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당일치기 여행
오클랜드에서 근교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비교적 여행지가 정해져 있다.
북쪽으로는 베이 오브 아일랜드 Bay of Island로 가는 루트가 있다. 지형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좌우 폭이 좁아지는데 결국은 땅끝 마을 레잉가 곶 Cape Reinga까지 닿게 된다. 오클랜드를 출발해 처음 만나는 중소 도시 왕가레이를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러셀, 파이히아 케리케리 등이 나온다.
남쪽으로는 더 넓은 땅으로 향하는 만큼 좀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오클랜드 근교라고 할 수 있는 해밀턴, 관광지다운 관광지인 코로만델 반도, 해상무역의 중심인 타우랑가,
큰 호수를 낀, 레저 중심의 로토루아, 좀 멀긴 해도 온천지대인 타우포까지. 더 멀리까지 가자면 민족의
영산 타라나키 아래에 위치한 뉴플리머스, 거기서 북섬을 동쪽으로 가로지르면 그 옛날 선교사들과 수도사들의 정착지였고 와인이 유명한 네이피어.
뉴질랜드의 모든 도시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색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려면 우선 위에 언급한 여러 도시들이 우선 대상이 될 것이다.
어느 해 여름, 휴가를 맞아 이번에는 이전에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당일치기가 가능하고 주변에 볼 것이 많은 곳. 실은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이 지도상에서 딱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다가빌 Dargavile.
이번 여행에 다가빌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집사람의 동료가 다가빌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을 알려준다.
카우리 박물관, 그리고 Kai Iwi 호수.
Kai Iwi 호수는 정말 특별한 곳이다. 지구상에 딱 한 군데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예전에 가본 듯한 느낌은 전혀 1도 없는 곳이다.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장소.
다가빌에서 다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려간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해발고도가 높아진다. 산속으로, 언덕 너머의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 내려간 언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을 닮은 물이 보인다.
새파랗다 못해 시퍼런 물이 시선을 잡아 끈다.
너무 넓어 한눈에 담기도 힘든 거대한 호수가 깊은 산속에 자리한 그 자체로 신비롭다. 막연히 추측 건대 융기된 지형 속에 갇힌 빙하가 녹아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신비함이 호수 전체를 감싸고 있다.
가까이 다가간 호숫가에는 또 다른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다. 모래가 그렇다. 보기에는 모래 같지만 만져보면 그 질감은 고운 진흙에 가깝다. 바닷가에서처럼 모래가 발에 묻지 않는다. 진흙의 느낌이지만 발을 툭툭 털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또한 호수의 지형이 아주 신기하다. 호숫가에서 저 멀리까지는 겨우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이 찰랑거릴 뿐이다. 그러다 100m쯤 나아가면 갑자기 지형이 뚝 떨어지면서 깊어진다. 아까 언덕 위에서 봤던 쪽빛 파란색 물은 이곳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호수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 더위가 날아간다. 어차피 제대로 된 수영을 즐기기는 어렵지만 대신에 어린 자녀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어린아이들도 마치 베란다 미니풀에서 노는 것 마냥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저 멀리까지 나아가면 위험하니 눈을 뗄 수는 없겠지만.
주변에 가 볼 만한 곳은 카우리 박물관과 카우리 숲이 있다.
카우리 박물관은 카우리 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이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뉴질랜드의 개척은 골드러시로 시작해 그 열기가 사그라질 때쯤 카우리 나무의 벌목으로 이어진다. 선박을 건조하거나 고급가구의 소재로 사용하는 카우리 나무의 전 세계적인 수요가 뉴질랜드의 개척을 이끌었다.
벌목과 운반, 가공뿐만 아니라 카우리 나무 그 자체도 잘 알려주는 – 뉴질랜드에서 보기 드문 – 좋은 박물관이다.
그리고 Kai Iwi 호수 근처에 카우리 숲도 있다. 이제는 벌목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과 관리의 대상이 된 카우리 나무는 하늘 높이 치솟아 주변을 마치 지배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우뚝 서 있다. 그런 커다란 카우리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을 때는 마치 거인국에 들어선 소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조금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카이 이위 호수를 방문하는 것도 괜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