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엄마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
버럭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울었다.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
그것도 3학년을 시작한 첫날, 하루를 끝낼 즈음.
아이들 마음과 몸에도 긴장이 가득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니, 나는 긴장보다는 미안함이, 아쉬움이 컸다.
3학년 첫날 내 손으로 머리를 묶어 주지 못해서, 갓 지은 아침밥을 차려주지 못해서.
그리고, 교문에 들어가는 모습을 사무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의 작은 사진으로만 봐야 해서.
회사 일이 유난히 많은 날이었다.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3월, 우리 부서에서는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 도전하자.라는 메시지를 전할 문구를 작성한다. 1년 동안 전사에 홍보될 이 문구를 최종 결정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외, 오늘이 데드라인인 업무들이 널렸었다. 미팅도 세 개나 잡혀있다. 왜 미리 해두지 못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들 방과 후 신청과 일과표를 짜야한다.
방과 후 시간표와 메모지,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휴게실로 향했다. 나에게 부여된 모든 집중력을 한데 모아 과목과 선생님 핸드폰 번호를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예약 문자를 설정해 두었다.
결과는, 3개 중에 한 개만 되었다. 다시 일을 하려는데, 각 선생님마다 문자가 온다. 대기 밖에 안된다. 다른 시간대는 가능하다. 신청한 시간에 1학년이 대부분인데 괜찮겠냐. 등등.
내 일을 하고, 임원에게 보고 하고, 팀원들 업무 봐주고, 타 부서 요청사항도 듣고, 하는 중간중간 문자는 계속되었다. 일과표 편집도 반복되었다.
방과 후 신청이 전부였으랴. 휴무인 남편에게 아이들 영어 수업 책 대여 해달라, CD도 대여하라, 다음 날 학교 가져갈 준비물 몇 번째 서랍에 있다, 등 의 문자도 계속되었다.
말 그대로 빈틈없는 하루가 지나간 것이다. 그 말은 곧 나의 온 신경이 곤두선 하루였다는 것이다.
집에 왔다.
아이들은 영어 줌 수업을 예쁘게 듣고 있다. 평온하다. 이제 나도 씻고 30분이라도 시간을 갖자.
의자에 앉았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가정환경조사서가 또 다른 할 일로 다가온다.
1학년, 2학년 때는 선생님께 드리는 메시지란을 공들여 꽉꽉 채웠었는데, 숨 쉴 틈 없는 하루 때문이었을까, 읽어 보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두었다.
넷이 앉아 저녁을 먹는데 유독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읽는 둘째가 작은 입술로 오물오물 말을 건넨다.
‘엄마, 슬퍼 보여’
‘응? 아니야, 오늘 노트북을 많이 봤더니 눈이 피곤해서 그래’
오늘 아침 감사 일기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웃자, 칭찬하자를 꾹꾹 눌러 적었었다. 일주일째 그랬다. 하지만 글자로만 남은 지 오래다. 둘째의 말 한마디에, 그 글자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피로한 내 마음과 몸을 뒤로 숨기고, 오늘 새 학년을 시작한 두 아이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 주기 시작했다. 일부로 입꼬리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9시가 넘도록 책가방은 싸지 않고, 양치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시에 들어가자 약속해 놓고 10분 전까지 팔씨름하자는 것, 그림 그리기 같이 하자는 것, 물 먹으러 같이 가자는 것, 모두 함께 했다. 기다리고, 참고 또 참았다.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을 끄고 혼자 누웠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두 명의 징징거림. 첫째 아이가 학교 가는 게 싫다고 잉잉거린다. 그 아이를 달래니, 둘째 아이가 질투가 올라오나 보다. 나를 끌어당기고 첫째 아이에게 비아냥 거리는 말을 던진다. 둘째 아이를 멀리 떨어 뜨리니,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부터 시작해 엄마 싫다, 자기를 사랑하는 게 맞냐,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대꾸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더 커진다.
그러다 터진 것이다.
그냥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울부짖음이었다.
‘너희는 오늘 엄마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회사 가고, 중간에 방과 후 신청에 너희 준비물 챙기고, 너네 보고 싶어서 서둘러서 집에 오고,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잘 준비하고. 시간은 안 지킬 거면 뭐 하러 정했어? 응? 엄마가 싫어? 미워? 그러면서 왜 매일 엄마랑 자자고 해, 지금 이게 몇일째야. 이렇게 징징거리면서 잔 게,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는 너희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힘든 일, 기쁜 일, 슬픈 일은 얘기할 수 있어. 말로 해야지 말로. 그리고 너희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에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앞으로 같이 자자는 말 다시는 하지 마!’
휴.
그렇게 아이 둘은 몇 개월 만에 가장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댔고, 나도 같이 울었다.
여자 셋이, 밤 11시에.
시간이 지나 감정이 좀 사그라 들었다.
아이들의 퉁퉁 부운 눈과 얼굴을 보니 후회가 밀려온다.
1년만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자고 남편에게 부탁했던 그 말이 수치스럽게 다가왔다.
화내는 것도 학대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한 것인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들도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둘째 아이는, 몇 번을 망설이다 간신히 입을 떼어 말한다.
‘엄마랑 침대에서 같이 자고 싶어’
얼굴을 몇 번 쓰다듬어 주니 금세 잠이 든다.
눈물 자국이 얼굴에 그대로다.
글로 적어 보니, 아이들의 행동은 슬퍼 보이는 내 표정부터 시작되었다.
그저 걱정이 되어서, 마음을 이해받고 싶어서, 엄마를 차지하고 싶어서,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서였다. 정말 순수하고 여린 마음이었다. 엄마를 사랑해서 그런 거였다.
걱정되는구나, 괜찮을 거야. 엄마는 너를 사랑해, 언니가 지금 속상해하니 달래주고 갈게.
하지만, 엄마한테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야. 조금 더 진정하고 말해보자. 라고 기다리고 단호하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휴.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이 피로해 감길 때까지 인스타, 브런치를 뒤적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 5시.
아이들에게 뭐라도 적어주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를 몇 시간을 걸려 적어냈는데,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어제 엄마가 미안했어, 화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엄마도 지금 너희처럼 자라는 중 인가 봐. 더 공부하고 노력할게.
오늘 좋은 하루 시작해! 그리고, 뭐든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너를 믿는 하루가 되길 바래’
그리고, 어제 한켠에 밀어 두었던 가정환경조사서에 선생님께 드리는 말을 채웠다.
‘따뜻한 가정에서 예쁘게 자란 아이들입니다. 많이 칭찬해 주시면 그만큼 잘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다. 그렇게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계속 지금처럼 올바르고 밝고 사랑스럽게 자라게 도와줘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나부터 토닥거려 주자. 내 힘듦을 먼저 돌봐주자.
그럼 아이들도 엄마의 밝은 표정을 보고 함께 행복할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이 세상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어른이 더 연습하고 단단해 지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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