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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Oct 05. 2023

보름달이 주는 교훈

사춘기 아이와 싸우고 화를 식히려 집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하며 화를 식혀볼까 하는 생각에서다. 공원에 올라가니 둥근 보름달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준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보는 보름달이다.


문득 십여 년 전 보았던 보름달이 떠올랐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 둘을 키우느라 죽을동 살동 했던 시절이다.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회사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던 시절. 투잡 뛰듯이 정신없이 사느라 나를 위한 시간은 사치였던 시절이다. 그러던 어느 해 생일날, 내 생일이니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선물을 스스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주었던 선물이 바로, 잠들지도 않은 아이들 내버려 두고 공원에 나와서 산책하는 일이었다. 귀에 이어폰 꽂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악에 집중하며 천천히 공원에서 산책하던 그날 밤, 달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짧은 산책이었지만 행복했던 그 시간에 보았던 달이 오늘도 그 모습 그대로 떠있다.


기껏 집 앞 공원 산책이 사치스런 선물같은 시절도 있었는데 그걸 잊고 살았다. 아프지만 않으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맘 졸이며 키웠던 아이가 사춘기가 되는 동안, 소소한 순간이 주는 행복들을 잊고 살았다. 엄마한테 짜증 내고 대드는 아이가 얼마나 건강하게 자랐는지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하고 잊고 살았던 것들을 말없는 보름달이 조용히 상기시켜 준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은행 직원들이 집으로 쳐들어왔던 순간. 엄마가 쓰러져 119차를 타고 대형병원으로 달려가던 순간.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오늘의 이 순간은 목이 메도록 행복해도 모자랄 순간이다.  


행복이라는 것. 어쩌면 행운 같은 일이 벌어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 퇴원 기약없이 입원한 병원에서 아이의 조그만 손등에 꽂혀있던 피맺힌 링거바늘을 보며 이 아이 대신 제가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화 대신 그 기억을 마음에 품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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