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인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목표는 단 하나였다.
‘대학에 잘 가는 것’
한국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성적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자아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시작한 경쟁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이어진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시공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궁극적인 경쟁의 목표가 ‘대학’이 돼버린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혹은 대학에 안 가도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냥 다들 대학을 향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나도 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의 본분이란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가는 것’이었으니까.
어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겁을 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이 사회에 나가면 무시당한다’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대학이름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울 때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추울 때 몸 벌벌 떨며 일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대학 가는 게 필수가 아니라고? 그건 자신이 누구이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실한 친구만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보통의 학생들에겐 내가 누구인지 찾을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매일 7교시까지 이어지는 수업, 숙제와 시험을 준비하기만 해도 24시간이 모자랐으니까.
그저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대학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대학의 이름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서열을 의미했다.
12년 동안 내가 들인 노력과 지능이 대학이라는 결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자존심이 강할수록 인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 스스로 쪽팔리게 여기는 학생도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또래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복학 후에 학생의 본분에 맞게 학교 생활을 충실히 했다. 한 살 어린 친구들과 어울려서
하라는 대로 공부를 했고, 하라는 대로 수행평가를 봤으며, 하라는 대로 시험을 봤다.
다들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우리는 공부 얘기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가고 싶은 대학을 정하고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고3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가장 가고 싶던 1 지망 대학의 최종 합격 발표날도 코 앞이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이었다.
결전의 날.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떨며 1 지망 대학의 합격자발표 버튼을 눌렀다.
결과를 보기가 두려워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까지 벌벌 떨며 결과를 확인한 대학교가 없었다.
결과는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꿈에만 그리던 인서울 대학에 내가 붙다니..
반사적으로 기쁨의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내가 노력해 얻은 것 중에 가장 어렵고, 가장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운의 영향도 큰 여정이기도 했다.
13년간의 레이스를 마치고,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쥐자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성취감,
그리고 1년간 휴학하며 남몰래했던 마음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칭찬에 인색한 아빠는 내가 자신의 자랑이라고 말해주기까지 했다.
나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하늘이 도와준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대학 생활도 열심히 해 더 큰 꿈도 이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은 왜인지 내가 더 큰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무대가 돼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