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파도
그날 나를 감격케 해 준 것은 사랑과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 그러나 사랑은 아니었다 - 적어도 사람들이 떠들고 찾아대는 그러한 사랑은 아니었다 - 이를테면 그건 미적 감각 같은 환희였다. 여자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고, 나의 상념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빛의 발산일 따름이었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대는 나의 글을 이해해 주겠는가?
나는 그 바다에 서 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검붉은 하늘의 편린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기라도 하듯, 대기가 아득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 진정으로 빛은 파동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명멸하는 달빛. 몽돌에 낀 이끼 위에는 물방울 같은 불꽃이 아른거렸다. 그렇다, 진정으로 그 널따란 바다의 가장자리에 빛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의 흐름 속에서 황금색 거품들이 넘실대는 파도의 끝자락에 맺혀 있었다.*
구름이 은하수를 가리고 별똥별이 떨어졌다. 엘 팔마르시토 해변에 별이 지고, 붉은 달이 떠올랐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이내 검은 모래사장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붉은 달이 떴어. 붉은 달이.”라고 외쳐댔다.
“아무래도 다시 물에 들어가야겠어.”
“넌 정말 물을 좋아하는구나.”
“좋아해. 아니 사랑하지.”
“응.”
“상상해 봐. 별이 부서져 내린 파도의 파편 끝에 실릴 붉은 달의 형상을. 달빛도 파도에 실려 부서져 내리겠지. 붉은 거품이 넘실대는 바다에 몸을 맡기는 거야.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나는 은하수를 봤고, 별똥별을 봤지. 그리고 이제는 붉게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몸을 내던져야겠어.”
나는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검은 모래사장을 달려 다가오는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손끝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조각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황금빛 알갱이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뿐이었다.
찰나의 순간. 바스러지기 직전 물방울에 스치듯 맺힌 붉은 달의 아름다움.
칠흑 같은 바닷속, 눈을 떠도 보이는 건 검은 모래뿐이었다. 나는 해변까지 떠밀려와서 다시 모래사장을 달려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면 붉은 달빛은 다시 파도에 부서졌고, 나는 파도를 손에 담을 수 있었다. 두둥실 떠내려가다가도 몸을 바로 세워 붉은 달을 담고 또 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넷도 결국 물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붉은 달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시 구름이 몰려와 달을 가렸고, 우리는 뭍으로 나와 짐을 주섬주섬 챙긴 후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해먹에서 책을 읽다 잠에 들었다.
엘살바도르의 밤에는 은하수가 내리고, 별똥별이 떨어지고, 붉은 달이 떠올랐다. 해변가에 앉아 그 모든 순간을 바라보던 나는 행복했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인용:
그날 나를 기쁘게 해 준 것은 사랑과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 그러나 사랑은 아니었다 - 적어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찾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사랑은 아니었다 - 미적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여자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고, 나의 상념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빛의 발산일 따름이었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대는 나의 글을 이해해 주겠는가?
나는 그 정원에 앉아 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하늘의 푸른빛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기라도 하듯이 대기가 아득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 진정으로 빛은 파동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끼 위에는 물방울 같은 불꽃이 보였다. 그렇다, 진정으로 그 널따란 길 위에 빛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의 흐름 속에서 황금색 거품들이 나뭇가지들 끝에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