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에기르의 초대에 응했다. 신들은 발드르를 기리고 자신들의 아픔을 위로하겠다는 에기르의 마음 씀씀이가 더욱 고마웠다. 다만, 토르를 비롯해 많은 신들이 아스가르드를 떠나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로키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오딘은 아스가르드에 남아있는 신들과 요정들과 함께 에기르의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요정들은 하늘에 있는 '알바헤임(Alfaheim : 백색의 요정들이 사는 곳)'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신들의 귀공자 '프레이( Freyr : 군주, 주인)'가 다스리는 주민들이기도 하다.(참고 : '신화속 세계' -https://brunch.co.kr/@e0a94227680644b/8) 요정들도 아스가르드의 일원으로 여겨졌고, 마침 에기르가 그들의 대표를 함께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곧 에기르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스가르드의 해안가로 모여들었다. 먼저 프레이가 그들을 태우고 갈 배인 '스키드블라드니르(Skiðblaðnir : 나뭇잎)'를 해안에 띄웠다. 이 배는 접으면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았지만, 바다에 띄우면 모든 신들과 그들의 무기를 모두 실어도 남을만큼 거대해지는 마법의 배였다. 배를 띄운 프레이는 아내인 '게르드(Gerðr : 울타리, 들판)'와 함께 배 위에 올라 신들을 맞이했다. 배 아래에서는 한 쌍의 인간 부부가 배를 타는 신들의 안내와 수발을 담당했다. 남편의 이름은 '비그비르(Byggvir : 씨앗 또는 옥수수씨앗)'였고, 아내의 이름은 '베일라(Beyla : 작은 콩)'이었다. 이들 부부는 프레이를 모시는 새로운 시종으로 미드가르드의 인간 족 출신이었다. 프레이의 오랜 신하이자, 친구였던 '스키르니르(Skirnir : 씻어서 깨끗이 하는 자, 또는 빛나는 자)'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를 잃은 프레이는 매우 슬퍼했다. 스키르니르 이후에도 오랜시간 프레이의 시종은 인간 출신이 많았는데, 비그비르와 베일라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비그비르와 베일라도 프레이에 대한 충성심은 스키르니르에 못지 않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프레이를 모셨다.
연회장으로 떠날 배가 준비되자, 가장 먼저 신들의 아버지, '오딘(Odinn: 분노, 광기)'과 신들의 어머니, '프리그(Frigg : 사랑하는)'가 배에 올랐다. 토르의 아내이자, 황금머리칼을 지닌 '시프(Sif : 인척)'는 홀로 배에 올랐다. '토르(Thor : 천둥)'는 거인족들 틈에서 로키를 찾고 있었던 지라, 하인을 시켜 연회에 참석하라고 연락을 보내놓은 상태였다. 다음으로 아스가르드의 수문장 '헤임달(Heimdall : 빛나는 집)'이 배에 올랐다.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것은 부하들에게 잠시 맡겨두었는데, 오딘이 그동안 고생한 헤임달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오딘의 다른 아들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배에 올랐다. 시의 신, '브라기(Bragi : 시)'와 그의 아내인 청춘의 여신, '이둔(Idun : 굉장히 사랑받는 자)', 용감한 신, '티르(Tyr : 신)', 가죽 신을 신은 괴력의 신, '비다르(Viðarr , Vidar : 넓히는 자)'가 배에 올랐다. 여러 신들도 배에 올랐다. 바다의 신, '뇨르드(Niord : 힘)'와 그의 아내 '스카디(Skadi : 해치는 자)'가 모처럼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신들의 공주님, '프레이야(Freyia : 여주인)'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그 뒤로 다산의 여신, '게뷴(Gefjon : 주는 자)'을 비롯한 여려 신들이 배에 올랐고, 마지막으로 요정들이 배에 올랐다. 연회에 참석할 이들이 모두 배에 오르자, 프레이는 배를 몰아 에기르의 황금궁전으로 향했다.
신들이 황금궁전에 도착했을 때, 에기르는 가족들과 함께 나와 신들을 맞이했다. 오딘은 에기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감사를 전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친 에기르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오딘이 말했다.
[에기르여,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라면 괜찮소. 잠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 아닙니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만..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이 먼저 들이닥쳤지 뭡니까. 여러분들이 오시기 전에 쫓아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에기르가 대답하지 오딘이 표정을 더욱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괜찮소. 잔치에 객손님 하나, 둘은 예삿일이니 너무 게의치 마시오.]
[그 불청객이 다름 아닌 로키랍니다.]
오딘의 말에도 에기르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는데, 곁에 있던 란이 대신 대답했다. 오딘은 물론 함께온 신들도 모두 놀랐다. 초대한 에기르와 그의 가족들도, 손님으로 온 신들과 요정들도 모두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이들 중 오딘이 가장 먼저 표정을 고치더니 에기르에게 말했다.
[괜찮소. 이렇게 된 거 어쩔수 없지. 로키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는 법은 없으니. 자, 안으로 듭시다.]
오딘은 에기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황금 궁전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여러 신들과 에기르의 가족들, 그리고 요정들이 뒤따랐다. 황금 궁전의 넓은 홀은 대낮처럼 밝았다. 넓은 홀 곳곳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쌓여져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빛이 촛불이나 횃불을 대신하여 넓은 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넓은 홀 안에는 신들을 위한 연회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크고 넓은 탁자가 커다란 타원형으로 자리 잡았고, 그 위에 입맛을 돋구어줄 음식과 음료가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탁자마다 신들의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로키의 이름은 나중에서야 추가된 것이었다. 이미 로키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신들이 들어오자 홀로 먹고 마시던 로키가 신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다들 늦었네? 어서들 오라구!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셔~ 근데.. 이건 별로더라고. 아, 요건 좀 먹을만 하지. 하하!]
로키의 천연덕스러움을 보며 신들은 경악했다. 어찌 저렇게 뻔뻔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신들은 손님으로 온 것이라 애써 불쾌함을 숨긴채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장 상석에는 오딘과 프리그가 앉았고, 주인의 자리에는 에기르와 란이 앉았다. 오딘의 옆으로 신들이 자리했고, 에기르의 옆으로 에기르의 가족들과 요정들이 자리했다. 로키의 자리는 예정에 없었던 지라 신들의 말석에 마련되었는데, 그 곁에 있는 자리는 오딘의 아들인 '비다르'의 자리였다.(모인 신들 중에서 가장 어렸기 때문에) 신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앉자, 연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키의 존재로 인해 연회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물론 로키는 그런 것을 게의치 않는 것 처럼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