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에서.
넌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잖아.
철저히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어. 결국 누군가를 찾게 되더라.
그래도 넌 혼자 여행하잖아. 내가 낭시(Nancy)에 다녀왔을 때를 기억해?
너의 말대로 난 혼자 떠났지만, 메쓰에서 낭시까지의 50분 남짓한 기차에서만 겨우 혼자였어. 낭시에서 얼굴만 아는 남자아이를 만나 하루를 같이 여행했지.
시도는 해봤네.
그렇지. 그것만으로도 안 되겠더라. 난 여행을 하더라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어.
그럼 이건 어때? 너랑 내가 여행을 가는 거지. 유럽으로. 이를테면, 같이 독일로 가는 거야. 가서 나는 뮌헨에서 맥주를 마시고 너는 하이델베르크를 혼자 여행하는 거지. 기차로 4시간이면 닿을 거리니 괜찮지 않을까?
또 맥주야? 여하튼, 그러다 뭐라도 잘못되면?
4시간 안에 내가 너를 보러 가겠지.
그 4시간을 나 혼자서 버티라고?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그래. 넌 혼자 여행하기는 어렵겠다. 여자로 불안한 것도 있을 테고. 약간 다르긴 하지.
맞아. 이집트 여행 기억해? 넌 낙타도 타고 피라미드도 봤지만, 혼자여서 즐겁진 않았잖아.
이집트여서 그랬지. 어떤 맥락인지는 알 것 같아. 언젠가 한 번 가. 힘들면 같이.
알았어. 언젠가.
탈린의 바람은 시리도록 추웠다. 여름 같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몸이 휘청였다. 바람은 나를 넘어뜨리고 싶기라도 한 듯 한참을 불어왔다. 한참을.
탈린은 거대한 체스판이고 골목에 선 나는 폰이었다. 뒤로 갈 수 없어, 트라파니에, 리가에 마음만 놓고 다시 떠나온. 승급을 기대하며 바람과 맞서 전진 또 전진. 끝내 넘어지는.
한참을 걸어 구시가지에 다다랐다. 14세기 축조된 방어시설의 잔재인 비루 성문(Viru Gate)과 무수마기(Musumägi) 성곽이 나를 맞았다.
성문 옆에는 맥도널드가 있었다. 연 노란빛 조명 아래 감자튀김을 집어 먹으며 삼삼오오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스크림을 양쪽에서 핥아먹는 연인의 모습이 창에 비쳤다. 창이 흔들렸다. 차마 침범할 수 없는 안온함이었다. 문 열기를 주저하고 서있기를 한참, 나는 발걸음을 돌렸고, 창밖은 추웠다.
또 성문 앞 길가에는 꽃집이 있었는데, 나는 팔리지 않는 꽃다발이 된 것만 같았다. 어찌 바람을 견뎌내고 있으나 곧 가장자리부터 갈빛으로 바래져 갈 늦여름의 꽃다발. 주인마저 뒤돌아본 채 외면하는. 억새같이 질겨 상품성 따윈 없는. 억새도 꽃을 피우던가.
꽃집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성문을 지나쳐 걷다 보니 시청 앞 광장에 다다랐다.
광장에는 시민을 위한 책장이 있었는데, 무성의하게 꽂힌 책들 사이에서 정작 내가 발견한 건 '맞아 언니 상담소'라는 한국 책 한 권이었다.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책 더미 속 한국 책 하나. 스르륵 장을 넘기다 눈에 들어온 구절 하나.
'무조건 내가 맞는다고 해주면 안 돼? 나도 안다고, 내 말이 다 옳지는 않다는 거. 그래도 그냥 그 순간만은...'
누군가 홀로 여행해야 한다, 무조건 그게 맞다 얘기라도 해줬으면 했던가. 옳은지 그른지. 탈린은 도무지 모를 일 투성이었다. 확신한 건 하나뿐이 없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생각을 갈무리하고 시청 광장을 지나 한 골목을 꺾어 들어가자 주에스토니아 러시아 대사관이 나타났다. 대사관의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둔중하게 땅에 심겨 있었는데, 군인 두 명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의 무표정한 얼굴에 지난 여름 나를 가르쳤던 교수의 얼굴을 겹쳐 보았다.
피렌체에서 맞는 여름이었다. 당시 건축학 교수 마이클 레밍 씨는 내게 "동유럽은 위험하니 브라티슬라바는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하마."라고 말했었다.
얼굴 근육이 싸늘하게 굳어버린 군인을 뒤로하며, '그때는 결국 넷이서 브라티슬라바로 갔었지.' 따위의 생각을 한참 했다.
이제 나발니는 죽었고, 작년 다녀온 조지아의 카즈베기 옆에는 러시아의 괴뢰국 남오세티야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한창이었다. 여기서 전쟁은 가까웠다. 깃발에는 피인지 모를 붉은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우둘투둘한 돌길을 걸으며, 나의 발목은 꺾이기를 반복했고, 나는 비틀거렸다. 넘어진 폰은 장외에 던져져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에, 그렇다면 나 역시 더 이상 그 무엇도 아니겠지만, 또 그렇다면 유럽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탈린은 한 귀퉁이도 못 차지할 따름인데, '그들은 무엇에 분개하는가?'. 아릿하게 못된 생각이 스쳐갔다.
시칠리아의 트라파니에서 라트비아의 리가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이 걸렸고,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에스토니아의 탈린까지는 버스로 또 4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우크라이나의 키이우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릴 터였으나, 비행기는 뜨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여기 탈린에서 바라본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저기 일본이나 중국에서 벌어지는 전쟁만 같았다. 서부 전선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것만 같았다.
20일 전쯤 다녀온 폴란드 위에는 부동해에 대한 러시아의 염원이 투영된 월경지 칼리닌그라드가 있고, 탈린에서 리가까지의 거리만큼 북으로 달리면 발트해의 요충지 상트페테브부르크가 나올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유럽이라는 체스판 뒤의 카스파로프*를 떠올릴 수 없었다. 어쩌면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모든 계획과 예상이 어긋나 부서지는 일이어서, 나는 러시아의 독재자와 체스 챔피언을 연결 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관심이 쌓이고 쌓여 전쟁은 더욱 늘어지고 있을 터였다.
밀라노였던가. 자그레브였던가. 고등학교 동창이 내게 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탈린이랑 가깝다는 건 알고 있어?"
나는 "알았으면 한 번 다녀왔을 텐데."라는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더랬다.
또 시칠리아였던가. 리가였던가. 유럽을 함께 여행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북유럽은 안전해? 별일 없지?"
나는 "애틀랜타보다는 안전하지. 보고 싶네."라며 또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더랬다.
장외로 던져진 폰은 무사했다. 그럼에도 승급하지 못한 채 후방으로 밀려난 병정은 그 소인배적인 면모를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정작 나이트와 룩과 퀸을, 그리고 킹을 걱정하지 않았다.
멀리. 더 멀리. 카이로에 휘날리던 팔레스타인 국기부터 프라하 카를 교 앞 성당에 걸린 우크라이나 국기까지. 어디서든 전쟁은 가까웠지만, 내게는 아득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숙소에 짐을 맡겼다.
숙소의 지하에는 어울리지 않게 사우나가 있었는데 그 사우나는 텅 비어있었다. 지하 옆에는 또 주방이 있고 식탁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말을 붙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 않는 사람만 있고, 하는 사람은 없어, 마치 온 부엌이 신호 끊긴 라디오 같아, 모두가 지지직거렸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니 홀로 하는 여행이니 그 모든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라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배가 고팠다. 라멘이 먹고파 숙소를 나섰다.
탈린의 하늘은 흐리다가도 맑았다. 그럼에도 바람은 늘 불어왔다. 허연 피부 창백하고 눈은 푸른 백인들이 광장을 점령하고 있었고, 간혹 가다 인도인들도 눈에 뜨였는데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관광객이었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라멘 집으로 가는 길 옆의 주차장에는 노숙자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거리에서의 일상을 즐기는 시민들이 아닌 거리에서의 일상을 살아가는 노숙자에게 공감했던 것 같다.
텅 빈 요구르트 네 병이 땅에 뒹굴고 있었고, 사내는 트렁크에 기대 비스듬히 누운 채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펴본 적도 없는 담배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 다를 것 없는 처지라 나쁘지 않겠다, 못할것 없겠다 싶었다.
도착한 라멘집에서 나는 헤드폰을 끼고 스크롤을 내리며 롤 한 접시와 라멘 한 접시를 해치웠는데, 치즈는 달큰하면서도 짭조름했고, 라멘의 진한 돼지육수는 송송 썬 파와 요상하게 어울려 나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육체의 허기는 돈 조금 부어 잊었지만, 에스토니아 사람이 운영하고 에스토니아 사람이 서빙하고 에스토니아 사람이 먹는 식당에서의 정신적 허기는 참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조금 더 도시를 돌아보자.
더 돌아보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으려나.
성당으로 가는 길, 탈린의 하늘은 기분 나쁘게 흐렸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결국 여우비가 쏟아졌는데, 나는 우산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 그래서, 빗길을 뛰다 또 한 번 우둘투둘한 돌길에 미끄러져 휘청였다.
사실 맞잡은 손들이 그리도 거슬릴 일은 아니었다.
바람이 불든, 비가 내리든 그저 나아가면 될 터였다.
나는 내게 물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가?
답 따위 해줄 사람은 없었고, 바람이 체스판을 다시금 뒤흔들었다. 북풍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잠에 들 준비를 마쳤다.
탈린에서의 시간은 바람대로 흘러갔다.
이른 아침, 구보의 마지막 3분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아군처럼 빨라지는 발걸음. 아니, 나는 늦은 저녁 야습에 줄행랑치는 적군처럼 바삐 더 바삐 걸었다. 발을 빨리 놀리면 달아날 수 있다는 듯이.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비는 세차게 내렸다. 나는 외로웠고, 이불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바스러진 억새처럼 몸을 꺾어댔다.
노트북은 머리맡에 두고, 여권은 주머니에 밀어 넣고, 또 가방은 사물함에 단단히 넣어둔 채 외로움을 느끼는 나는 북유럽의 온기 같은 인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노트북이 멀쩡히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주머니를 한 번 더 뒤졌다가 이 층침대에서 잠시 내려가 자물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이후, 창틀 사이로 스미우는 북녘의 바람을 맞으며 침대 속으로 바스러졌다.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말해주어야겠다.
내가 탈린에 다녀왔던 그때를 기억하냐고. 결국 나는, 끝내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해 철저히 혼자였다고. 혼자 하는 여행을 마냥 좋아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고.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사무치도록 외로울 때가 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고.
Nov 2nd, conversation with P,
P: You like to solo travel.
L: I've never been that solo. You always end up with somebody.
P: Still you solo it. You remember when I went on a day trip to Nancy?
P: I took your advice, tried to solo, but except some time in the train, I ended up running into a guy from GTE and we traveled together the whole day.
L: At least you tried.
P: Yeah. But even that was enough. If I'm traveling, I need someone next to me.
L: What about this. You and I. We go to Germany. I will be in Munich drinking beer and you could go explore like Heidelberg. 4 hours by train.
P: Lim... beer? Anyways, what if things go wrong.
L: I'll be there for you within 4 hours.
P: 4 hours, alone? What if things go wrong within that 4 hours.
L: Yeah. You'd better not solo then. You're a woman. It's a bit different.
P: You know right? Remember when you were in Egypt. You rode the camel, saw the pyramids, but you weren't enjoying it as you were alone.
L: It was Egypt. Still, I kinda get it. Just try it once later. Maybe together.
P: Okie. Maybe later.
*가리 카스파로프: 슈퍼컴퓨터와의 대결로 유명한 러시아 출신 세계 16대 체스 챔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