있고 순전히 심미적인 관점에서 불꽃 형상으로 타오르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활한 가스 공급이 어려워진 유럽에서는 벽난로 설치가 붐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뉴질랜드에서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벽난로를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새로 벽난로를 설치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거의 불가능. 


겨울의 끝자락. 아직 찬 바람이 남아있다. 낮에는 벌써 봄인 듯 기온이 올라도 날짜는 아직 9월이다. 

해가 떨어진 저녁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추위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밤은 여전히 뉴질랜드의 겨울. 

나무껍질을 먼저 태워 불을 키울 준비를 한다



이런 밤을 위한 잇템이 바로 화덕(Fire Pit)이다. 


잘게 자른 나무토막을 던져 넣는다. 불쏘시개를 이리저리 뒤적여 불을 옮겨 붙인다. 조금 더 큰 불로 만든다. 

나무를 먹이 삼아 불이 타오른다. 나무가 타며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무 타는 냄새는 곧장 나를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간다. 방학을 맞아 찾아간 할머니 집에서 해저무는 저녁녘에 맡던 익숙하고, 가슴을 간질이는 냄새. 


낮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불꽃이 일렁거린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에, 그리고 그 너머에 초점을 맞춘다. 

곧 생각은 아득히 멀어지고 불꽃 속으로, 동시에 내 안으로 침잠한다. 


이른바 불멍. 


겨울에는 비가 잦으니 봄이 시작될 때쯤 한 번쯤 해보기를 추천합니다. 빠져들걸~


참고로 바비큐를 하든 불멍을 하든 소화기는 필수. 

그대도 한 번 빠져보시겠는가?



여기서부터는 여담이다. TMI. 


2010년인가, 미국 석유회사가 시추 가능성을 위해 뉴질랜드 해변의 대륙붕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북해의 석유 매장량에 버금가는 뉴질랜드란다. 북해에 노르웨이가 있다면 남극해 바로 위에는 뉴질랜드가 있다고 신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매장량은 최소 100억 배럴. 


이제 뉴질랜드도 산유국으로 가는 건가 하는 헛된 기대를 했었다. 현실은 지금 뉴질랜드에서는 일부 석유를 시추, 생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추가 생산하지 않음을 노동당 총리가 천명했다. 


자연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뉴질랜드에서는 석유 시추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오염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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