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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11. 2024

천사를 보았다 -part 02

EP 08

My old school's Garden of prayer looks just like this 


열대 기후에서도 대학 캠퍼스의 새벽 두 시의 날씨는 꽤 서늘했다. 

아니, 내 등골이 서늘해서였을지도 모른다.


'...........'

'.................'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몸집이 거대한 2미터의 미국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키가 너무 큰 나머지 우리 네 명은 그 앞에서 각각 싱가포르, 대한민국, 아프리카에서 온 메뚜기처럼 보였고, 우리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불빛은 그 남자의 가슴 높이까지 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농구부 최고의 관심사였던 교장선생님의 딸 "베쓰(Beth)"의 아버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우리가 들었던 소문으로는 이제 우리의 운명은 거의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 남자는 인디언의 후손이었고, 성격이 매우 괴팍해서 자신의 예쁜 딸을 그 어느 잘난 남학생에게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철저한 원칙 주의자인 그의 눈에 어느 누구라도 한 번 잘못 걸리는 날에는 뼈가 가루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들이 그날 새벽 우리의; 아니, 그중에서도 먼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에서 유학을 온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새파랗게 어린 나의 미래를 무자비하게 날려버릴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에게 건넨 한 마디는 정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Have you guys come here to pray even at this late hour?"

("이 늦은 시간에도 기도를 하러 이곳에 왔니?")


나는 아직도 그 큰 덩치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남자; 아니, 그분의 목소리는 그때까지 내가 TV나 카세트 테이프로 들어봤던 그 어떤 미국인의 목소리보다도 감미롭고 부드러웠으며, 힘이 실려 있었다. 굳이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로 설명을 하자면, 발라드 가수 성시경 님과 성우 남도형 님을 섞어놓은 목소리로 "Good night~(잘 자요~)"이라고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격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우리 네 명은 그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이 풀어져서 저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그분 앞에 서 있던 약 2분간의 시간 동안은 정말 눈앞에 'Detention(방과 후 남기)'라던가, Expelled(퇴학당하다)'라는 단어가 아른거렸던 지옥의 시간이었다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난 이후에는 정말 천사를 만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긴장이 풀린 얼굴을 하자, 그분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가 밤에 왜 마음대로 이 '기도의 동산'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지에 대하여 말해주셨고, 우리는 당연히(?) 단정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의 훈화말씀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우리 사이에 뜨거운 감자였으며, 최고의 관심주제였던 자신의 딸 베쓰(Beth)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때까지 아무도 베쓰에게 접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며, 베쓰 자신의 남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 것이지 절대로 그분이 나서서 자신의 딸에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진실을 직접 베쓰의 아버지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우리를 넌지시 바라보며, "So, which one of you said you want to go out with my daughter?(그래서, 너희 중 누가 내 딸과 데이트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지?)"라고 물었는데, 우리는 모두 그분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전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옆의 어떤 미친놈이 번쩍 손을 들었다. "It's me, sir.(제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놈은 나의 절친 에드먼드(Edmond)였다.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네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라는 얼굴로 에드먼드를 쳐다보았는데, 베쓰의 아버지는 웃으면서 에드먼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고, 갑자기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I also said it, sir.(저도 역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놈과 나도 역시 손을 들고 'We all said it, sir.(우리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집; 그러니까 베쓰의 집이자 교장선생님의 집으로 그 주 토요일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사실, 베쓰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에드먼드뿐이었는데, 나중에 식사를 마치고 베쓰의 집에서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에드먼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에드먼드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No big deal!(별거 아니야! 괜찮아!)"


나는 먼저 돌아서서 앞장서는 에드먼드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인디언의후손

#인기녀

#농구부

#유학생활

#점심초대



Q: 여러분은 학창시절 좋아하는 누군가에 관하여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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