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잠에서 깬 아이들이 방 밖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 나온다.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안는다. 주말 아침에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은 거다. 귀여운 녀석들.
게다가 오늘은 브런치로 수플레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젯밤 자기 전 새끼손가락 꼭꼭 걸고 약속까지 했다. 이어서 어제 서점에서 봐둔 인형도 살 예정이니 기분이 하늘에 닿을 듯할 것이다.
반면, 안타깝게도 엄마 사람의 체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주말에는 그 바닥난 에너지를 끌어 올리느라 바쁜 나날 들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겪는 두통이 하필 오늘 찾아와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타이레놀 두 알을 삼켰건만, 그걸론 부족했던 것이다.
카페에서는 포크 몇 번 깨작거리다가 말았고, 서점에서 눈을 반만 뜨고 걸어 다녔으며, 보이는 의자마다 걸터앉았다. 의식하지 못한 채 한숨은 수십 번 쉬었을 것이다.
둘째 아이는 관찰력이 뛰어난 편이다. 주변을 잘 살피며, 눈치도 빠르다. 특히, 본인에게 전부인 나, 엄마의 표정, 손짓, 목소리 하나하나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알고는 있었다. 아이가 수플레를 오물오물 먹으면서도, 인형을 고르면서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눈동자에 걱정이 드리워져 있음을 말이다.
한 번씩 나에게 와서 아무 말 없이 안고 가기도, 어깨를 두드리기도, 또, 보드라운 손으로 내 열굴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통증이 조금씩 날아갔던 것이었을까.
늦은 저녁,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잠자리를 고르게 펴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몸을 베베 꼬며 말을 건넨다. 특유의 부끄러운 표정이다. 요 녀석, 또 어떤 예쁜 말을 하려는 걸까.
“엄마,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야?”
“응? 왜에~? (웃음)”
“그냥. 불러줄 수 있어?”
“왜에~?”
“그냥~”
“.. 가을에, 태어난, 아름다운 아가는, 하늘보다 맑은 나만의 사랑..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이 어릴 적, 겨울아이를 개사해서 불러줬던 노래다. 아이들은 내가 지은 노랜 줄 안다)
흡족한 웃음을 짓더니 방 밖으로 총총 걸어 나간다.
혼자 씨익 웃고, 매트를 마저 정리하고 있는데 다시 방으로 쪼르르 들어오더니 내 귀에 대고 귀염진 목소리로 속삭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엄마는, 하늘보다 맑은 나만의 엄마.,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엄마는, 하늘보다 깨끗한 나만의 사랑…..”
아. 모든 긴장과 피로가 말 그대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에게서 종일 시선을 놓지 않더니, 엄마를 힘나게 하고 싶었나 보다. 아이의 마음이 참 예쁘기도, 고맙기도, 또 한편으로는 엄마를 웃게 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와락 안아주었다. 엄마한테 온 가장 큰 선물이라고,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면 등의 따스한 불빛만 아른거리는 방 안, 아이 둘과 함께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누워있는 내 얼굴을 옆에서 빤히 바라본다. 1초, 2초, 3초..
작고 까만 눈동자와 눈 맞추고 있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렇게 아이는 내 눈, 코, 볼을 차근히 눈에 담더니, 품에 쏙 안긴다.
“왜~? 왜 그렇게 엄마를 쳐다봐~?”
“응~ 엄마 얼굴을 밤에 이렇게 본 게 오래된 것 같아서. 엄마 얼굴 보고 싶어서.”
“…”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누군가가 온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 준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사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고만 주로 여겨왔던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아빠에게 이렇게 순수한 사랑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아이가 주는 사랑을, 그 맑은 마음을, 매 순간 놓치지 말고 담아둬야겠다 다짐해 본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품에 가만히 안았다. 달콤한 향이 온몸에 묻는다. 볼록한 이마에, 오동통한 볼에 입 맞추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진짜 사랑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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