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몬타나
한여름의 시칠리아는 태양을 머금은 듯 더웠고, 트라파니 바닷가의 공기는 비릿한 짠내와 은은한 쇳내가 버무려져 텁텁했는데, 정작 바람에 실린 건 이역만리 부산항의 공기였다.
나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부모님이 계신 고향 부산을 떠올렸다.
할머니 사셨던 영도의 다리와 그 아래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젖줄, 남항을. 낙동강과 태평양이 교차하는 을숙도의 하굿둑과 빼곡히 멈춰 선 귀갓길의 차량들을. 명지 집 앞 부모님이 자주 걸으시던 해 질 무렵의 해안산책로를.
그 모든 것이 까마득하고 또 그리워, 버스가 와 승객들이 하나둘 짐칸에 가방을 밀어 넣고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저 멀리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뛰어오는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손을 흔들고 계단을 오르기까지, 끝끝내 기사 아저씨가 손을 휘저으며 탑승을 재촉할 때까지, 모래 섞여 텁텁한 트라파니의 바람을 들이마셨다.
태백산맥에서 용솟음친 낙동강의 물줄기가 흐르고 흘러 태평양 너머 대서양까지. 아펜니노 산맥에서 발원한 테베레 강이 티레니아 해를 지나 지중해 너머 지브롤터까지. 흐르고 또 흘러, 기어코 만나, 내가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고야 만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도 트라파니에는 모래 바람이 불었지만, 어제와 달리, 나는 그 텁텁한 바람 속에서 희미한 바다의 잔향을 맡을 수 있었다. 이제 기억마저 흐려 힘없이 추측할 뿐 차마 확신할 수 없는 고향 부산의 바람을.
기사는 무심히도 버스를 몰았다. 황량한 벌판을 뒤로, 시칠리아의 마지막 태양을 뒤로.
공항에 도착한 나는 마지막으로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마셨고, 토해내듯 뱉었다. 지중해를 떠나보냈다. 이제 발트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8시 50분 트라파니를 떠난 라이언에어 FR 3291편은 한낮이 되어서야 라트비아의 수도에 착륙했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한참을 졸았더랬다.
돈을 아끼느라 복도 좌석에 앉았더니, 좌석에서 창문은 멀어, 트라파니와 시칠리아가, 이탈리아 반도와 율리안 알프스가 작아지고 이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움이 흐릿해질 겨를조차 없이, 연이 끊어질 시간조차 없이 자다 깨니 어느 리가에 내던져져 있었다.
눈을 문지르며, 좌석 밑의 가방을 앞에 메고, 기내 선반을 열어 또 다른 가방을 뒤에 둘러맸다.
메쓰에서의 1년, 테를지에서의 하루, 후쿠오카에서의 나흘, 브리즈번에서의 한 주 그리고 다시 찾은 유럽에서의 한 달이 모두 꿈만 같았다.
내리니 북풍이 불었던가.
리가의 바람은 서늘했다. 가끔은 매섭게 때로는 뼈가 시리도록 불어와 나는 대륙 최남단의 지중해에서 최북단의 발트해로 떠나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다만 서늘할 뿐 결코 차갑지는 않았다.
비행기에서의 선잠은 완전치 못한 단절이었고, 나는 북유럽에 도착해서도 시칠리아의 자취를 찾고 헤매었다. 공항을 걸어가며 어제의 사진을 꺼내,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시칠리아 남부 트라파니의 Spiaggia delle Mura di Tramontana.
Mura: 벽.
그리고.
Tramontana: 이탈리아 혹은 인접한 아드리아해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풍.
오늘 새벽의 모래바람은 차가웠던가. 어제 일몰의 바닷바람은 차가웠던가. 분명 텁텁했고 비릿했다. 모래가 섞여 건조했고 은은한 쇳내를 풍겼었다.
이렇듯 선명한데, 나는 그 온도를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그저 끝에서 끝을 오갔을 뿐, 여전히 유럽에 매여 있었다.
떨어졌다가도 내릴 때면 몸에 착 붙어오는 이 배낭처럼. 변함없이 73개이기를 고수하는 여권의 도장 개수처럼. 기세를 잃고 서늘하게 부는 트라파니의 차가운 북풍처럼.
시칠리아를 떠나 찾은 라트비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트라파니 해변의 벽과 방파제를 넘어 리가까지 흘러온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