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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an 28. 2024

김대리. 보석이 되어 떠나다 (1)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저, 사실은 면접 준비하고 있어요. 최종 면접만 남았어요.."

"아.. 그래. 충분히 생각했어?"


"네.."

"그래, 잘했어. 결정되면 얘기해 줘.."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을 도와줄 수 없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그녀의 선택을 따는 게 최선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생머리에 뽀얀 얼굴, 사랑스러운 미소를 띤 그녀는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다음에도 이 정도로 사랑하는 아이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민선과 처음 만난 것은 교육팀에서 함께 일할 때였다. 서로 다른 파트기에 업무적으로 가깝게 지내진 않았다. 나는 나의 파트원과 일을 맞추어 가는데 집중했었고, 그녀 또한 자신의 파트장과 출장을 자주 다녔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지 모르겠으나, 민선은 유독 나를 자주 찾아왔다.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와 이메일을 틈틈이 들고 와 봐 달라고 하였다. 내 옆자리가 비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내 자리 구경도 하고, 주말에 다녀온 곳이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수다도 종종 떨고 갔다.


나를 좋아하는 게 너무나도 명백하게 느껴졌기에(팀원 모두가 알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더 챙기고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녀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어려운 건 없는지 살펴보곤 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녀가 가진 장점은 밝은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좋은 의미로 일욕심이 많았다. 자신이 맡은 업무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했고 려운 일도 끝까지 해내는 집요함이 있었다. 처음 맡게 되는 업무는 혼자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해결해 나갔다.  대하는 긍정적인 자세와 소통하는 스킬까지 인사 업무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다 한 씩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가 있기도 했다. 성과가 좋았으니 일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유독 더 환하게 웃고 경쾌한 목소리를 내었다. 마치 어둠을 털어내듯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민선의 휴가가 잦아지는 듯 보였다. 어디 여행을 다녀오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어두워졌고, 나에게 찾아오는 횟수도 드물어져 갔다. 내가 먼저 가서 커피 한 잔 두고 가도, 그저 힘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한 동안 민선이 자리를 비운 날이 길어 보인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파트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지 말이다.  휴직을 사용할 것 같다고 했다. 아마 기간이 좀  것이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그제야 알았다.

민선 어렸을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후 홀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 것을.

벌이가 녹록지 않은 분이는데 최근 지병이 안 좋아져 요양원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동안 서울 달동네에서 혼자 생활비며 학비까지 벌어가며 생활해 단다. 겨우 학자금을 갚아갈 때 즈음,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시작했고 각종 병원비와 요양비로 매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차였다고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고 했다. 일을 잘해서 빨리 승진하고 연봉을 올리고 싶은 욕구가 높았다고 한다. 최근 일도 재미있고 평가도 잘 받아 신나게 일하던 차에 아버지 간호를 할 수밖에 없어 혼자 꽤나 속을 끓여 왔던 것이었다. 밤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 심리 상담도 받고 책도 읽으며 혼자서 치유하려고 애써 왔다도 들었다.

 

전혀 몰랐다. 항 해맑게 웃고 조잘조잘 수다떨던, 늘 씩씩하던 그녀가 그렇게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고 있는지 몰랐다. 거운 짐을 견뎌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리고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내가 무나도 작게만 느껴졌다.



얼마 후, 민선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팀원들과 함께 찾아간 장례식장에는 테이블 열 개 남짓 놓여 있는 공간에 민선 홀로 앉아 있었다. 검은색 저고리와 치마가 그녀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듯 보였다. 하얀 얼굴에 벌건 눈동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민선은 입구에 들어서는 나를 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녀는 이내 와락 안기더니  어깨에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가녀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만히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등을 쓸어주며 안아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며칠 뒤 민선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과장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날 과장님이 안아 주셨을 때 온기 만으로도 정말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과장님을 많이 닮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꾸 귀찮게 했던 건데 늘 잘 받아주시고 도움도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저 혼자 의지도 엄청 많이 했던 거 아세요? 얘기 나누고 오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었어요..

얼른 추스르고 복귀할게요. 감사해요 장님. "







이후 시간이 흘러 그녀는 예전의 은 웃음과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대부분이 그녀의 힘든 상을 모르고 있었기에, 복귀 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동정이 묻어 있었다. 그녀 또한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뒤에 숨겨진 어둠을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더욱 드러냈다.

이제는 혼자 살게 되었고 힘들긴 하다고, 그래서 심리 상담까지 받고 있다고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짠한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일로 보여주었다. 마치 일을 하며 자신의 슬픔과 힘겨움을 버티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와 동시에 그녀의 내면은, 실력은 보다 단단해지고 있는 듯했다.



나를 찾아오는 일도 잦아졌다. 교육 일 뿐만이 아니라 과거 내가 맡았던 성과관리나 인재관리 관련된 업무들도 한 번씩 물어보았다. 운영하는 방식이나 참고할 자료까지 알고 싶어 했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이리도 뿌듯한 일인 지 그전에는 몰랐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개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에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더 나은 방법까지 의견을 내니 도 함께 발전하는 느낌이었다.




몇 달 뒤, 부문 내 조직이 크게 개편되었다.

팀원들의 경력과 희망부서를 고려하여 부서가 재배치된 것이다. 나는 내 바람과는 달리 채용팀을 맡게 되었고 팀원들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러던 중 민선이 나에게 와서 조심스레 물었다.


"팀장님. 저.. 팀장님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요. 채용 경력은 없지만 잘할 자신 있어요. 교육 말고 다른 영역도 쌓고 싶었고요...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서 따라갈게요. "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마웠다.

태도와 마인드만 좋으면, 그리고 기본적인 일머리만 있으면 경력 없잘할 수 있는 게 회사 일이다. 게다가 일에 욕심을 내고 나를 좋아해 주는 민선이 내 팀원이 된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민선과 나는 한 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몰랐다. 우리가 일 뿐만이 아니라 심적으로도 서로 의지하는 끈끈한 사이가 될 줄은.





(2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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