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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Mar 17. 2024

사실은 잘 맞지 않았던 이대리(2)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 네. 차장님."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 네, 말씀하세요."


"이지혁 대리님, 조금 어려워요."

"예..? 어떤 점에서요..?"



이대리가 우리 팀에 온 지 이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팀원 분들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업무를 소개하고, 특히 선임 차장님은 이대리에게 맡길 일을 인수인계를 해주는 중이었다.


차장님은 교육 운영자의 기본자세와 마인드를 먼저 알려주었다고 한다. 교육 경험이 없으니 기본을 더욱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크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리는 차장님의 말씀을 듣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했단다. 교육 운영 매뉴얼이 무엇인지 먼저 알려주면, 그것에 맞추어 본인이 교육을 준비해 보겠다고 했단다. 무 자르듯 단호한 말투와 표정에 당황한 나머지 읽어보라고 준비했던 책까지 다시 들고 나오셨다고 했다.


워낙 내가 믿고 따르는 분이긴 하지만, 한 두 번 겪었던 상황만 듣고 쉬이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저 다음에 또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다시 솔직히 말씀해 달라고 전하였다.

기왕 우리 팀에 온 김에 어떻게든 잘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했다. 들려오는 의견들을 모아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적절히 피드백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대리에게는 본인이 원하던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맡겼다.

교육 기획안부터, 과목, 강사, 진행자료까지 모두 잘 세팅된 교육이고, 본인도 해보고 싶어 하던 일이니 첫 임무로 맡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일전의 나의 고민에 차장님의 의견도 더해졌던 터, 우려를 많이 했으나 곧잘 진행하였다. 사전 준비도, 운영도 원활하게 해냈다. 영업직 신입사원 대상 교육이었기에, 관련 경험과 지식이 많은 담당자로서 교육생들에게 더 생생한 정보도 전달해 줄 수 있었다. 

물론, 수십 명의 교육생들 앞에서 설명할 과하게 긴장된 모습이 보였으나 이는 경험이 쌓이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조금 모호한 부분이나 궁금한 점을 팀원이나 나에게 물어가면서 했다면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 보였다. 그토록 원하던 직무로 왔으니 빨리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의욕도 강하게 내비쳐졌다. 다행이기도, 우려스럽기도 했다.  


이후 두 번, 세 번의 교육이 있었고, 무난히 잘해 나갔다. 일단 큰 어려움 없이 한 명의 몫을 해 주고 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교육팀에 오기 전 걱정했던 점도, 차장님이 제기했던 좋지 않았던 모습도 거의 잊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용팀의 친한 후배 한 명이 와서 물었다.


"팀장님, 저... 혹시 이대리님 어때요?"

"응? 왜...?"


"그.. 조금 소통하기가 어려워서..."

"... 응? 어떤 게...?"


"아, 저희 팀에서 입문교육 할 때 근로계약 쓰느라고 잠깐 설명회 하러 가잖아요. 그거 시간 조율하고 내용 공유할 때 조금 강압적이기도 하고...."

".... 어... 얘기해 줘서 고마워... 알고 있을게.."




이뿐만이 아니었다.

입문교육과 연계된 팀의 팀장님이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팀장님, 내가 다른 팀 팀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거 정말 조심스럽기는 한데....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팀 팀원하고 협업할 일이 자주 있는데, 너무 밑에 직원 다루듯이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옆에서 듣기에도 불쾌하고... 팀장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요. 이런 말 해서.."




그때부터 이 과장의 모습과 행동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았다. 얼굴 표정이 자주 어두워 보였다. 일에 굉장히 집중해 있긴 했지만 경직된 모습이었다. 전화 통화나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을 들을 때면 마치 통보하는 듯한 어투가 배어있었다. 팀원들과의 대화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점심시간에 잠깐 같이 자리하는 것 말고는 거의 말을 섞는 경우가 드문 듯했다. 


분명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은 있어 보였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잘하는 것을 살리고 더 보완이 필요한 것들을 개선하도록 돕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 대해 좋지 않은 피드백이 들릴까 함께 평가가 될까 싶은 우려도 뒤따랐다.




그때부터 나는 이대리와 이 주에 한 번씩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2주간 진행했던 일 중 잘했던 것, 아쉬웠던 점, 지원이 필요한 점을 묻고 들었다.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에 있어 우리 팀원들 또는 다른 직원들과 소통했던 상황과 절차에 대한 부분도 포함시켰다. 

잘하고 있는 점, 개선되고 있는 점을 먼저 짚어주었고, 앞으로 고쳐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말하였다.


그가 하는 업무를 지켜보고, 면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었다. 영업부서에서는 숫자로 보여주는 일을 하였다. 주로 얘기하는 상대방도 유관 부서에 있는 직원들 보다는 회사 밖의 분들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정량적인 수치는 거의 없는, 정성적인 내용들을 주고받아야 하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나 하기 어려워하는 듯 보였다. 특히 사고나 행동이 경직되어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교육 안내문이나 이메일 등 글로 소통하는 것 또한 보완이 필요했다. 읽는 사람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쉬이 바뀌지 않았다.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참 많이도 언급했다. 그때마다 본인은 원래 부정적인 사람이라 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곳에서 근무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행동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능력으로도 주어진 일을 잘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입문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을 맡겨 보았다.

운영 방식부터 과목 선정, 강사 섭외, 안내문 등까지 모두 새롭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또 다른 장점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반면 잘 세팅된 교육이 아닌 조금은 더 어려운, 도전적인 업무를 해 보아야 자신도 무언가를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의 진도가 쉬이 나가지 못했다.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과목을 선정하는 것부터 막혔다. 강사 또한 엉뚱한 영역에 있는 분과 소통을 혼자 하고 있었다. 안내문 작성 하나에도 서너 번 이상의 수정 절차를 거쳤다.

내가 그의 일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같은 팀 내 차장님께 직무적인 부분을 같이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에게도 차장님에게 먼저 조언을 듣고 업무를 진행하라고 전하였다.

하지만 모든 절차에 있어 하나 둘 브레이크가 밟히는 건 여전했다. 차장님이 말한 것을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방향대로 준비해서 나에게 들고 왔고, 역시나 다시, 다시, 다시가 반복되었다.


솔직히 답답한 것도 많았지만 안쓰러운 점도 많았다. 꾸역꾸역 해 나가느라 얼마나 힘들까. 어려울까 싶었다. 누구든지 일은 잘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해 왔던 업무 습관과 그 사고의 벽에 자꾸만 부딪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의욕이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보고를 받을 때마다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잘 한 점을 미리 짚어준 후 고쳐야 할 것, 개선해야 할 것을 차분히 설명하였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

다소 강압적인 말투는 내 앞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생계형으로 애써 강한 척하는 심장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매 미팅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업무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의 태도와 마인드에 대해 언급할 때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미리 코칭 관련 책이나 영상을 찾아서 미리 공부하고 말할 순서에 대한 시나리오까지 짜고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솔직히 때로는 미운 감정이 들 때도 많았다. 이렇게 나도, 팀에서도 잘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 조금만 자세를 낮추고 받아들이려고만 해도 달라질 텐데 싶었다. 스스로에 대한 평판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면 좋을 텐데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되뇌었다. 나는 이 직원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일을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감정 따윈 접어두자.라고.






그렇게 6개월이 흘러, 우리 팀에 온 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그의 태도나 업무능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보완해 나가려는 모습은 보이고 있으나 일 하나를 마무리하는데 수어번의 수정과 보완은 계속되고 있다. 주변에서 들려오던 소통에 대한 어려움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두 번씩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어제 코칭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깊은 한숨을 푹 쉬고 목차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직원에게 다른 팀으로의 이동을 권하는 법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떤 리더십 강사가 그랬다. 아무리 부정적이고 능력이 부족한 직원이더라도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기다려 줘야 한다고.


시간이 꽤 흘렀다. 팀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했고, 그도 애를 참 많이 썼다. 다른 상사를 만났더라면 달랐을까 싶었다. 내가 리더십 스킬이 뛰어났더라면 그도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다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대리는 영업직에서 더 빛을 발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힘들어하며 애쓰는 것보다 잘하는 곳에 가서 날개를 펼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그가 더 잘할 수 있는 직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권해 보려고 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쓰려온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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