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로
떠나는 데는 두 마디의 대꾸면 충분했다.
안 가봤으니까. 그리고 안돼.
개강 첫 주. 미리 계획한 바에 따라 빌뉴스로 떠나겠다는 내게 “하고 많은 국가 중 왜 하필 리투아니아야? 한 주 정도는 우리랑 여행하면 안 돼?"라고 물었던 친구들에게도.
미국에서의 첫겨울 방학. 갈라파고스로 떠나겠다는 내게 “왜 하필 에콰도르니? 조금 더 큰 다음에 동생이랑 가면 안 되겠니?"라고 조언했던 부모님께도.
나는 초지일관했고, 의지를 관철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고, 답변은 단호했다.
“안 가봤으니까."
“안돼."
통보하고 훌쩍 떠나는 게 역마살 낀 남자의 고질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자유로운 삶, '선 여행 후 보고'의 삶은 내가 그리던 삶이라 대부분의 순간 나는 행복하고, 설사 행복하지 않은 순간마저도 불행하지는 않다.
나는 떠남의 이유를 불행이 소거된 어떠한 상태, 거기서 찾는다.
다만 이를테면 발톱에 낀 때 같은 문제가 - 사소하지만 막상 덮어놓자니 신경 쓰이는 - 있는데, 나조차도 셀 수 없이 자주 떠나다 보면, 내게는 불연속적인 여행의 장면들이 타인에게는 이어 붙여져 보여, 이제 그 누구도 내게 여행의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겠다.
며칠 전, 연락한 군대 동기는 대뜸 "그래서 지금은 어디야?"라고 물었더랬다.
“미국"이라 답하니, “미국은 왜?"라 재차 물었다. “왜긴 왜야. 학교를 다니니까 미국이지."라고 되받아치니, “이미 자퇴한 줄 알았지."라고 약을 올렸다.
그제 연락 온 고등학교 동창 역시 다를 게 없었다.
“아직 미국이지?"라고 질문했는데, 통장잔고가 바닥이 난 게 아니라면 밴쿠버나 산후안에서라도 학교 과제를 해치우고 있을 내 모습이 뻔히 그려졌다. 그래서 “나라고 매주 어디론가 떠나는 건 아니다."라고 항변하기를 포기했다.
요즘의 나는 너무도 자주 떠나,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마저 “뭐 해?"가 아닌 “오늘은 어디야?"라며 안부를 물어오고, 부모님마저 그저 어딘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겠거니, 무소식이 정녕 희소식이겠거니 받아들인다.
그래서, 대화에 여행의 이유가 설 자리가 없다.
이번의 여행 역시 리가 - 정확히는 북유럽으로 - 떠나겠다던 내게 그 누구도 떠남의 이유를 묻지 않아, 나는 스스로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다.
나 역시 이유 없이 떠나는 여행의 낭만을 안다. 그럼에도 젊은 날의 여행은 본질적으로 사치스러운 행위라 납득 가능한 변명은 필요하다. 비록 궁색할지라도.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여행은 소거의 여행이다.
비행기 수하물 규정에 맞춰 가방을 몇 번이고 다시 싸기 전부터, 아니 정확히는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소거의 여행이다.
작년 여름의 나는 올여름의 유럽을 그리며 유럽 전도를 펼쳐보았다.
지도를 펼쳐보니 중동에 가까운 동유럽 국가(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를 제외하면, 2024.8.9일 시점으로 가본 적이 없는 유럽 국가가 크게 도합 14개국이었다. 그 외 2026년 봄의 남미 여행계획을 고려해 소거, 또 소거하고 나니, 총 6개의 선택지가 남았더랬다.
1. 동유럽 평원의 러시아, 몰도바, 벨라루스, 그리고 우크라이나 4개국
2. 스칸디나비아와 발트해의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5개국
3. 안도라와 발칸 반도의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4개국
4. 마드리드 경유, 베네수엘라 테이블 마운틴 및 앙헬 폭포 관광, 미국 입국
5. 덴마크 고모네 방문
6. 모로코 및 튀니지 (마그레브)
동부전선과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은 혹여 부모님께 죄송스러워, 덴마크 고모네는 너무 자주 찾기엔 마찬가지로 죄송스러워 제외했고, 여름의 마그레브에 갔다가는 문자 그대로 익을 것만 같았다.
( 작년까지만 해도 보통 치노, 간혹 가다, 야뽄, 코레아노라 불리다, 올 들어 비엣남, 타이, 인도네시안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아, 동북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피부를 더 이상 태워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여행의 전반부를 발칸 반도의 국가들인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크로아티아에서 보낼 예정이었으니 발칸 반도마저 소거.
결국 남은 건 북유럽과 베네수엘라.
이 즈음 되짚어 봐야 할 사실은 불효자식의 선택지에 귀국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점이겠다.
사촌동생과의 여정은 시칠리아에서 끝날 예정이었고, 스페인에서 카라카스로 가는 항공편은 생각보다 비싸 결국 돌고 돌아 북유럽이었다.
그렇게 북유럽 중에 고른 첫 행선지는 리가. 리가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스칸디나비아행 항공편보다는 아무래도 발트해로 가는 항공편이 저렴했다.
긴 이야기다. 그러나 요약하면, 늘 같은 두 마디로 정리되고 마는.
리가에 가본 적이 없었고, 다음을 기약하려니 그다음이 언제일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이번이 아니면 “안돼."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서 떠나야만 했다.
'안돼'라는 말은 주로 내가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돈이 내게 하는 말이지만, 그 모든 안돼를 걷어내고 소거해 보니 결국 북유럽이어야만 했다.
트라파니에서 리가로, 이후, 리가에서 버스를 타고 탈린으로, 탈린에서 페리를 타고 헬싱키로, 또 헬싱키에서 투르쿠로, 투르크에서 야간 페리에 몸을 실어 스톡홀름, 그리고 기차로 오슬로까지.
안 가본 도시들이었고, 굳이 '안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드소마를 그리며 한여름의 시칠리아를 떠나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신화의 나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