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첫째 아이의 기침소리에 한 번 깼었다. 이어서,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살포시 안아주는 아이의 손길을 느꼈다. 보드라운 볼을 내 얼굴에 대며 '엄마, 내일 아침에 꼭 깨워줘야 해.'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들렸다. 응.이라고 답하고는 다시 잠들었던 것 같다.
핸드폰 알람을 한 손으로 끄고는 눈을 꿈뻑이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되뇌다가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이 더 컸다. (어쩌면 더 자고 싶은 이놈의 육신 때문인 지 모르겠다. 월요일은 특히 그 강도가 심하다). 사람이 일은 하며 살아야 하기에, 그리고 회사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출근은 맞다라고 생각하면서 가까스로 손발을 움직였다.
출근 준비를 모두 마치고는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아침에 깨워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엄마를 원망할 거라는, 자신이 아주 안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전날 밤 아이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침대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아이의 볼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아직 깜깜한 방에서 두 눈을 꼬옥 감고 꿈나라에 있는 아이를 깨우고 있노라니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는 이내 눈을 반쯤 뜨고는 두 손으로 더듬더듬 내 볼을 감쌌다.안아줘 라며 웅얼거리는 아이들을 차례로 품에 안았다. 달콤한 숨냄새와 함께.
이제 출발해야 한다. 현관으로 나오려는 아이들에게 다시 침대에 누우라며 허겁지겁 현관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아이들은 방으로 다시 들어갔을 까. 다시 잘 잤을까. 울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월요일이다.
한 주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중심의 삶에서 나와 회사의 삶으로 스위치를 옮겼다. 확언을 듣고 오디오북을 듣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틈을 만들 수 있는 세상으로.
후. 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두 눈꺼풀에 힘도 바짝 쥐었다. 그래. 이게 최선이야. 아이들도 보고 일도 해야 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또 한 주 잘해보자. 다짐하며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시작.
이번 주의 오디오북은 고전을 읽어보자 다짐했던 차였다.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 오래전부터 제대로 읽어야지하고 마음만 먹었던 책이다. 최근 초보자들이 읽기 좋은 고전이라고 추천까지 받아 오디오북으로라도 먼저 들어보자 했던 거다.
플레이. 신비로운 BGM과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렵고 딱딱할 거라 여겼던 생각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한 양치기 소년의 모습과 생각을 나타내는 문장들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는 매끄러운 문체를 따라가기에 벅찼다. 상념의 고리를 자꾸만 잡아끌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을, 갈등을 건드려댔다. 바라는 것, 원하는 것, 하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의 경계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보니 어느새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멈춤 버튼을 누르고 메모를 하고 싶었는지. 오디오북으로만 들어서는 아쉬운, 반드시 눈으로 읽고 밑줄에 메모까지 해야 하는 그런 책이었다.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쳐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는데 자꾸만 아침에 들은 팝콘장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때 먼 곳으로 탐험을 하고 싶어 했던, 하지만 이제는 팝콘 파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적당히 잘하고 또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래서 과거의 열망을 어딘가에 덮어둔 채 살아가는, 그런 사람 이야기.
나는 팝콘 장수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다.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매일, 내가 쌓아온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부단히 고민하고 있으니, 노력하고 있으니.
회사에 출근해 팀원들과 둘러앉아 주말에 있었던 일과 오늘의 컨디션을 서로 나누었다. 피곤하긴 하지만 하루가, 한 주가 또 시작되었으니 파이팅 하자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 파이팅은 어쩌면 팀원이 아닌 나에게 가장 크게 외쳤던 게 아니었을까.
월요일은 팀장들에게도 참 쉽지 않은 요일이다. 주말의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자리에 꼬박 앉아 주어진 일들을 하기 시작해야 하니까.
그래서 더욱 책임져야 할 아이들, 사랑을 더 주지 못하는 속상함, 하고 싶은 것들의 틈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