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 편 >
전역 직후에 구한 아르바이트에서부터 본격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전역하고 2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구직 활동을 서둘렀던 이유는 절박함 때문인데, 다음 학기에 바로 복학을 한다면 입대 전의 암울했던 생활을 반복할 것 같아서 일 년 휴학을 결심했다. 그 기간 변화해야만 하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온종일 집에만 있을 순 없었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아르바이트부터 구했다.
하지만 의욕과 다르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이 무섭다’
▼
‘사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
▼
‘고객과 접촉이 많은 [서빙] 아르바이트’
▼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이러한 문제 해결 도식이 그려졌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뛰어들어가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무모하면서도 대범했다. 그때 동네 근방에 신규 TGIF 패밀리 레스토랑이 오픈하니 직원들을 구한다는 공고가 떴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생애 첫 아르바이트이자, 사회공포증 극복 프로젝트의 첫 실전 경험이 시작됐다.
TGIF 아르바이트에서 몇몇 친한 형, 동생들을 만나면서 간절히 소망해 온 관계들을 경험했다. 약 8개월간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인연을 지속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밤새 술도 마시기도 하고, 때론 회식하면서 "나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구나! 내가 완전히 매력 없는 존재는 아니구나!"라는 믿음을 쌓아갔다. 또한, 동료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통해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오랜 기간 교제를 하며 사랑을 주고받았다. 현재는 그녀와 헤어졌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어설프고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항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강박 때문에 지나치게 상대방의 눈치를 봐서 줏대 없이 행동했다. 또한, 여전히 부정적인 인지 도식(cognitive schema)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인지 도식이란 생각의 틀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곧 나를 싫어할 거야", "내가 작은 실수만 해도 비난할 거야" 등 좋지 않은 사고들이 내 머릿속을 꾸준히 맴돌았다. 나 자신보다 타인이 바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 억지로 노력을 기울였던 한계가 있었다.
TGIF 아르바이트 경험이 인간관계 형성의 '입문 편'이라면, 복학 전 3개월간 일했던 네이버 본사 내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은 '심화 편'이다. 낮은 자신감으로 수동적이었던 첫 아르바이트와 달리, 네이버 카페 경험에선 능동적으로 관계를 형성했다. 경계심 없이 동료에게 장난을 치고, 해당 직원 몰래 깜짝 생일 파티를 기획하는 등 적극 목소리를 냈다. 내가 다가갔을 때 동료가 비난하지 않고 수용해 줬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줬다.
카페 아르바이트 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동생을 만났다.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도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구나!"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 나갔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내 과거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내 상처를 창피해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간직할 수 있게 됐다.
군대 전역 직후까지만 해도 '대인관계 실패자'란 낙인이 마음 한구석에 찍혀 있었는데, 휴학 일 년을 거치며 조금씩 희미해졌다. 군대에서 뒤집어쓴 오물을 씻어내자 내면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했다. 이제 예선이 종료되고, 복학이란 본선이 시작될 참이다. 과연 지난 과거와 다르게 생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변화가 허상은 아닐까? 설렘과 불안이 섞여 묘한 불쾌함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