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아침
술이 당기지 않는 밤이었다. 바람에 실려 붕 떠 부유하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떠나서도 여전히 한국에 매여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녁으론 김치전과 불고기를 먹었고, 배를 두드리며 숙소에 돌아와 마주한 사람 역시 한국 남자 둘이었다.
발트해 3국이 아무리 달라도 북유럽이듯, 그들의 옷매무세에는 김치전의 양조간장과 불고기의 진간장 같은 보편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 둘은 한국인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한국인이었다.
유로에 대해 지껄이는 영국 남자 넷보다 부산에서 왔다는 민호 씨가 더 가까운 리가였다. 멀리 떠나왔음에도 민호 씨 말마따나 '좁은 세상'이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저도 한국에서 왔는데..."라며 말을 흐린 후 이불속으로 사라진 이름 모를 한국인에 가까웠다. 부정하고 싶지도, 부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 한들 강조하고픈 생각 따윈 없는 다시 떠나갈 사람 2였다.
유독 목소리가 크던 해리 홀트 씨는 "근처에 바가 여럿 있는데 나중에 같이 나갈래?"라고 내게 물었는데, 지금 와서 그에게 무엇이라 답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애매한 승낙도 애매한 거절도 아닌, "나쁘지 않지." 정도의 답변이었을 것이다. 번호를 주고받았으며, 이름을 저장했지만, 정작 그 밤의 나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밤의 리가를 즐기진 않았다.
세상은 넓고 또 좁았지만, 리가의 하늘은 청명했고 또 가끔은 흐렸지만, 그 모든 것에서 술 한 모금 마실 이유는 찾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침 리가의 하늘은 흐려지기 전까지는 맑았는데, 걷다 보니 두 쪽으로 갈라져 비가 내릴 듯했다. 구시가지를 덮은 비대한 비구름은 서로를 덮고 또 덮어가며 천천히 중앙 시장에 당도할 터였다.
그럼에도 하늘은 아직 맑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으로 잰걸음 치던 나는 동화 속 인형 같은 소녀를 마주했는데, 분명 그때까지의 리가는 어제와 같이 웃음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신발 끈을 묶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올리니 눈이 마주쳤고, 환히 웃길래 마주 웃어주었다. 경탄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한 미모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쳐 계면쩍게 한 번 더 웃었더랬다. 소녀 역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는데, 때 묻지 않은 그 웃음은 순수하고 따뜻했다.
시장에 도착한 나는 마늘 후레이크가 들어간 양송이버섯 수프를 먹었다. 빵으로 용기를 제작해 용기를 잘근잘급 씹어먹을 수 있다니... 그 특이한 발상과 후한 인심에 끌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거창하게 적었지만 실상 나는 배가 많이 고팠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든 건 냅킨 한 장과 수프 한 컵.
기발함에 경탄했건만, 정작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나를 사로잡은 건 데이지 않을 만큼 따스한 온기였다.
한 달간 여행하던 친구들은 이제 부산에 돌아갔고, 두 번이나 웃어주었던 소녀도 아마 학교에 도착했을 것이다. 간밤 폭음으로 곯아떨어진 영국 남자들은 아직도 코를 골고 있을 테지만, 손에 쥔 따스한 수프 한 컵과 함께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노래를 들으며 수프를 음미하다 이내 헤드폰을 벗고 중앙시장을 둘러봤다. 옆의 노부부는 얼마 되지도 않는 수프를 서로에게 양보하고 있었고, 아침 댓바람부터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 그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셋과 함께 와 수프는 주문조차 못한 가족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토록 찾던 여유가 여기 있었다. 수프로 몸을 녹일 여유. 데이지 않을 수프를 즐길 여유와 수프를 적당히 식혀 건네줄 여유가 공존하는 리가였다.
그럼에도 나의 게걸스러운 식탐은 끝끝내 여유와의 공존을 거부했고, 나는 용기를 탐닉하다 못해 일그러뜨려, 수프를 탁자 위에 쏟아버렸다. 받은 냅킨으로 탁자를 닦아내고 보니, 남은 수프는 식어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수프 하나로 채워지지 않는 욕심쟁이 허기였다.
나는 가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들어온 건 손님 몇이 앉아있는 일식집과 리뷰 따윈 없는 소시지 가게 하나. 먹고픈 건 초밥이었지만, 마음이 가는 건 부어스트였다.
리가에 와서 베를린의 명물, 커리 부어스트를 먹는다면 어제의 한식과는 좀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나. 모르겠다.
가게 안을 분주히 오가는, 내 또래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는 찌들기 직전의 풋풋한 눈, 시험 기간 아닐 때의 학생 같은 눈을 하고 있었는데, 가격적으로도 합리적이었으니, 눈에 끌린 것만은 아니었으려나. 역시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는 부어스트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웠고, 감자를 튀겨낸 후 접시에 담아 건네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장사에 익숙지 않은, 자본주의의 비굴함과는 거리가 있는 어정쩡한 웃음이었는데, 나는 부어스트를 먹으며 그녀의 웃음에 생각했다. 나의 결론은 이러했다. 그녀의 눈이 웃지 않았다고.
웃음은 뭐,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부어스트의 맛은 반년 전 베를린에서 먹은 커리부어스트와 다를 게 없었고, 사실 다르기도 어려웠다.
정작 문제는 온도였다. 미지근했다. 앞뒤를 여러 번 뒤집어가며 정성껏 구운 부어스트는 따뜻하지 않았다.
따뜻한 웃음과 따스한 수프를 지나, 그렇게 리가는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시장을 조금 더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물방울이 맺힐 것만 같은 습한 바람이라 곧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또 서늘했는데, 그것 역시 비 오기 전의 서늘함이었다.
차가울 준비가 된, 차갑기 전의 서늘함.
비둘기 떼가 하늘을 수놓았고, 이내 비가 흩뿌리듯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꺼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맞고 있자니 묘하게 불쾌한 차가운 비가 내렸다.
나는 그 길로 호스텔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무래도 떠나야 할 때가 온 모양이었다.
책을 읽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와 지하도를 지나쳤다.
시장에서 나와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숙소로 돌아갔다 나오는 길.
지하도의 배 나온 아저씨는 색소폰으로 English Men in New York을 연주했다. 리가를 떠나갈 한국인에게 그보다 적절한 노래는 없었다. 코리안 맨 인 리가라. 멋도 없고, 사연도 없는... 여행자. 방랑자. 아니 이제는 비까지 내리니 불청객이려나.
지도를 보니, 버스 터미널은 강을 하나 끼고 아까의 시장과 마주하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비둘기가 날고, 비가 흩뿌렸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으나 받지 않아, 한 번 더 걸었다. 두 번 걸 마음은 없었는데, 때마침 받아 이제는 기억도 나지도 않는 어떠한 안부를 주저리 늘어놓았다. 두 번 더 걸 마음은 없는 게 리가와 부산의 거리겠지만, 한 번 더 걸면 끝내 연결되는 게 나와 부모님의 거리였으려나.
그간 리가는 서늘했고 또 따스했다. 떠나는 날의 아침까지도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떠나는 낮, 버스 정류장 앞 리가의 바람은 차가웠고, 나는 외로웠다. 묘하게 거슬리는 비가 흩뿌리는 정류장 앞에서, 빵쪼가리 하나를 두고 싸워대는 갈매기를 보며, 나는 "내겐 싸울 사람마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란다.
코리안 맨 인 리가. 멋도 없고. 사연도 없는. 그저 혼자인 이방인.
버스가 도착해 승객들이 내릴 무렵부터 다시 하늘은 빙긋 웃어보였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게는 멀기만 한, 닿기 어려운 웃음이었고,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는 길, 새까만 먹구름이 북유럽 평원을 뒤덮었다.
나는 파아란 리가의 하늘이 좋았다.
리가에서 나는 바람을 들이켜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가는 대로 움직여 오롯이 행복할 수 있었고, 모든 순간이 바람 흐르듯 자연스러워 또 행복했다.
그러나 버스 내려 마주한 탈린의 바람은 옷을 벗길 기세로 매서웠고, 하늘은 흐리기만 했다. 탈린은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