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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Mar 24. 2024

어느덧 50세가 된 오 차장 (2)



지금 그녀는 교육팀에서 근무 중이다.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담당하고 있는 일은 현장 직원들의 직무 교육이다. 또한 사내에서 운영되는 여러 과정들의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연수원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무렵, 회사의 방침이 바뀌었었다. 사내강사는 연수원 소속이 아닌 각 팀으로 이동하여 타 업무와 병행하라는 지침이었다. 회사의 수익이 예년보다 낮아지는 상황에서 인건비를 축소시키기 위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당시 무척이나 당황하긴 했지만 그동안 변화를 맞닥뜨리고 헤쳐 왔던 터, 크게 염려하 않았다.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그러한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이번에도 무난하게 적응해 나갔다. 교육 운영하는 방식이며 문서작성 방법 모두 새로운 것이었지만 하나하나 공부해 나갔다. 늘 그랬듯이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집과 회사를 가리지 않고 연습 거듭 반복했다.

이제는 강의뿐만이 아니라 교육 준비부터 운영, 그리고 결과 보고까지 할 수 있는 스킬을 갖추게 되었다. 이번에도 성장함을 느꼈다. 오히려 이런 것을 배우게 해 준 회사에 고마움까지 느꼈다.


늘 감사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이가 차고 경력도 많아지면서 불안함도 더해졌다.

교육팀에서 있는 동안 팀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두 명의 팀장은 그녀와 같은 연배였고, 심지어 세 번째 팀장은 자신보다 열 살가량 어린 사람이었다.


세 번째 팀장이 바뀔 무렵, 교육팀은 그녀가 일해 온 기간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전 팀장이 상사의 권고에 의해 갑자기 현장으로 발령이 났고, 다른 팀에 있던 팀장이 팀원으로 면직책 되어 교육팀에서 근무한 지 몇 개월 되었었다. 게다가 고과가 그리 좋지 않은 남자 차장 또한 딱히 주어진 일 없이 출퇴근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젊은 팀장을 배치 시키다니, 눈에 보이는 그림이었다. 나이 많은 차장들을 나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위기감이 밀려왔다. 그녀도 이제 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다른 팀으로 이동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교육 업무만 계속해왔던 터, 이미 무거운 직급인 자신을 받아줄 팀은 없을 것 같았다. 회사를 떠나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지도 알아보았다. 연수원에서 소위 잘 나갈 때, 그때 회사를 나가 전문 강사로 일을 했어야 했나 후회도 되었다. 젊음을 바쳐 일해온 이 회사가 처음으로 밉게 느껴졌다.




새로 온 팀장과의 첫 미팅 자리였다.

이전에 교육팀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기도 했다. 같은 팀이긴 했으나 직무가 달라 접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팀원이 다 같이 식사할 때 가벼운 대화 몇 마디 나눈 기억만 있었다.


미팅에 들어가기 전 각오를 단단히 했다. 지금 이 팀장도 조직으로부터 받은 미션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그녀를 내보내라는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일 거라 생각했다.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예상외의 분위기에 멈칫했다. 팀장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반가워요.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 아.. 네! 저도요. 이렇게 뵙게 되네요..."


"차장님, 연수원에서 저 만났던 거 기억나세요?"

"네..? 네.."


"그때 연수원에서 면접 진행할 때, 차장님이 챙겨주셨던 점심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때 저 임신 중이었는데... 하루 종일 서 있어서인지 엄청 힘들고 배도 고팠거든요... 하하. 그런데 식사 때를 못 맞췄는데도 우리 파트원들 식사까지 다 챙겨주시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아, 맞아요. 그랬었어요."


"차장님, 차장님 어떤 마음이신 지 알아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차장님과 꼭 같이 일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 팀에 강의를 하실 분은 차장님 밖에 안 계세요. 그리고 지금 이곳은 차장님처럼 밝고 긍정적인 분 꼭 계셔야 해요. 차장님과 같은 팀에 있을 때 알고 있었어요. 차장님이 얼마나 일에 진심이신지요.."

"아... 네.."


"아무리 윗 분들이 강하게 말씀하셔도 그분들은 이 팀을 우리만큼 잘 알지 못하실 거예요. 제가 설득해서라도 지금 이 멤버로 유지할 테니 차장님은 팀을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아, 네.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아, 네.'라는 말만 하고 나온 자리였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진짜일까? 믿어도 되는 걸까? 다행이긴 하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진심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일단 함께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돕자.'




그 말은 사실이었다.

팀장은 특유의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일을 해 나갔다. 사기가 저하된 팀원들 한 명 한 명 자주 면담을 했고 매주 팀원들이 다 같이 모이는 업무 미팅도 지속하였다. 팀 미팅에서는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는 팀원들이 서로 업무를 공유하도록 하였다. 그 자리에서 의견을 내기도 하도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서로 도울 것을 지시하였다. 업무 스킬 개발이 필요한 직원들은 더 잦은 미팅을 가졌다. 물론 어떤 팀원은 그 완벽성을 맞추기 위해 힘들어하기도 했다. 팀장은 그것을 알았는지, 이 팀이 임원들에게 인정받을 때까지는 자신이 일을 많이 세세하게 보고 수정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팀장은 그녀에게 개별적으로 부탁을 했었다. 팀 미팅에서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는 제스처라도 해 주시면 좋겠다고도 까지 했다. 또한 교육 과정 운영 준비나 강의를 하는 데 개선이 필요한 직원들은 차장님을 통해 배우도록 하겠으니 지원해 달라는 부탁도 했다.

모두 동의가 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흘러 팀장과 함께 일한 지 4년째를 맞이한다. 팀은 임원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심지어 교육의 중요도도 높아져 사내 강의를 할 일도 더 많아졌다. 몇 년 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실력을 마음껏 펼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 마치 서른 설 중반의 연수원 강사 시절, 신나게 일하던 그 때로 돌아간 듯 하였다.







어느덧 나이 오십.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일에서 능력을 발휘할 뿐만이 아니라, 후배 직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스킬을 전수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거기에 팀원 중 누군가가 조금 부정적인 기색을 비추거나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을 때 따끔하게,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고쳐주기도 한다. 지쳐있거나 힘들어 보이는 직원에게는 먼저 다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기도 한다. 그중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 건 다름 아닌 그녀의 팀장이다.




올해 성과평가 면담에서 팀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차장님, 올해 가장 뿌듯하고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일은 어떤 거였어요?"

"음.. 우리 김주임이 방황기를 돌고 돌아 잘 적응한 거요. 그리고, 일을 좋아하게 되고, 욕심내게 되고, 그리고 일의 결과도 좋았던 거요."


"맞아요..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 네?.."


"우리팀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무엇보다 제가 힘들 때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거요."

"....... ^^ "







구독자 분들께.

이것으로 첫 연재글을 마무리 합니다. 20여년 간 회사 생활을 하며 기억속에 또렷이 남는 사람들의 지금을, 과거를 되돌아 보며 적어 내려가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 유쾌함, 슬픔, 어려움 그리고 단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 많은 감정들 까지.


글을 읽어주시고 애정어린 답글도 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분에 주춤 하다가도, 느려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따스한 봄이 되었네요. 온기 가득한 글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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