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한계, 색의 한계
카리브해 앤틸러스 제도로 떠나오며, 내가 가졌던 의문은 단 하나였다. 도대체 이 작고 평화로운 나라들의 살인율은 왜 그렇게 높을까.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세계 1위의 자메이카, 3위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과 4위의 트리니다드 토바고까지.
에어비앤비의 할아버지는 내게 "그건 사기야. 그 통계는 조작됐을 거야."라고 소리쳤고, 나로서도 그의 말에 반박하고픈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여기가 정말 밤에는 신호등이 꺼져 강도의 습격에 대비해 절대 정차하지 말고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 남아공과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갱단 여럿이 수도를 장악한 데다 지나가던 민항기에 총을 갈겨대던 아이티보다 위험한 것인가.
모수가 작아 통계가 튄다고 주장하기에는 유럽의 미소국가들은 대부분 한 자릿수도 채 되지 않는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제의 그레나다가 10만 명 당 10명. 그리고 오늘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은 10만 명 당 40명. 국가는 아니지만, 역내 유명 영국령 휴양지인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는 국가가 아닌 자치령 중에는 가장 높은 70명 대.
숙소에 도착해 무례한 질문을 던진 내게 주인 할아버지는 응당 되돌려줘야 할 '여기서? 누가 누굴? 죽여?'에 가까운 답변을 들려주었고, 나 역시 그의 말에 더 공감이 갔기에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라고 고개를 떨어질 듯 끄덕이며 맞장구치고는 "죄송합니다. 괜한 질문을 드렸네요."라고 첨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이 평화로운 섬에서 누가 누굴 죽이겠는가. 이 작은 섬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살생이라고는 식당에서 손님에게 대접할 랍스터의 손질 정도가 아닐까. 혹은 아침의 계란 후라이라든지. 떼 지어 헤엄치는 어린 물고기 비추는 해수처럼 투명한 것이 내게 길을 알려줬던 또 다른 노인의 친절함이었고, 길을 가다가다 꼭 멈춰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떠나가는 섬사람들의 따스함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단서는 전반적으로 마을이 낙후되어 보인다는 것 정도. 굳이 굳이 예를 들자면, 주유소 위에 지붕이 없다든지,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창문 깨질 듯한 소리로 힙합이 나온다든지, 혹은 폭삭 무너져 중앙에서 나무가 자라는 집이 있다든지. 그러나 어느 시골이 안 그렇겠는가. 생각을 해본들 답을 도출할 수도 없는지라,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펼쳤다.
초승달처럼 휜 크레센트 해변(Crescent Beach)을 그려보았지만,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1시간 30분이라는 거리는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섬 반대편의 페기 산(Mt. Peggy) 위에서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고도 싶었지만 차 없는 여행자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사치였다. 섬 끝 절벽의 돌집, 문홀에서의 스노클링은 또 어떤가. 다이빙 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갈 방도가 없었다. 2박 3일의 선택지는 결국 내게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했다. *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걸어 잠그고, 에어비앤비를 나서 다시 포트 엘리자베스 항으로 걸어갔다.
결국 카리브해의 소앤틸러스 제도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의 베키아 섬까지 떠나온 여느 여행자가 그러하듯 프린세스 마가렛 해변(Princess Margaret Beach, 1950년 영국 왕가의 방문을 맞아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으로 가는 수밖에...
수공예품이 거리를 수놓았다. 풍경소리부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문양으로 엮은 가방들까지. 여행자의 소유욕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공예품들을 매대에 진열해 두고, 아저씨들은 수다를 떨며 나무로 물고기나 새 등을 조각했다.
무전기 같은 손전화를 받쳐 들고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던 가방 매대 아저씨는 몸을 벌떡 일으켜 내게 "요 브로. 가방 사진은 찍으면 안 돼. 내 오리지널 작품이라고."라고 외쳤다.
"아저씨 포즈가 멋진데 그건 찍어도 돼요?"라 웃음 지으며 물었더니, 씨익 웃고는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의자에 둥글게 몸을 말아 옆의 나무에 다리를 걸쳐놓은 그는 다시 통화에 집중했고, 나는 해변으로 걸어 올라갔다.
해변가를 따라 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고, 경사는 가팔랐으나 '길은 이어지기 마련이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산길을 탔다. 길보다는 아스팔트 도로에 가깝긴 했으나 차들이 많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뒤에서 경적을 울려주고 드라이버들은 가끔 손을 꺼내 흔들었다. 트럭에 지붕 씌운 택시들이 지나갔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장과 숙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다른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바다를 내려다보는 산길의 공기는 후텁지근했지만, 새 지저귀는 소리와 짙은 풀내음이 가득해, 우측으로 펼쳐진 만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길을 잘못 들었다 느낀 건 수목이 우거진 울창한 길에 접어든 후였으나, 내려가는 길이 있으리라 믿었고, 실제로도 있어 언덕을 뛰어내려 가니 펼쳐진 건 프린세스 마가레트 해변이었다.
저 멀리 떠있는 크루즈와 연안의 요트들은 그저 두둥실 떠있을 뿐, 승객들은 하선하지 않아, 수요일 오후, 해변에 들리는 건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연인들의 가르랑거리는 웃음소리뿐. 군청 산호 군락을 너머 밀려오는 터쿼이즈 파도는 모래사장에 금빛 잔영을 남기고 물러갔다 또 밀려 들어왔다. 여행자들은 우거진 나무 아래 비치타월을 펴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거나, 그저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홀짝였다. 따사로운 태양 아래 여유로운 오후였다.
아까 항구에서 헤어졌던 M은 문자를 보내 스노클링을 권유했으나 거북이로 만족할 수 없는 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고, 아까 항구에서의 인사가 마지막이었음을 직감했다. 여행지에서 여행자가 다른 여행자를 떠나보내는 건 흔한 일이기에. 이제는 많이 무뎌지기라도 한 걸까. 나는 해변 우측으로 돌아가는 산책로를 걸어, 중간의 전망대에 멈춰 섰다.
우측에는 이미 거래를 마친 노부부가 상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을 이리저리 써가며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공예 방식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으나, 미허가된 허름한 주막 같은 그의 가게에 눈길이 머문 건 잠시였다.
전망대 너머로 포트 엘리자베스 항이 펼쳐졌다. 하늘 아래 산 아래 하늘 같은 바다. 산호가 푸른 하늘을 이루고, 빛을 받아 일렁이는 모래 위 파도가 구름만 같았다. 카리브해의 바다는 맑고 청명했으며, 전망대에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파도의 노래와 나뭇잎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계단을 타고 다시 해변으로 향하니 해변은 또 달라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모래를 딛고 서니, 물을 머금어 계란찜에 앉은 것처럼 잘고 포슬한 알갱이들이 푹신한 침대처럼 내 발을 감싸왔다. 파도 밀려오면 또르르 굴러가 평범한 점으로 전락하던 모래는 구름이 움직이면 따스한 볕 받아 가끔 사금이 되어 내게 한 번 누워볼 것을 속삭였다.
해변의 반대쪽 끝에는 파도가 빚어낸 작은 해식동이 여행자를 유혹했고, 야자수 아래 누운 여행객들 사이에는 아이스크림, 주스, 그리고 맥주 등을 파는 나무 매대가 늘어서 있었다. 아침 일찍 페인트 통 흔든 후 뿌려 휘갈긴 메뉴판에는 Happy Hour, Corona, Mohito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다만 적혀 있는 건 메뉴뿐이고 가격은 찾아볼 수 없어, 정말 가격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목이 마르면 흔히 10불 20불은 쾌차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해변을 찾는 것 같았다. 수돗물 받은 물통 하나 챙긴 나와 선글라스 낀 채 선베드에 기대 라임 꽂은 코로나를 훌쩍이는 백인 여자의 대비는 선명했으나, 자연의 선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 해변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나는 가끔 파도와 장난을 치며,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뚫려 형성된 작은 동굴 쪽으로 나아갔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태양은 모래에 야자수를 그려냈다. 바위로 다가가 옆으로 멘 가방을 바위에 올려놓으니 화들짝 놀란 도마뱀이 바위 위를 질주했다. 바위와 바다가 맞닿는 경계에는 우둘투둘한 암초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바위의 원주민들은 인간의 침입이 불쾌한지 앞발을 쳐 들고 항의하다가 막상 한 발을 올리니 달아났다. 가마우지가 날아와 게들과 죽음의 무도를 췄다. 배는 이미 채운 것인지 날개를 말리다가도 뚜벅뚜벅 게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댔는데, 게들은 계속된 압박에 지친 건지 내가 수영을 다 마칠 때 즈음에는 이미 집을 버리고 달아난지 오래였다.
물은 모래알을 셀 수 있을 만큼 맑았고, 나는 그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다양한 물고기를 관찰했다. 만을 따라 블루 탱, 나비 고기, 피카소 피시, 쏠베감펭, 앵무 고기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잡아끈 건 대서양 실버사이드. 무리 지어 수면 근처를 빠르게 유영했는데, 햇빛이 바닷속까지 투과해 들어올 때면 반투명한 몸에 은빛이 일렁였다. 바다라는 유리창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유리가 빛을 머금었다 내뿜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색을 쪼개고 또 쪼개 분류하고 또 분류한들, 그 은빛 일렁임과, 푸른 하늘 같은 바다와, 금빛 모래를 설명하기에는 언어가 부족하고 또 말이 부족했다. 떠나와 직접 봐야만 경험하는 것이 있기에,그리고 말로 쉬이 공유할 수 없는 경험들이 더러 있기에 저 사람들 모두와 나는 의식했든 하지 못했든 이 먼 곳까지 떠나온 것일 터였다.
반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물 밖으로 나와 해식동에 회오리쳤다 나가는 물의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철퍼덕 주저앉아 옷 밑으로 밀고 들어오는 모래의 까슬거림에 집중하며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블러셔처럼 모래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파도의 모브색 잔영과 하얀 포말. 불어오는 바닷바람. 개 한 마리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나도 그도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시선은 서로 같은 곳을 쫓았다. 청록색하늘이 밀려오고 또 밀려갔다.
그러기를 한참, 나는 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현지인을 지나, 스노클링 하는 노부부를 지나, 아까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 떨어진 10원 동전 하나마저 보일 것 같은 투명한 물속의 물고기 떼를 또 물끄러미 바라보다, 여러 식당가를 지나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영국과 호주에서 온 여행자들 몇은 이미 식당에 앉아 이른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고, 식사 후에 바*에서 술까지 걸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그들의 여유겠다. 다만 나의 곤궁한 지갑 사정으로는 아까 해변에서 본 가격 없는 메뉴판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나는 불을 올리고 라면을 먹었다.
바다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고, 주홍빛 전등이 섬의 반대편을 수놓았다. 별이 모습을 드러내고, 개들이 짖고, 염소가 우는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눈부시게 푸른 바다의 온기를 그리며, 이곳의 평화와 숫자 41 사이의 간극을 표현할 말을 찾으려 했으나, 언어의 한계는 하늘 같은 바다, 침대 같은 모래, 유리 같은 고기처럼 색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 있어, 나는 오늘의 아름다움을 그저 마음으로 되새기며, 카리브해 작은 섬에서의 하루를 밀려오는 수마에 실어 흘려보냈다.
*혹시나 가실 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링크 남깁니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베키아 섬 유명 관광지)
Crescent Beach: https://maps.app.goo.gl/T7Jg7VF4eqkj7PNE6
Mt. Peggy Peak:https://maps.app.goo.gl/cuGQkEGzDDykty4EA
Moonhole: https://www.moonholecompany.com/
*물 위에 떠 있는 바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