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서울 대학의 현실

by 뭉지

큰 기대를 안고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1학년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전공이 재미없다는 것'

내가 입학한 전공은 '식품영양학과로'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학과라 더 마음속의 혼란이 컸다.

전공이 재미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지루하고 흥미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입학한 대학교는 '숙명여자대학교'다.

들어온 지 얼마안 된 학교는 성실한 범생이들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수업을 들어가든 상당수의 학생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교수님이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도, 일정한 톤으로 70분 내내 책을 읽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이 친구들은 교수님들이 어떤 말을 하던 알아서 척척 떠먹을 준비가 돼있었다. 교수님의 말을 한 단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는 친구, 복습할 때 다시 듣기 위해 모든 수업을 녹음하는 친구, 매일 복습을 하고 자는 친구 등 그 성실함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수업을 불가피하게 빠지게 될 경우, 스타벅스 기프티콘으로 녹음본을 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학생들이 수업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성적'을 잘 받아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학점은 기본이고, 스펙까지 고루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 '기본'인 학점을 챙기기 위해 동기들은 1학년부터 부지런히 과제와 시험에 묵묵히 임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가면 마음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다는 말은 우리 학교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이 재미없다는 것은 꽤나 큰 고민이었다. 수업은 매일매일 진행되고, 과제도 계속해서 나오고, 시험은 계속해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전투적인 자세로 학업에 임하는 학생들까지..


나 또한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잘하고 싶었기에 뒤처질까 봐 두려운 불안감이 계속 들었다.

기계처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성적으로 살아남기?

지금의 상태라면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다. 시험을 거듭해 볼수록 내가 하는 만큼은 누구나 했다. 내 점수는 항상 평균이거나 그 아래였다. 더 열심히 공부할 의욕도 전공이 재미없던 탓에 생기지 않았다.


지루한 대학 생활의 한 줄기 빛이 필요했다.

관심이 가는 걸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때의 가장 관심 있던 분야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처럼 '해외 파견'을 가는 것이었다. 한국과 모든 게 다른 해외에 가서 내가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봐야 할지 몰라 학교 국제처 홈페이지를 가장 먼저 들어갔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에 '아랍에미리트 파견 학생'을 모집한다는 글이 보였다.

열흘간 한국의 청소년(만24세까지 법적 청소년) 대표로 아랍에미트에 견학을 간다는 프로그램이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게 학교생활의 지루함에서 꺼내 줄 한 줄기 빛이라는 것을. 프로그램 안내문을 읽어나갈수록 가슴이 미친 듯이 콩닥콩닥 뛰었다.

스펙도, 성적도 뭣도 없는 1학년이었지만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들었다.


어떻게든 가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학교생활에서는 의욕도 열정도 없던 내가 지원서는 수정의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며 작성하고, 면접은 예상 질문까지 뽑아서 시뮬레이션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어도, 증명할게 없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랐다. 학교에서는 전공에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부러워만 할 뿐 그들만큼 열심히 할 생각은 전혀 안 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만큼 운도 따라줬다.

너의 가능성을 믿어주겠다는 듯이 '최종 선발'이 된 것이다. 성적으로도 스펙으로도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어 그저 믿어달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 기뻤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학교 새내기의 가을, 나는 한국 청소년 대표로 '아랍에미리트로' 열흘간 파견을 가게 됐다.



keyword
이전 04화19살,고등학교 복학생의 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