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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e a dan Dec 02. 2022

"너, 연애하냐?"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전공과목 중 하나인 ‘지휘법’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모든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교향곡이 무엇인지 물으셨다. 그때 당시 교향곡보다 피아노 협주곡에 빠져 있던 나는 내 순서가 오기 전까지 머리를 굴려 대답하기 괜찮은 교향곡을 생각해내려 했다. 교수님의 질문에 ‘왜 좋아하는지’는 없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내 차례는 빨리 왔다. 결국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마땅한 교향곡을 찾지 못한 나는 쭈뼛대며 교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혹..시.. 교향곡 대신 피아노 협주곡을 말해도 될까요..?” 굉장히 무서웠던 첫인상과 다르게 교수님은 흔쾌히 그러라 하셨다. 그때 내가 이야기 한 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이를 듣자마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 연애하나봐?”. 소름이 쫙 끼쳤다. 무당도 이런 무당이 없을 텐데. 그때 난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짝사랑이라고 표현하긴 어려울 정도로 이젠 그 아이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얼마나 설렜었는지, 세상 모든 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는 또렷이 기억난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에 대해 쇼팽 스스로는 “로맨틱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면서, 많은 추억들을 되살리는 장소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지.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어린 밤처럼 말이야.” 라고 표현했다. 쇼팽이 설명한 이 느낌은 쇼팽이 흠모하던 음악원 동기이자 소프라노인 콘스탄치아를 향한 것이었다. 즉 이 곡은 쇼팽이 콘스탄치아에게 보내는 자신의 마음이 담긴 음악 편지인 것. 그러나 수줍음이 많던 쇼팽은 자신의 마음을, 또 이 곡은 그녀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걸 끝내 전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쇼팽 사후 그의 자서전을 통해 자신을 향한 쇼팽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의 나타냄 말은 ROMANZE(감정적인 사랑 노래)이다. 내가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할 때 들었던 이 곡이, 쇼팽이 짝사랑할 때 그 마음을 담아 작곡한 것이라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참 신기하고 음악의 힘에 또 한 번 놀란다.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하던 시기는 갓 스무 살, 음악적으로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 때라고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 부분에 있어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작곡가의 마음을 이리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음들로 선명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데 무르익지 않은 음악성이 뭐 중요할까.




영상 1분부터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시작된다.

https://youtu.be/fI2ndj3d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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