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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Mar 17. 2024

사실은 잘 맞지 않았던 이 대리 (1)


'띠링'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중 사내 메신저에 알람이 울렸다.

채용 팀장의 메시지다.


"팀장님, 팀원 찾고 계시는 거죠? 공채 직원 중 한 명이 교육팀에 가고 싶다는데, 추천해드릴까요?"

"오홋, 어떤 분인데요?"


"영업팀 이지혁 대리라고, 입사 6년 차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평판은 어떤가요?"


"일은 곧잘 하나 봐요. 그런데 조금 부정적이라고는 하는데.."

"음... 네, 일단 만나 볼게요. 감사해요. 팀장님."







이 대리, 저는 아닌 것 같은데요.


팀 내 중요한 직무를 맡고 있던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급히 사람을 찾고 있었다. 두 달간 채용 공고를 올려 두어도 유사한 업계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찾아지지 않았다.

일들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있었고 팀원 분들이 각자 일을 배분해 꾸역꾸역 해 나가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냄비 속에 재료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끓이던 중 부글부글 넘치기 직전이었다고나 할까.


마음이 급했다.

곧바로 인사 시스템을 켜  추천받은 직원의 이름을 쳤다.


'현장근무 2년, 영업팀 4년, 올해 성과평가 결과 최고등급'


문서상에 보이는 이력은 보통 이상이었다. 일단 만나서 면담부터 해보기로 했다. 핸드폰 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교육팀 팀장입니다. 채용팀장님으로부터 추천받아서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약 1초도 안되어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네, 가능합니다. 어디로 갈까요?'





첫 연락을 한 그날 바로 면담을 하게 되었다. 흰색 셔츠에 아이보리색 면바지, 활짝 웃는 얼굴. 공손한 제스처와 말투.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간단히 상호 소개를 하고, 이 팀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먼저 물었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처음 뵈어요. "


"아,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팀장님 자주 뵙긴 했는데... 하하."


"아. 그랬나요? 근무 중이기도 하니, 궁금한 점 몇 개만 물어볼게요. 오래전부터 교육팀에 오고 싶어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뭘지..."


"네, 입사할 때 부터 하고 싶었어요. 입문교육 때 앞에서 교육 운영하고 또 인턴 기간 동안 한 명 한 명 케어해 주시는 선배들 모습이 인상깊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직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교육팀에 사내공모가 뜨는 지 매번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본사 영업팀에서 콜이 와서 일단 본사로 가자는 마음에 이동을 했던 거고요. 다행히 좋은 선배를 만나 근무를 했는데... 그 분이 다른 팀으로 가게 되어, 예전부터 바랬던 교육팀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순간, 교육 업무를 정말 희망하는 게 맞나, 그냥 지금 팀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이동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려되었다. 게다가 교육에 대해 보여지는 좋은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교육 업무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교육생들 앞에서 멋진 내용을 전하고 의지를 심어주는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수많은 행정 업무들이 뒤따른 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교육팀에 오더라도 교육 운영 업무를 맡게 될 보장도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타인의 입장에서 업무를 접근하는 시야와 소통 능력을 갖춰야 하며,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긍정적인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부정적이라는 평판이 매우 걸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궁금했던 점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몇 년 동안 영업 경력을 쌓아왔는데 갑자기 직무를 바꾸는 건... 괜찮나요?"


"아, 네!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고 드디어 기회가 온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교육 업무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확신에 찬 말투였다. 한 치의 후회도 없을 것 같다는 눈빛과 함께.



30분 가량의 시간이 흐를때 즈음, 일주일간 서로 시간을 갖고 고민하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하기로 했다. 그도 업무나 갖춰야 할 스킬, 태도에 대해 자세히 들었으니 본인에게 맞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도, 우리 팀에 올 누군가를 결정하려면 무엇보다 신중해야 했다. 단 한 사람이 팀 전체의 분위기와 업무 평가까지 깎아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리의 평판을 영업팀에 있는 나의 입사 동기를 통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쁜 의견은 없었다. 후배들 데리고 일도 가르치고 맡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고 추진한다고 했다. 최근 바뀐 업무에 불만이 좀 있긴 했지만 잘 적응하고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평판을 물을 때면 늘 아주 최악이 아닌 이상 나쁜 피드백을 주는 분들이 거의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면담할 때 주고받은 대화들, 주변의 평판 등을 고려했을 때 좀 고민스러운 면이 있었다. 많았다.


1. 부정적이다. 교육팀은 매우 밝아야 한다. 긍정적이어야 한다. 직원들 앞에서 말을 전하는 사람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2. 6년간 쌓아온 영업 경력을 틀고 완전히 다른 직무로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가거나 퇴직하는 것은 아닐까.

3.  영업과 교육은 요구되는 스킬이 많이 다르다. 수년간 경험한 일하는 방식이 교육 업무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4. 교육 업무에 대해 너무 이상향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5. 최근 업무가 바뀌어 불만이 있었다고? 상사가 퇴직을 해서라고? 그래서 마침 공석이 생겼다고 하기에 이곳으로 오려고 하는 건 아닐까?






결국 나는 이 대리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플러스 보다 마이너스가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좋은 점은 딱 두 가지였다. 회사의 구조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직급이 다소 높은 분들로 구성된 우리 팀에 필요했던 대리급이라는 점.


이 두 가지 말고는 없었다. 모호하고 고민스러운 점이 두 배, 세 배는 많았다. 이럴 때는 받지 않는 것이 더 맞다고 판단되었다. 차라리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람 한 명 잘못 들였다가 팀 전체가 힘들어하는 것보다 내가 조금만 더 애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이 대리에게 연락을 하려던 찰나, 나의 직속상사인 상무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팀장, 교육팀에 오려고 하는 직원은 만나 봤어요?"

"아, 네. 만나봤습니다."


"그래요? 그 직원 괜찮다던데? 고과도 좋고."

"... 그게요, 상무님..."


"왜요?"

"사실은,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평판도 나쁘지 않던데. 나랑 식사자리 한 번 마련해 주세요. 내가 한 번 만나볼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 또한 마음이 급하신 상태였다.

상무님의 상사께서 본인의 올해 가장 큰 목표를 맡고 있는 우리 팀 핵심인력이 빠져나간 것에 대해 매일 우려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대리, 과장급들의 많은 이탈로 허리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 귀한 대리님을 모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셨는 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대답에도 만나 보겠다는 단호한 말투에 더 이상 반대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나의 판단에 대한 의심도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상무님의 지시대로 점심 약속을 잡아 드렸고, 두 분이 함께 마주한 그날 퇴근시간 무렵, 상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팀장, 그 직원 괜찮던데요? 우리가 바라는 아주 뛰어난 경험과 역량을 갖고 있는 직원은 아니더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고 게다가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고요. 교육이나 조직문화 업무에 속도 내기에는 이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다음 달 1일 자 발령으로 이 대리와 그 팀 본부장에게 내가 얘기해 두었으니 참고하세요. "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단 1초의 틈도 없었다. 상무님은 이미 이 직원이 최선이라고 확신을 하고 계셨고 무엇보다 본인과 소속 상사에게까지 말한 상태이다. 이미 입 밖으로 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는 없는 건 물론이고 내가 받지 못하겠다고 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도 없었다. 모두가 그저 이 대리와의 30분 면담에서 내가 생각한 '예상' 되는 일과 모호한 "느낌"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대리는 우리 팀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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