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으로
이제부턴 철저히 혼자만의 여행이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질 수 없다. 또 떠나간다.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의 아픔에 대해 토로하고 싶지만, 곤히 잠든 너를 깨울 생각은 추호도 없고, 트라파니에 며칠 더 머무를 너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어서 리가로 떠나 이 연의 실을 끊어내야겠다.
미리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십 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이불을 개고 마지막으로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러곤 다시 침대에 누워 멍하니 혼자이기를 자처한 이유와 열흘 남짓한 여정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카타니아에서의 시간은 분명 짧았다.
메시나 해협을 건너는 기차가 연착되어 우리는 새벽에서야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고, 다음 날 일어나니 해가 중천이었다. 타오르미나를 잠깐 맛본 다음 날의 새벽,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열흘 조금 넘는 나날을 함께 했던 너를 배웅했다.
팔레르모에서의 시간 역시 짧았다. 홀로 정신없이 거리를 걷다 보니 노을이 지고 밤이 내렸다.
후줄근한 티 하나 걸친 콰트로 칸타의 남자는 오 솔레미오를 불렀고, 대성당 앞 성물점의 한국인 수녀님은 길 잃은 양이 되돌아오기라도 한 듯 나를 반겼다.
삶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부부들과 버스에 올라타 파티를 즐기는 청춘들, 저녁 무렵 붉은 파도가 물결치는 항구의 적막과 길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모두가 손에 쥔 모래처럼 스쳐 흘러갔다.
그렇게 팔레르모를 떠난 건 그제의 일이고, 벌판에 묻어난 황량한 시칠리아의 여름, 그 척박한 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트라파니에 도착한 건 어제의 일이었다.
버스는 트라파니 외곽의 이름 모를 정류장에 정차하고, 나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이만 도착했으니 전화를 끊겠다고 통보한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걸려온 전화는 버스가 산을 넘나듦에 따라 몇 번이고 끊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필사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되는대로 말을 쏟아냈다. 이어지면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듯이.
굵은 밧줄 같던 우정은 시칠리아의 황량한 대지를 잇는 전신주의 전선만큼 얇아졌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이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만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버스에 내려 흩어지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나는 겉돌기만 했던 우리의 대화를 짚어본다. 드문드문 끊어졌던 우리의 대화를.
벌써 5년 전, 카뮈의 부조리와 반항에 대해 토론하며 밤을 지새우던 우리는 한마디 말을 꺼내기 위해 두 마디 말을 잘랐어야 했다.
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한마디 말을 듣고, 그 뒤에 겨우 이어 붙인 두 마디 말을 듣는다.
그간 내가 그려낸 생의 궤적과 네가 그려낸 생의 궤적은 판이하게 달라, 서로 볼썽사납게 토로한들 이어질 수 없고, 그렇기에 늘 화자가 둘이라 왁자지껄했던 우리의 대화는 청자 둘만이 덩그러니 남아 가끔 정적이 공백을 메운다.
오늘 트라파니에는 모래바람이 분다. 내 고향 부산을 적시우는 비릿하면서도 정겨운 바람이 아닌, 모로코에서 맡았던 자갈 갈린 모래의 흩날리는 바람이. 뉴저지에는 어떠한 바람이 불까.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아직 트라파니와 뉴저지의 간극만큼 멀지는 않지만 - 트라파니에도 바람이 불듯 으레 뉴저지에도 바람이 불겠지만 - 더 이상 나는 네가 사는 곳의 바람이 어떠한 바람인지 알 수 없고, 너 역시 트라파니의 모래바람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
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온다. 모래가 흩날린다.
정류장 아스팔트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을 보며 나는 아쉽다 못해 그리움이 돼버린 우리의 관계가 현실에 마모돼 긁혀나갈 것을 예감한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이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게 아닐까, 축 늘어진 시칠리아 벌판의 전선마냥 끊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한낮, 트라파니의 거리는 한산하다.
바다에 면한 계류장은 텅 비어 있고, 시칠리아의 태양은 강렬해 '오후에도 영업합니다.'라는 팻말을 써붙인 관광객용 식당을 제외하고는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과 인도인이 운영하는 편의점 정도만이 장사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도시의 이탈리아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관광안내소마저 시에스타인지 무엇인지 모를 연유로 문을 걸어 잠갔고, 이내 나는 해변으로 걸어간다.
해변은 북적인다. 수건을 펴고, 몸을 털고, 물에 발을 담근 후, 멀리 더 멀리, 물속을 헤엄쳐보지만 결코 바다 끝에 닿을 수 없어, 나는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엎드려 눕는다.
바닷물은 밀려오고 또 떠나간다.
멀리 더 멀리.
아득히 멀리.
누워 꿈을 꾼다.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떠나가는 꿈을.
여행 초반에는 아들이 어디로 떠나가나 그리도 궁금해하셨던 부모님은 더 이상 "거기는 어디니?" 묻지 않으신다.
그제 떠나보냈던 사촌동생도, 근 한 달을 함께 여행했던 동향 친구들도, 오늘 전화를 걸어온 고등학교 동창도,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시칠리아의 이름 모를 해변에서 나는 꿈속을 헤맨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모래 묻은 수건을 털고 일어나 몸을 대충 닦아내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까 봐뒀던 인도인의 편의점에서 물을 두 병 산다. 부지런한 사람들.
5768#.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딴다. 주방 냉장고에 물을 넣는다. 파스타를 먹고 있는 여자 하나와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다. 환한 웃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뒤늦게 인사를 건네고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약간 멍청해 보이는 인사였다.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니, 아까의 여자가 침대 옆을 서성이고 있다. 옆 침대에서 자나 본데, 이 또한 나를 찾아온 얇은 인연이겠거니 싶다.
여자는 혹시 잠을 깨운 것이 아니냐며, 미안하다며, 말을 건네오곤 즐겁게 재잘거린다.
말 나눌 상대가 고팠던 것인지, 한참을 떠들고, 환히 웃는 얼굴에 미안한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순한 웃음이 아름다워 나도 마주 웃고 만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그녀는 내게 나이를 묻지 않는다.
스물 중반에서 서른 초반 정도일 것 같지만, 묻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아 구태여 캐묻지 않고, 우리의 대화는 이어진다.
낯선 곳에서 새로이 만난 여행자 간의 대화 소재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평소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 대화의 초반은 형식적인 질문으로 채워지고, 그 종착역마저도 - 대개의 경우에는 - 정해져 있다.
서로 알지만, 누군가는 물어봐주고,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느덧 반 시간 동안이나 재잘거릴 이유가 없다.
물론 장소에 따라 종착지는 가끔 바뀌곤 한다.
그럼에도 '누구와'라는 질문이 지워졌다면 어디로 가는지 따위야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트라파니는 해변이 지척이라 결국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밤바다를 걷게 되지 않을까.
괜히 갈 생각도 없는 근처의 염전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녀는 염전은 먼데다 '우리가' 갈 때 즈음이면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괜찮다면 같이 에리체(Erice)에 들렀다 해변을 걷자고 제안한다. 대화의 주체가 어느새 '나'에서 '우리'로 옮겨가 있다.
작년의 트라파니가, 시칠리아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올해도 떠나왔다는 그녀는 해 질 무렵 천공의 성에서 내려다본 지중해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우리가 함께 보았으면 한다고 수줍게 말한다.
그러나 트라파니의 대중교통은 해변에서의 오후를 위해 사라져 버린 이탈리아인의 느긋함을 빼닮아, 에리체로 가는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바다로 향한다.
그녀는 분명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했건만, 웬걸 주머니에선 병따개가 튀어나오고, 편의점에서는 나도 모르는 맥주 이름을 술술 읊어댄다. 놀려볼까 잠시 생각하지만 해 질 녘 트라파니의 바다는 황홀하게 불타올라 우리 둘은 말을 잊는다.
수건을 챙기고, 맥주를 사고, 해변으로 나가, 수건을 깔고, 맥주를 딴다.
건배. 나즈드로비에.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하고, 지는 해에 다시금 말을 잊는다.
트라파니의 바다가 완전히 어둠에 잠길 때까지 한참이고 앉아 시간을 흘려보낸다.
조용히 앉아있던 그녀가 입을 뗀다.
"나 서른 하나야. 서른 하나."
"스물 하나 아니었어? (웃음) 그리고 그게 뭐 어때서?"
"너는 모를 거야. 아직 알 필요도 없고."
"미안해. 서른한 살이나 먹었는데도, 스무두 살 앞에서 칭얼대고 있네."
우리는 검게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본다.
"어떻게 흘러가곤 있지만, 아직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나도 그래.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인 거겠지."
무언가 하고픈 말이 더 남은 듯 하지만, 나는 구태여 묻지 않고, 그녀 역시 입을 다문다.
밤바다는 말이 없고 우리는 수건을 털고 일어나 트라파니의 밤거리를 걷는다.
걸어가며 나는 이별을 노래하는 Bruno Major의 Regent's Park를 낮게 흥얼거리고, 그녀는 내게 "너 목소리가 참 좋다."라고 말한다. "유 어 웰컴" 감사를 표하니, 그녀는 "누구 앞에서 부르려고 그렇게 연습하는 거야?"라고 물어온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답하며,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는다.
Que sera sera.
숙소로 돌아오는 길, 거리의 식당은 이탈리아의 가곡을 연주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야외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이어나간다.
피자 한판에 적당한 와인 한잔도 곁들였건만 대화는 겉돌고, 붕 뜬 채, 이어졌다 끊어진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말이 없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 그녀는 일어서고,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먼저 씻고 올게."라고 말하고, 나는 "그래. 조금 있다 봐."라고 답변한다.
샤워를 마치고도 우리는 또 한참을 떠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화는 겉돌고 결국 그녀는 내게 묻는다.
"내일 떠나야 하는 거지...?"
잠시 정적이 흐르고, 달리 다른 말을 해줄 수 없는 난
"그래. 내일 새벽 일찍 떠나."라고 답한다.
"잘 자. 어디선가 또 보겠지."
"너도. 그래. 어디선가."
화면을 보니 5초 후면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 방 안의 모두를 깨우겠다. 서둘러 버튼을 옆으로 밀고선 배낭을 둘러멘다.
수없이 떠나왔음에도, 여전히 나약하고 여려, 이번의 이별이 첫 이별도 마지막 이별도 아님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다. 슬프고 아픈 떠나는 날의 아침이다.
배낭에 자물쇠를 채운 후 뒤꿈치를 들고, 문 손잡이를 감아 돌린다. 문고리가 무겁다. 문을 잠그고, 항구로 나서 버스 기사에게 5유로를 건넨다. 티켓과 영수증을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곤 플레이리스트에서 대충 슬픈 음악 하나를 튼 채 트라파니의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도 무심한 해가 떠오른다.
팔레르모를 떠나 트라파니에 도착한 게 고작 하루 전의 일이건만, 정작 모든 사람이 떠나가고, 모두를 떠나 보내야 하니 홀로 보내는 시간은 고통스럽도록 더디게 흐른다.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
한 달간 여정을 함께했던 친구 둘은 지금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려나.
그제 카타니아에서 떠나보낸 사촌 동생도 파리로 돌아가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으려나.
내일도 밴드는 이탈리아의 이름 모를 가곡을 연주하고, 트라파니의 해는 타오르듯 져, 그녀는 어쩌면 천공의 성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겠지만, 나는 리가로 떠나간다.
괴테는 "시칠리아를 보지 못하고 이탈리아를 보았노라 말하는 것은 이탈리아를 전혀 보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곳이야말로 모든 것의 열쇠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제의 검붉은 파도에 열쇠를 흘려버렸고, 이제 신화의 나라들로 떠난다.
잃어버린 열쇠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를 일이나, 앞으로도 나는 열쇠를 찾아 헤매겠다.
분명 다음의 시칠리아를 기약하기에는 그만한 변명이 없지 않을까.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는 누구와 함께일지에 대한 답 따위는 알 턱이 없고, 나는 트라파니의 활주로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시칠리아의 건조한 바람을 들이켠다.
오늘도 트라파니에는 모래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