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안세, 그레나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해변으로 걸어갔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퇴근길의 차들은 왼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밴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으며, 개중 몇몇 해맑은 아이들은 밴의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칠순 노인 하나는 가다 말고 멈춰 서서 자신이 본 게 아시아인이 맞는지 확인하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멀대 같은 흑인 소년 둘은 눈을 찢고 웃으며 달아났다. 그 모든 풍경과 그 모든 순간이 파도의 포말처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마치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처럼, 병원의 에어컨 바람처럼 서늘한 침실에서 겨우 기어 나와 선글라스를 대충 걸치고 휴대폰을 챙겨 문밖으로 나섰다. 여기도 모기가 기승이었다. '모기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여자들이 나를 사랑했더라면 수면 부족 혹은 복상사로 진작에 죽었으리라' 따위의 멍청한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 멈추고 또 긁다 보니 몸 대여섯 군데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도로에 가만히 서 있으며 맡을 수 있는 건 매연뿐이고 물릴 수 있는 건 모기뿐이었으며, 다시 되새기는 건 내가 (그들에게) '째키 찬'이라는 사실뿐이었으니, 그래서 나는 바다로 나아가야겠다 생각했던가. 모를 일이다.
공원은 체육 행사로 분주했다. 사열식을 마친 후 사람들은 크리켓을 즐겼다. 영국 식민지의 잔재는 좌로 길게 늘어선 차와 삼발이 플러그를 넘어 해변 앞 공원까지 대를 넘어 이어져 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기 사람들의 피부는 검었다.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서 편하다.' 따위의 얄팍한 감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고, '모기가 기승이다.' 따위의 평가 역시 무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붉어 가렵지도 않은 피부를 계속 긁어댔다. 이건 어떠한 불편함일까. 애꿎은 뒷머리만 벅벅 긁어대곤 여러 번 쓸어 넘겼다.
스카이라인 스캐폴딩(Skyline Scaffolding)에 고용돼 위험천만하게 페인트를 칠하는 인부의 불편함일까. 그도 아니면 공원 밖 주차블록에 앉아 자세를 여러 번 고쳐가며, 머리의 각도를 바꿔가며 철제 펜스 사이로 경기를 곁눈질하는 관중의 불편함일까. 마트 주차장 길목 반대편의 길을 따라 들어가니 카리브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그랑 안세(Grand Anse)'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형제들이 물살을 유유히 가르고, 지기 전의 해가 그려내는 음영과 바다의 경계를 요트 한 척이 가르며 천천히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동생과 물에서 수영한 게 언제던가.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 있지만 특정할 수 없어 한숨을 내쉬며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어린아이는 모래성을 쌓는데 여념이 없고, 그 뒤의 부모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아이를 바라본다. 흑인들과 백인들. 그리고 이방인 하나. 목화솜 같은 자그마한 모래 둔덕에 앉아 괜히 모래만 집어 흩뿌린다.
구름이 해를 가려가고, 일렁이는 파도에 상념을 실어 보낸다.
떠나갔다가도 밀려오는 파도. 해가 가라앉으며 시간은 흐르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정체는 변함이 없다. 영어만 나오다 무작위로 이제 한국 발라드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빼고 바닥에 던져두었다. 양팔을 뒤로 뻗어 땅을 짚으려다 조개껍데기에 손바닥이 긁혔다.
몽실한 모래는 나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다. 둥둥 떠있다 다시 떠나갈 뿐.
오늘도 해가 저물고, 나는 철저히 혼자다. 노을은 아름답고, 나는 나를 잊지만, 결국은 저물어 나는 다시 혼자 숙소로 걸어가,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혼자 잠에 들었다, 내일 아침이면 혼자 일어나 혼자 공항으로 걸어가겠다.
고독은 무엇이고 외로움은 무엇일까. 파도가 밀려와 모래사장에 태양의 자락을 드리울 때면, 바람도 시린 옆구리 스쳐가, 이 신비를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넌지시 짚어준다. 홀로 서도 오롯한 사람이 그럼에도 혼자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홀로고 혼자다. '해변의 아시아인은 하나이지만, 그보다는 해변에 혼자 온 사람이 나뿐이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해변을 뛰어가는 주인과 개, 이리저리 포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여자 셋, 그리고 뒤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의 마무리를 기다리는 가족 여럿. 파도에 실린 상념은 지는 해 따라 멀어져 가는가.
혼자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그저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는 나라에서의 노을을 즐기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는가.
내일의 나는 다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떠나고 또 떠나겠다. 모름지기 역마살이란 그런 건가.
니카라과 오메테페 섬에서 나는 자홍색 노을을 보며 몰아에 잠겼다. 그레나다 그랑 안세의 해변에서 나는 다시 노을을 보며, 이 방랑벽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나, 노을은 어느 클럽에서 웃음만 건네고 사라졌던 묘령의 여인처럼 아름답고 또 말이 없어, 나는 망연자실히 밀려오고 흘러가는 상념이 커다란 곶*을 돌아 망망대해로 떠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격랑처럼 몰려와 나를 흠뻑 적시우고 떠나기를 바랄 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마트에서 맥주를 한 병 사고, "째키 찬." 소리를 무시한 채 돌아와 파스타를 만들고, 병을 따 단숨에 들이켠다. 잠이 와야 하는데, 정신은 또렷하고 침대에 혼자 누워 한참을 뒤척인다. 오전의 잡지 속 해변은 아름다웠고, 저녁놀 지는 해변도 아름다웠지만, 여전히 파도치는 상념. 차라리 격랑처럼 흔들어 바꿔주면 좋으련만, 툭 치고 숨어버려 울적하기만 한 하루 끝.
*Grand Anse: 커다란 곶 (불어, 번외로 셰이셀의 Anse Source d'Argent 해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꼽히는 해변인데, 여기서 Anse 역시 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