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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뒤처지는 기분이 이런걸까?

by 뭉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살 많은 오빠가 우리 반으로 복학했다.

묘하게 껄렁한 자세, 귀찮다는 듯한 표정, 침묵을 유지하는 신비주의까지

10대 청소년답지 않은 아우라가 풍겼다.


나와 친구들은 불량 학생 같은 오빠의 등장에 하나같이 충격을 먹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복학을 한 거지?’

‘저 오빠 오토바이 타는 거 옆반 누구가 봤대~’

‘누가 그랬는데 전과가 있어서 복학한 거래’

우리는 복학생 오빠가 왜 복학을 했는지 온갖 이유를 대면서 찾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진실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한 가지는 확신했다.

고등학교 복학은 행실이 나쁜 학생이나 하는 것이라는 것.


그런 내가 1년 뒤에 휴학을 하고, 20살에 고3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척추측만증 수술로 1년간 휴학을 하게 되면서 평범한 18살의 인생을 벗어나게 됐다.

1년 동안 나는 갓난아기가 되어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걸음마까지 다시 배웠다.

수술 후, 처음으로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났을 때 세상이 180도 회전하는 듯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시간에 친구들은 고3을 향해 달려 나가더니 어느새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같은 나이지만,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학년이 올라갔는데

나는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뒤처지는 게 이런 기분일까?’

모두가 달리는 레이스에서 나 혼자 덩그러니 멈춰 선 기분이었다.


휴학한 1년 동안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찾아오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이 생겼지만,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생겼다.

몸이 차근차근 회복되어 가는 기쁨도 느꼈지만, 평생 약한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콤플렉스도 생겼다.

‘이 몸으로 평생 살아야 한다고?’ 좌절하다가도 더 건강해져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겠다는

보상심리가 발동되기도 했다.

꿈과 희망 그리고 불안이 뒤섞인 휴학 생활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대학을 잘 가는 것’이었다.

이미 친구들보다 1년 늦어버렸으니 재수한 것이나 다름이 없고, 약한 몸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는

대학을 잘 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복학해서 보란 듯이 대학 잘 가야지’

수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휴학을 대학을 잘 가기 위한 1년으로 쓰기로 했다.

대학을 잘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거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친구들 보기에도 쪽팔릴 거 같았고,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힐 거 같았다.

가진 몸에 비해 자존심이 유난히 큰 탓이었다.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기 싫다는 방어심리도 한 몫했다.


19살 여름, 드디어 1년 간의 긴 휴학이 끝났다.

친구들은 수능을 두 달 정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사연 있는 복학생 언니가 되어 같은 학교의 2학년으로 복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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