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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Mar 24. 2024

어느덧 50세가 된 오 차장 (1)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차장님의 목소리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조차 경쾌하다. 늘 그렇듯 목소리를 도레미파솔~ 솔에 닿아있다.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 차장님을 바라보니 활짝 웃는 미소로 반긴다.


뽀얀 피부에 갈색의 몽실한 단발머리, 얇은 쌍꺼풀이 놓인 반달 모양의 눈, 오똑한 코에 항상 미소가 띠어진 얼굴의 소유자. 작고 왜소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편안하고 단정한 패션을 선보이는 분. 게다가 말투와 표정의 모든 것에서 일에 대한 자신감과 차분함까지 느껴진다. 차장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정말 인상 좋으시다. 게다가 똑 부러져 보이기까지....'





오지은 차장. 그녀는 스물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다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급하게 다른 곳에서 파트타이머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몸담고 있는 이 회사에서 25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근무 중이다.


새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서 너 명과 일했던 사무실이 아닌, 서른 명 넘게 있는 현장직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시스템은 물론 문서 작성기준도 다양했다. 일은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나 가장 식은땀 나는 것 중 하나는 자신보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분들 사이에서 한 구성원으로 잘 녹아드는 일이었다. 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양쪽 입꼬리를 적당히 올리고 최대란 착한 눈모양을 만들며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의 하는 말에 기분 좋게 맞장구 쳐주었다.

일이 주어지면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했다. 모르는 점이 있으면 여러 번 질문도 하였다. 다른 분들에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지 살폈고 살뜰하게 도왔다.  


그때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일단 밝게 웃음을 유지하고, 새로운 일이라도 기꺼이 반기는 자세가 정답이었다는 것을. 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면 더 즐겁다는 것을.


그렇게 일에 재미를 더하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정규직 전환 추천서에 그녀의 이름이 올려졌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저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시작한 곳에서 정규직이 되다니, 자신을 받아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 마음은 당연히 일로 드러났다. 일에 애정을 담아 임한다는 것이 무엇인 지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여실히 보였던 것이다.






어느 날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차장님, 우리 회사에서 강사를 뽑는다네요. 차장님이 한 번 지원해 보시겠어요?"

"네..?"


"말씀도 잘하시고, 잘 웃으시고, 목소리 톤도 맞고, 무엇보다 말하기 하면 오 차장님이시잖아요."

".. 그렇게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 네,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또 다른 도전이었다.

팀 미팅에서 말할 때도 모기 목소리가 되는데, 몇십여 명 앞에 서서 그냥 말이 아닌 강의를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뱃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는 것을 그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몸소 익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강사양성 과정.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말투, 자세, 눈빛 하나하나 교정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잘 정리된 것 같았는데 막상 입 밖으로 뱉어내는 말들은 옆길로 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답답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강의자료는 왜 이리 작성하기 어려운 것인가. 처음 들고 간 문서는 빨간 펜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기소개 페이지부터 본문, 마지막 클로징까지, 글자 크기며 제목, 문장 표현, 심지어 안에 들어가는 이미지도. 아마 교정해 준 분의 펜의 잉크가 다 닳았을 지경이었을 테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교육받을 때뿐만이 아니라 집에 서도 부단히 연습했다. 관련된 책도 찾아서 보고 혼자 자료도 작성해 보았다. 출퇴근 길에는 중얼중얼 강의연습을 해 보기도 하였다.

 

3개월이 지나고 시범 강의 시간이 다가왔다.

서너 명의 전문 강사 앞에서 약 10분가량의 강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합격을 해야 사내 강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손의 모든 손금에 땀방울이 맺혔다. 심장은 목구멍까지 벌떡벌떡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렸고, 왼손에는 마이크를, 오른손에는 포인터를 쥐고 강단에 올라섰다.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함이 밀려왔다. 얼굴에는 미소를 띤 채 청령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번 입을 떼니 수백, 수천번 연습하고 상상한 대로 자연스럽게 마치 엊그제 이 앞에서 강의를 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이제 사내 전문 강사가 된 것이다.

팀에서도 함께 기뻐해 주셨다. 물론, 일 잘하던 팀원이 부서를 떠나 연수원으로 가야 하기에 팀장으로서는 아쉬운 마음도 컸다. 하지만 그녀가 신입 때부터 열심히, 성실하게 임해왔고 부서에 기여한 것도 많았다. 그래서 그녀가 더 넓은 곳에서 장점을 발휘하며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그녀는 연수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직원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자신이 직접 강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그만큼 모든 강의에 진심을 다했다. 그녀의 노력과 정성을 교육생들이 알아봐 주었을까. 강의 평가결과는 매번 최고점이었다.


어느 날 연수원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공공기관에서 비즈니스 매너 관련 강의 할 사람을 찾았고, 그녀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두려움이 따랐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강의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해당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섭외 요청이 왔고, 약 삼십여 번의 강의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이 내가 가장 빛날 때이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몸은 바스러질 만큼 힘들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자신이 이렇게 날개를 펼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번 그랬듯이.



그녀의 나이 서른 살 중반이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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