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만 8년째 함께 거주하는 여자 아이가 한 명 있다.
내 뱃속에서 나왔고,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등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해 왔다. 그만큼 아이의 눈빛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감정을 눈치챌 수 있고, 걷는 속도, 손끝의 놀림만 봐도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물론, 성격이나 취향도 완벽히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 했.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이 아이가 아주 생소한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작년 가을에 사다 놓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분홍색 리본 머리 끈 네 개, 다른 한 손에는 빗과 거울이 들려있었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엄마, 머리 양쪽으로 요렇게 땋아줘. 그다음, 밑에 한 번 더 묶어줘. 이 머리끈으로.”
“으, 응?”
편한 게 좋다며 면바지만 입던 아이였다. 블라우스도 거부했었다. 초등학교 3년 내내 늘 고무줄 하나로 질끈 묶고만 다녔었다.
내심 신기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벌써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나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렇게 처음으로 쑥스럽게 부탁을 하니, 한 올 한 올 분부하신 대로 정성껏 묶어 주었다. 가져온 거울로 머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보고 나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치마를 양손으로 살짝 잡고 펼쳐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이 났는지 화장대로 가서 분홍색 왕리본이 달린 머리띠까지 위에 얹는다. 세상에, 그 작은 머리통에 리본이 다섯 개라니. 투머치다.
그날 아이는 오후 내내 앞으로 내려오는 왕리본 머리띠를 수십 번 고쳐 썼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걸리적거리는 두꺼운 원피스와 함께했다. 책을 읽고 방방이도 뛰었으며 잠시 낮잠도 잤다.
저녁을 먹을 때 즈음, 아이가 갑자기 하늘색 레이스를 힘없이 풀덕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뱃살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단다. 위에서 보면 뱃살 때문에 발이 안 보인단다.
저기요, 어제까지만 해도 뱃살을 겹겹이 손으로 잡고 말랑거려서 좋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녁 먹는 내내 밥도 깨작거리면서, 자신의 뱃살을 몇 번이나 내려다보고 연신 얼굴을 찌푸린다.
괜찮다, 애들은 원래 뱃살이 좀 있는 거다, 그리고 그 머리 좀 푸르고 공주원피스도 좀 벗어라.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으나 이를 꽉 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물었다.
"뱃살이 언제부터 나와 보였어?"
"오늘 아침부터"
"어제저녁에 뭐 많이 먹었어?"
"응, 고기. 엄청 엄청 많이."
"그럼,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아, 그런가? 그런가 보다. 헤헤."
"..."
이후 아이는 금세 웃음을 찾았고 자신의 뱃살을 겹겹이 잡고 다시 예뻐하기 시작했다. 3층 인절미 케이크 같이 뽀얗고 말랑여서 좋단다.
물론 불편하다며 삔과 원피스도 저 멀리 벗어던졌다.
휴 다행이다.
순수함이 벌써 뒤로 사라지기 시작한 줄 알았다. 사춘기가 고개를 드는 건지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꼈었다.
티셔츠에 반바지만 입고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소파에 엎드려 세상 편하게 책을 읽고 아이의 모습이 내심 반갑다. 런닝 아래로 볼록 튀어나온 뱃살이 유난히 귀염지다. 하루 종일 쓸데없는 걱정을 한 나 스스로가 겸연쩍어 슬쩍 웃으며 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제일 예뻐. 지금의 너를 온전히 사랑해도 돼.
엄마도 그런 너의 모습을 더 오래오래 보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뱃살은 다 키로 갈 거야. 엄마만 믿어. 알았지?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