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키아 섬
신의 축복을 받은 땅, 헤이안으로 떠나간다. 세계 살인율 3위 국가의 축복은 어디에 있을까. 세인트 키츠 네비스의 국기를 도장한 인터캐리비안 항공의 ATR 72를 타고,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으로 떠나는 길, 머릿속을 맴도는 숫자는 41.16.
대전보다 조금 큰 이 나라에서는 매년 2,500명 중 1명이 살인으로 유명을 달리한다. 인구 11만의 소국이라 통계가 왜곡되기라도 한 걸까. 수치상으로 따져보면 10만 명당 53명이 살인으로 죽는 자메이카와 그 뒤를 잇는 남아공, 그리고 이어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남아공은 아직 가보지 못했고, 자메이카를 여행했을 때도 살인율이 세 자릿 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수도 킹스턴이 아닌 관광지 몬테고베이에 머물렀으니 수치상으로는 머리털 난 이후로 가장 위험한 국가를 가는 셈.
모리스 비숍 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뜨자마자 착륙한다. 35분의 짧은 비행. 땅에 앉기 전 창 너머로 바라본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의 해안에는 거친 파도가 잇달아 몰아친다.
오늘의 목적지는 수도 킹스타운이 아닌 페리로 대략 1시간 거리에 있는 베키아(Bequia) 섬. 한국어로 된 여행 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다.
도착하니 아가일 국제공항의 경찰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의 낯섦만큼 그들도 내가 낯선 걸까. 그럼에도 베키아 섬은 외국인에게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모양이고, 페리 회사가 페이스북도 왓츠앱도 아닌 무려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운영하는 걸 보면 그저 한국인이 찾지 않는 섬 정도이겠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섬에서 하루, 수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의 카리브 여행과 간만의 봄방학 모두 끝을 맞이하겠다.
공항 환전소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에 착륙해, 9시까지 기다린 후 돈을 바꿔 미니버스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배차 간격이 1시간이라는 구글 맵의 정보 한 쪼가리는 어떠한 불길한 예감처럼 틀리지 않은 모양이고, 공항의 배 나온 아저씨 둘은 어차피 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는 늘 북새통이라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택시를 탈 것을 권유한다.
택시값은 인당 35 USD, 90 XCD (동카리브 달러). 지폐에는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이 담겨 있고, 차들 역시 왼쪽으로 운행하는 데다, 삼발이 플러그를 혼용하는 이 섬에는 그레나다와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 지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사실 그뿐. 헤이안의 축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공항에서 페리 터미널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 외에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함을 찾기 어려웠다. 번호판의 첫 글자가 H면 Hire라 정부 공인 택시거나 T면 Truck 등 차의 용도를 구분해 놓은 게 그나마 특징이랄까.
같은 비행기에 탔던 일본인 갸루 한 명과 시내로 같이 넘어간다. 머리는 금색으로 물들였는데, 군데군데 연분홍빛 헤어피스를 착용했고, 네일은 손가락 마디보다 길다. 꽃무늬 원피스에 분홍색 가방까지. 솔직히 복장은 뜨악스러우나 이토록 먼 곳에서 맞이한 황인종은 반갑기 마련이고, 옆에 앉아있던 여자는 먼저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았냐며 살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M은 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8개월 전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인스타그램으로 디엠까지 보내 페리 운항 시간과 가격이 왕복에 40 동카리브달러인지를 확인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매우 즉흥적이다.
"넌 어디로 가?"
"저기 베키아 섬으로 가요."
"그래? 그럼 나도 갈래."
안부인사를 주고받고 어디에 가냐는 대화가 나온 건 택시가 그녀의 숙소에 도착하기 3분 전의 일. 그녀는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택시는 출발한다. 10시 반에 출발하는 페리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시 기사는 산비탈을 돌아가는 지름길을 밟아 내려간다. 기차에 늦을 것 같다 말하면 구불구불한 산길 돌아 부산역으로 총알 같이 달려가는 고향 부산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같다. 다음 페리는 지금으로부터 3시간 뒤인 오후 1시에 있으니 어서 서둘러 킹스타운 항에 도착해야겠다.
뉴욕에 사는 M은 현재까지 67개국을 여행했다고 밝힌다.
"너는 몇 개를 여행했어?"라고 눈을 깜빡이며 묻는데, "73."이라 답하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속눈썹 연장이 그렇게 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번 여행 끝나면 다 따라잡겠네." 하며 어깨를 치는데, 나라가 아니라 나를 때려잡겠다는 것. 차창으로 바짝 붙어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페리가 출발하기 15분 전에 우리는 항구에 도착하고, 왕복 40 동카리브 달러를 지불한 후 배에 오른다. 목적지는 베키아 섬의 포트 엘리자베스. 페리는 물을 가르며 나아가고, M과 나는 주거니 받거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벌써 아이가 둘이고, 싱글 맘이라는 M은 미국에 정착한 이유를 내게 들려준다.
"일본에서 나는 소속되지 못하는 기분이었어.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지." 턱을 괸 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그녀는 말한다.
나는 답한다. "동북아시아가 유독 그렇죠. 이해 못 할 건 또 아니긴 합니다. 원시 사회부터 다름은 위험이었으니 말이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그녀의 첫째 아들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벌써 정학을 두 번 당했고, 그녀는 이런 아들을 일본에 보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서로의 여행과 낭만을 견주던 대화가 어쩌다 학부모 상담으로 변한 것인지는 모를 노릇이었으나, 그녀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아무런 판단 없이 대화를 들어줄 사람 아닐까.
"그래서 미국으로 떠난 거야. 뉴욕에선 이런 꼴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거든."
"거긴 자유로우니까요. 더 시티잖아요."
그럼에도 결국 M은 뉴욕에서도 길을 잃어, 여기 멀리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까지 홀로 떠나왔다.
"그래서 만족스러워요?"
"몰라. 아이들은 일본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자유로운 뉴욕 분위기랑은 또 안 맞는 것 같아."
"그래도 60개국 정도 여행했으니, 만족스럽다 할 수 있지... 나 아니면 누가 만족하겠어..."
"그도 그렇네요." 멀어지는 킹스타운 항을 바라보며 우리는 '떠나옴'과 ‘만족’에 대해 얘기한다. 세태는 돌고 돌고, 자유로 내몰린 여행자는 방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의 본섬은 멀어져만 간다. 깃대에 앉는 군함조 한 마리. 두 달 동안 땅을 밟지 않고 활강할 수 있다는 군함조마저 앉는데, 내가 뿌리내릴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옛 선원들은 군함조가 앉으면 이를 육지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기뻐했다는 일화를 떠올린다. 바닷사람의 새, 선원의 새. 떠나가는 사람의 새.
"저기 봐요. 군함조예요." M에게 말을 건넨다.
“하루 정도는 쉽게 날 수 있다고들 하죠.”
"그렇네." M은 일어나 깃대 위를 휙 한 번 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고는 말없이 먼바다를 바라본다.
그물도 내리지 않고 고기를 낚으려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저 바다 위의 어부들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앉은 군함조. 오지의 한국인과 뉴욕에서 온 갸루 일본인.
날씨는 화창하고, 섬에는 수목이 우거졌으며,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는 나뭇잎의 싱그러움을 품에 안아 초록빛으로 일렁이나, 만으로 굽이치는 섬의 외곽에는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만의 입구에 떠 있는 크루즈 한 척을 지나, 내부로 진입하니 형형색색의 이층 집들과 정박한 요트 여러 척이 눈에 들어온다. 청옥색 모래와 짙게 푸른 산호들이 파도에 일렁이는 것만 같다. 배는 포트 엘리자베스 항에 정박한다.
"숙소에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제일 유명한 해변, 프린세스 마가레트 해변은 길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나올 거예요." 포트 엘리자베스 페리 터미널 앞에서 나는 M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터미널이라 하기도 초라한 콘크리트 데크에서 여행자 둘은 각자의 길을 떠난다.
"알았어. 가서 기다리지 뭐." M은 답한다.
"혹 보지 못한다면, 남은 여행 안전하게 마치기를 빌게요." 그녀에게 행운을 빌고, "그래. 고마워."라는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그녀는 포트 엘리자베스의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나 역시 발걸음을 돌려 언덕 위 어딘가에 있을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건을 쓴 길가의 흑인 아주머니는 차 트렁크 뒤에 의자를 펴놓고 꾸벅꾸벅 졸며 과일을 팔고,
택시 기사들은 트럭을 개조해 지붕을 씌운 택시에 관광객들을 태워 실어 나른다. 하굣길의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재잘대며 포트 엘리자베스 항으로 모이며, 길거리의 상인들은 작품을 조각하는데 여념이 없다. 지붕도, 상점도 없는 주유소의 아스팔트 도로 위에 차들은 멈춰 기름을 싣고 또 떠나간다. 휴대폰을 열어 확인해 보니 에어비앤비는 산 중턱 어디에 걸쳐 있는 모양이라 나는 땡볕 속을 한참을 걷는다. 베키아 산 맥주를 적재해 놓은 창고와 나무가 관통하고 있는 폐가를 지나 두리번거리며 집을 찾는다.
이름 모를 언덕 중턱에서 내려다본 포트 엘리자베스의 바다는 잠겨 죽어도 좋을 것처럼 아름답고, 가끔은 미풍이 옆머리를 간질이지만, 벌써 반 시간 째 숙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내게는 이를 즐길 여유가 없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의 사진 하나에 의존해,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길은 끝없이 끊어지고, 가는 골목골목이 막달라 에어비앤비 주인 P 씨가 어디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반쯤은 실수로, 반쯤은 의도한 채, 다른 집의 문을 두드렸더니 눈이 사시인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사람이 밟아서 난 길로 나를 안내한다.
"P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여기 섬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알아." 그는 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군요. 많이 덥네요." 마땅히 답변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 하나를 무심코 툭 뱉었다.
"이 정도면 보통이지." 그는 답했다.
"어때 그래도 바다는 예뻐. 만족스러워?"
만족이라. 계단의 턱처럼, 길의 아스팔트처럼 마모되어도 한 걸음 내디뎌 뚜벅 올라가는 건 여전히 만족을 갈구하기 때문인 것일까. 잠시 침묵 속에 "메에" 우는 염소를 지나치고 위를 올려다보니 집주인 할아버지 P 씨가 이층 집의 난간에서 손주를 안고 내게, 그리고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와, 땀이 범벅인 채로 한 시간 동안 언덕을 셀 수 없이 오르내리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샛길을 기어오르며 떠나올 만큼 나는 여행에 만족했던가.
자유로 내몰린 것만 같았지만, 상념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샤워헤드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에 굴복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P 씨에게 이 섬으로 떠나오며 가졌던 최초의 의문을 묻는다.
"실례일 수도 있지만, 여기는 다 좋아 보이는데, 도대체 왜 살인율이 세계 3위인 거죠?"
강아지도 고개 돌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집의 사용법을 알려줬던 할아버지는 문이 깨지도록 큰 목소리로 내게 반문한다.
"살인?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아는 여기에서 무슨 살인이 일어난다고. 그런 일 따위는 없으니까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말게."
진정 내가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그가 아닌 나 자신에게 아마 "살인율 3위의 국가로까지 떠나올 만큼 나는 만족을 갈구하는가."가 아니었을까.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여기가 부산 집의 안방인지, 애틀랜타 아파트의 침대인지, 아니면 이름이라도 아는 한국인을 손에 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베키아의 어느 에어비앤비인지 모를 것 같아, 짧은 낮의 잠을 청한다. 며칠 남지 않은 이 여정에 신의 축복을 기대하며.
*카리브해 국가들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는
안티구아 바부다: 10.77, 바하마: 32.2, 바베이도스: 15.23, 도미니카: 28.43, 도미니카 공화국: 12.37, 그레나다: 6.84, 아이티: 18.98 (현재는 대통령 암살 이후 치안이 파탄난 걸 넘어 부재하고, 여행 금지 지정), 자메이카: 53.11 (1위), 세인트 키츠 네비스: 23.55, 세인트 루시아: 36.92,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41.16, 트리니다드 토바고: 40.44,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영국령): 76.34, 베네수엘라: 12.6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