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행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23년 11월, 밀라노에서 칼을 맞을 뻔한 후 새벽에 공항으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4년 50개국을 여행하고, 밀라노에서의 밤은 가끔 들추어보는 기억으로 전락한 지 오래. 결과적으로 1년 4개월은 다짐을 옅게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70유로의 숙박비가 아까워 맥도널드에서 잤던 23년 11월의 나와 35달러의 택시비가 아까워 해도 뜨지 않은 새벽 4시 55분에 공항으로 걸어가는 25년 3월의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었다.
다행히도, 그레나다는 역내에 위치한 전 세계 살인율 3위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4위인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보다는 낮은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 10만 명 당 두 자릿수의 살인율. 0.5명인 한국의 스무 배. 아침에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방을 한 번 훑은 후 문을 열었을 때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도대체 이 놈의 나라들은 면적은 쥐꼬리만 하면서 살인율은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남아공을 뺨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의 그레나다 밤거리를 걸었다. 거리라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것이 라임 스트리트를 벗어나자 인도가 끊겨 1시간의 여정 중 45분은 차도를 걸었다. 어제 걸었던 길이라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새벽 5시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많지 않다. 강남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라면 극히 예외적으로 클럽 앞에 사람 몇 담배 물고 서 있겠지만, 일출을 보기 위해 마찬가지로 5시에 일어난 몰타 발레타에서는 해가 뜨기까지 마주친 사람이 단 셋이었고, 엘살바도르의 서핑 마을에서는 해변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일출은 아름다웠고, 바닷바람은 시원했지만, 카리브해에서 사시사철 불어오는 육풍은 눅눅한 흙냄새와 제초 후 비벼진 풀의 냄새, 그리고 먼저 일어나 아침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와 뒤섞여 후텁지근하게 살갗에 달라붙었고, 나는 어서 공항에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간혹 불 켜진 집들도 눈에 띄지만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이 시간대에 움직이는 사람은 어느 쪽이든 미쳐 있는 사람이다. 일에 미쳐 있거나 아니면 정말로 미쳐서 밀라노의 복면 쓴 남자처럼 사냥감을 찾아다니거나, 곱게 미쳐서 돈을 아끼겠답시고 1시간 동안에 공항으로 걸어간다든가.
일에 미친 사람 하나가 곁을 지나갔다. 레게 머리를 하고 자루 하나를 어깨에 맨 채 털레털레 걸어가는 그에게 "굿 모닝"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살짝 놀란 눈치로, 희미한 미소를 그린 후, "예아. 유 투 브로."라 말하고 스쳐 지나갔다. 언덕 너머로 태양의 잔영이 번져온다.
마지막으로 코너를 돌면 20분 간 직진만 남는다. 새벽 5시 40분. 차로는 한산하나 몇 안 되는 차들은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처럼 도로를 종횡무진 누비며 질주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1시간을 걸어 공항에 도착했다. 해는 완전히 뜬 모양이고, 걱정이 무색하게 '굿 모닝' 한 번을 제외하면 무탈한 새벽의 조금 긴 산책.
도착하니 공항의 시계는 일직선으로 정렬돼 있고, 카운터는 아직 열지도 않았다. 이륙까지 1 시간하고도 조금을 남긴 시점에서야 인터카리브해 항공사의 직원들은 짐을 받고, 8시가 되어서야 출국장의 면세점은 문을 열었다.
오전 8시 15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행 비행기는 마침내 이륙한다. 38분의 짧은 비행 동안 나는 꿈을 꾼다. 잡지 속 해변과 상념이 파도치던 곶의 꿈을, 한때 섬을 누볐던 미군과 쿠바인의 꿈을.
꿈 너머로 그레나다가 유리되어 사라진다. 다시. 아일랜드 호핑. 이번에는 앤틸리스의 보석, 카리브해의 원주민들이 '축복받은 자들의 땅'이라 칭했던 헤이룬*, 그리고 세계 살인율 3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으로.
*그레나다의 별칭이 스파이스 아일랜드이듯,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은 헤이룬(Hairoun)이라 불린다. 뜻은 축복받은 땅. 간혹 눈에 띄는 지역 맥주의 이름이 헤이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