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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Apr 28. 2024

상무님이 갑자기 나가셨다고요?


교육 진행으로 연수원에서 집으로 가는 퇴근길,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무님이다.


"아, 팀장. 운전 중이에요?"

"앗, 전무님. 통화 가능합니다."


"그, 교육은 잘 마쳤어요?"

"옙"


"교육이 내일까지죠? 혹시, 중간에 메일 보내면 사무실로 잠깐 올 수 있어요?"

"아, 예, 가능합니다."


"멀긴 하지만, 가능한 왔으면 좋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팀에 어떤 문제가 있나 와 같은 불길한 생각들만 떠올랐다. 하지만 그럴만한 건더기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티끌만큼도 없었다. 머리를 좌우로 휘저어 그만 고민하고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 날, 교육이 한창 진행되던 중, 전무님 발신으로 메일 한통이 왔다. 우리 부서에 속해 있는 다섯 명의 팀장들에게 모두 메일을 보내셨다. 오후 4시까지 전무님 실로 모여달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나는 외부에 있는 것을 알지만 다 같이 전달할 사항이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말씀도 덧붙여 있었다.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팀장들의 상사인 상무님이 수신자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즉시 가방을 싸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교육생 앞에서 교육을 진행하던 팀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문자 보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채 세미나룸 밖으로 향했다. 약 두 시간가량의 장거리 운전을 하고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즈음, 같은 부서 여자 팀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팀장님, 도착하셨어요?'

'네, 지금 주차 중입니다.'


'팀장님, 여기 지금 이상해요.'

'네?'


'상무님이, 나가셨어요.'

'네?'


'전무님 실에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아무 말씀 없이 옷 입고 나가셨어요. 최팀장이 상무님 가방이랑 짐 챙겨서 주차장으로 따라서 내려가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인 지 모르겠어요.'

'......'



사실, 몇 주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이상한 느낌은 들었었다. 전무님과 상무님이 미팅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어쩌다 한 번 전무님 실에 두 분만 계실때면 큰소리도 종종 들려왔었다. 각 팀에서 기획하여 상무님께 보고 드린 업무들 중 더 이상 진도를 빼지 못하고 홀딩된 건이 쌓여갔었다. 상무님은 자리에 앉아 계시긴 했으나 뭔지 모르게 무료해 보이기까지 한 날이 점점 많아졌었다. 십수 년 간의 경험으로 뭔가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상무님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급하게 일어선 것 마냥 회전의자는 옆으로 복도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외투와 가방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직원들은 평소처럼 각자의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사무실 내는 뭔지 모를 적막로 채워져 있었다.



오후 4시, 전무님 실로 모든 팀장들이 모였다.

전무님은 내가 봤던 모습 중 가장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계셨고 이미 사단이 난 것을 알고 있는 팀장들의 눈은 애꿎은 테이블만 바라보았다. 전무님은 조용히 입을 떼셨다.


"상무님은 오늘부로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었고 상호 동의 하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여러분의 직속상사는 저입니다. 매주 요일 주간미팅을 할 것이고, 주요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메일이나 메신저를 보내주세요. 업무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간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 다 알고 있었고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울러 팀원들도 동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상무님은, 전무님께 퇴직을 권고받으신 거였다. 한마디로 잘린 것이다.


상무님은 내가 신입시절 때부터 뵈어 왔던 분이다. 본인도 이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하셨고 50세가 넘어갈 때까지 자신의 젊음을 대부분 함께해 왔다. 한때는 회사가 성공하고 후배들이 성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분이기도 했다. 머리도 명석하셨다. 인사제도의 해박한 지식도 갖추셨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도 빠르게 하시는 분이었다. 일은, 일만은 누가 뭐래도 잘하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상무님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보고하기 전 대부분의 직원들은 뭔지 모를 긴장감으로 쭈뼛대었고 상무님은 그런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곤 했다. 조금이라도 논리에 어긋날 경우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셨고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은 온전히 직원의 몫이었다. 상무님의 의견은 모두 맞았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더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직원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겨웠던 것이다.


전무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가까운 자리에 앉아 계셨기에 직원들을 대하는 특유의 말과 행동들을 지켜보셨던 것이다. 고쳐야 한다는 점을 몇 번을 말씀하셨다고도 들었다. 타 부서와 협업하기 보다는 경쟁하는 상무님의 기조가 전무님과 극명하게 달랐고 그만큼 일적으로 부딪힌 일들도 많았다고도 했다.


안타까웠다.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회사를 사랑하고, 후배를 위하고, 명석하며 지식과 경험까지 고루 갖춘 분인데 태도와 언행으로, 그리고 권력을 중시하며 늘 누군가와 경쟁구도를 두는 모습으로 인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으로 입사해 상무라는 임원이 될 때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어 보이는 경력이었다. 일도 잘 해왔었고 그만큼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하지만, 그 실패가 없었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진짜 실패라는 결론을 내버린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그곳에 브레이크를 밟아 주고 겸손함이라는 것, 그리고 조직구성원들과 함께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던데 실패를 경험했어도, 가르침을 받았어도 론은 같았을까.






상무님께 감사한 마음도 많다. 똑똑한 분이기에 보고하기 전 완벽하게 일을 마쳐야 했다. 그만큼 나의 능력치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업무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꽤나 많이 가르쳐 주셨다. 즉, 일에 대해서는 배운 점이 참 많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연락을 먼저 드리기가 멈칫거려진다. 업무적인 외에는 정서적 공감이나 이해를 받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까. 설사 겉으로 말은 주고받았어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내가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간일 지도 모르겠다.

약 10년간 나의 팀장으로, 임원으로 모셨던 분인데도 회사라는 연이 끊기자 한 인간으로서의 연 또한 완전히 끊어지고 있는 이 회사라는 공간이 매섭고도 무섭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호기롭게 연재를 시작했으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어 본 연재는 2화까지만 올리고 잠시 중단합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 드리며, 다음에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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