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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an 21. 2024

관심사병에서 라이징 스타가 된 윤 과장 (2)


윤 대리. 새로운 빛을 만나다.



인사 본부장인 상무님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그곳에는 관심사병이라 불리는 윤 대리도 함께 있었다. 교육을 수립한 모든 사람들이 배석하라는 임원의 지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담당자인 그의 의견이 철저하게 배제된 내용을 듣고 앉아 있기 싫었다.


그때는 몰랐다. 당시의 미팅 자리가 그의 미래를 열어주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줄지는.






본부장은 답답해하고 있었다. 현장 직원들이 새로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도록 움직이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했었다. 첫 보고에서 교육 팀장이 들고 온 자료에는 부서원의 직무스킬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못마땅해서였을까. 다음 미팅에는 현장과 직원들의 상황을 더 가까이에서 알고 있는 법한 사람들을 같이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까지 현장에서 일한 윤 대리가 그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미팅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교육 장이 준비한 보고서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후였다. 회의실 안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적막감만 맴돌았다. 이사도, 팀장도, 윤 대리도, 모두 자신의 앞에 놓인 문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본부장이 윤 대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묵직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윤 대리님이 이쪽 교육 담당자이시죠?"

"아, 네. 상무님."


"그럼 지금 들고 온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 우리에게, 직원들에게 필요한 내용일까요?"



윤 대리는 상사들의 눈을 흘끗 살펴보았다. 그 둘은 입을 일자로 꾹 담은 채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고민스러웠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한다면 회의 후 몇 마디 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상무님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기는 싫었다. 사실이 아니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미 자신은 상사들의 눈 밖에 난 지 오래였다.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지금보다 더 떨어질 곳조차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그냥 질러버리자!'

 


"...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수 년동안 근무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전략의 방향이 바뀌었더라도 일하는 방법은 꼭 교육이 아니어도 알릴 수 있습니다. 본사에서 명확한 지침서를 내려준 후 진행여부를 체크하고 맞지 않는 부분을 조정하면 됩니다.

지금 직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무교육이 아닙니다. 변화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인드를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부터 줄여줘야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조금 바뀐다는 것으로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사들이 먼저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에게 더 명확한 지시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직원들의 질문에도 적절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입을 떼기 시작하니 끝까지 쏟아져 나와 버렸다. 그동안 속으로만 수없이 끙끙거렸던 생각들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본부장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다른 의견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회의실 문을 닫으며 팀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보고서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 또다시 비난으로 돌아올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의 얼굴에는 그저 긴장감 서린 공간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안도감만 그득할 뿐이었다.



며칠 뒤, 프로젝트 팀이 하나 꾸려졌다.


영업 현장직 리더의 변화관리 교육이라는 주제였다. 게다가 프로젝트의 멤버는 교육 팀장이 아닌 다른 인사 팀장, 그리고 윤 대리였다. 본부장은 미팅 이후 다른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고, 윤 대리의 방향이 맞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게다가 교육 팀장이 본부장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주무 부서 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프로젝트 리더로 지정되었으니 말이다. 


프로젝트 리더로 발령받은 인사 팀장 또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교육 이력이라고는 대리 시절 6개월이 다인데, 갑자기 리더 교육을 맡으라니. 그때부터 관심사병 윤 대리와 어리둥절한 인사 팀장, 나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윤 대리와 한 팀에서



프로젝트 첫 회의를 시작했다. 윤 대리와 나 단 둘이서.


가만히 보니 그곳은 1년 전 그가 문을 세차게 닫던 회의실이었다. 아직도 문이 멀쩡한 걸 보니 이후 내던 승질머리는 좀 참아 냈었나 보다.

같은 층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짧은 인사 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는 사이였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소개부터 하기 시작했다.


"대리님, 반가워요. 이렇게 함께 일하게 되다니, 신기하네요?"


발랄한 나의 목소리와는 상반되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 네, 팀장님."


그는 내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한껏 웅크러진 어깨에 자신감이라고는 먼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 얘기부터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사실, 윤 대리와 같은 팀에 계신 차장님께 그의 상황을 물었다. 관심사병이라고 듣긴 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간 이야기들을 상세히 전해 들었다. 처음의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은 늘 위축되어 있고 심지어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교육을 하고 싶어 하는 의지는 아직 놓지 않은 것 같다고도 들었다. 


자신감부터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다. 나를 낮추고 윤 대리를 치켜세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번 교육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해왔을 터였다. 사내 강사 시절 교육을 진행하고 강의까지 진행한 경험도 있을 거였다.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리님, 저와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랬으면 좋겠다. 바라는 점들이  있을까요?"

".. 아.. 저는 많이 부족해서.. 그저 많이 배우면서 하겠습니다."


"음.. 그럼, 저랑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얘기해도 될까요?"

".. 네?.. 아, 네..."


"일단, 얘기를 많이 해야 해요. 저는 대리님만큼 현장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서.. 특히 최근에 본사로 오셨으니 아직 연락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은데, 맞죠?"

"아, 네.."


"잘 됐어요. 이번 교육은 그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우선이니, 제가 대리님에게 의지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네..? 제가 어떻게..."


"상무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을 이해하고 정보들을 요약, 보고 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지만, 교육의 세부적인 콘텐츠나 운영방식을 세우는 것은 해보지 않은 영역이라 막막해요. 대리님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셔야 해요. 그리고 제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든지 얘기해 줘요. 알겠죠?"

"예..?"


"그리고, 교육계획을 승인받고 나서, 운영하는 것은 온전히 대리님에게 맡겨도 될까요? 저는 한 번도 운영을 해 본 적도 없고.. 솔직히 잘 몰라요...^^"

"예..?"



그제야 옅은 미소가 비치었다. 숨겨져 있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빛을 발하다.


이후 두 번, 세 번, 수어번의 미팅이 계속되었고, 그의 얼굴에도 활기와 열정이 점점 채워져 갔다. 입을 떼는 횟수도 늘어났다. 나는 윤 대리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하였고, 실제로 맞는 의견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교육계획은 단 한 번에 승인을 받았다. 모두 윤 대리 덕분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역할을 충분히, 아니, 그보다 더 잘 해내 주었다. 우리가 수립한 내용을 현장에 계신 분들께 보여주고, 솔직한 의견을 받아 실질적인 내용으로 보완하는 것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본격적으로 교육 운영이 시작되면서 윤 대리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번 교육을 맡은 윤준영 대리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바라왔던 한 마디였을까. 교육팀으로 온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맡게 된 교육이니. 

그의 오프닝 멘트가 시작되면 교육장은 순식간에 에너지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어쩜 그리 말도 잘하고 너스레도 잘 떠는지 '입이 터졌다.'라는 게 무엇인지가 꼭 들어맞았었다. 


뿐만 아니었다. 교육 운영 전, 후에 필요한 것들까지 철저하게 챙겼다. 그동안 교육팀에서 잔업무들을 도우며 곁눈질로 터득한 방식들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본인이 맡으면 더 잘하고 싶었던 것들까지 실현해 나갔다.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만의 무대를 마음껏 누린 것이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교육생들의 피드백은 이례적으로 좋은 의견로만 가득했다. 본부장의 평가 또한 높았다.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칭찬과 박수를 받는 경험까지 얻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발걸음, 표정, 말투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교육팀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 출근하던 날, 그때의 흰색 셔츠만큼이나 환한 얼굴이었다. 반짝이는 구두보다 더욱 빛나는 몸짓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나는 교육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와 한 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팀을 맡게 되면 처음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믿을 수 있는 이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

그에게 부탁했다. 내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나와 팀원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달라고, 지금의 대리님처럼 밝고 자신 있는 팀으로 만드는데 힘이 되어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그와 함께 한지 어느덧 3년 째이다.

윤 대리, 아니, 윤 과장은 부문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교육들은 대부분 윤 과장이 맡는다. 다른 팀에서도 인사제도나 안내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잘 준비가 되었는지 의견을 물어 오기도 한다.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활기와 에너지가 넘친다.


그가 관심사병이었다고 말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우리 부서의 핵심인재,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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