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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Apr 07. 2024

엄마라는 이름의 세계

시작은 막막함이었다.

 “앵 앵 응애.” 고요하던 분만실에 가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린다.

“축하드려요, 산모님.”

축하와 함께 가을이가 나에게로 왔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따스함이 차가웠던 분만실의 온도를 바꾸어 준다. 이제 진짜 엄마가 된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낳아 기르는 삶,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당연한 순리하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가을이가 생겨 열 달을 품고 가을이는 큰 어려움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와 내 품에 안겼다. 기쁨도 잠시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 작은 아이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출산으로 회복되지 않은 몸도 한몫 거들었다. 출산 시 출혈이 많아 세상이 빙빙 돌았고 꿰맨 회음부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신생아실에서는 가을이의 모유수유를 위해 밤낮없이 호출했다. 내 몸의 회복보다는 가을이를 위해 먹고 먹이고 자야 하는 것 같은 병원생활이 출산의 기쁨보다 옅어지는 내 자아의 고통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자화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를 흐뭇하게 바로 보며 행복에 젖어 있는 모습. 그게 진짜 엄마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가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등과 허리 어깨의 고통이 참을 수 없었다. 앉아 수유하는 자세조차 힘들어 눈물이 흘러나왔다. 모성애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어지는 줄 알았것 만. 현실은 고통이 모성애를 이겨냈다. 엄마는 아이가 1순위여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내 마음속의 진실은 내가 먼저였다. 그 혼란 속에서도 가을이는 자신의 할 일을 차곡차곡 해냈다. 울음소리로 우유를 요청하고, 또 다른 울음소리고 놀아달라고 보채고, 불편하다고 울어댔다. 초보 엄마는 그 울음소리로 아이의 언어를 해석하느라 내 몸의 고통은 미뤄두고 밤낮으로 동분서주했다.


가을이의 울음소리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무렵 아이는 내게 큰 숙제를 내왔다.

밤마다 가을이는 1~2시간씩 이유 없이 울었다. 처음엔 어디가 아픈 줄 알았다. 우유를 줘도 소용없었다. 열도 없었고 그저 얼굴이 벌게지도록 악을 쓰며 울었다. 안아서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고 같이 울어도 봤다. 가을이는 이게 다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듯 내가 보내는 제스처는 무시한 채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표현했다. 그 울음의 원인이 아토피와 알레르기 때문이라는 걸 가을이가 첫 말을 하면서 알게 됐다. 엄마 다음으로 가을이가 한 말은 “간지러워”였다. 내 미숙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이 그저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로 끝나지 않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그 자각이 내가 엄마 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자존감을 하락시켰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온 가을이는 예민한 신생아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알았어야 했다.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엄마가 된다는 것이 그저 즐거운 일만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그저 의식주만 해결되면 알아서 클 거라는 착각 속에 남들 낳아 키우니  그저 생기면 낳아서 키우면 되는 줄 알았다. 마음이 아직 덜 큰 나는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임신하기 전 건강한 몸을 만들어 출산을 하는 것이 내 몸을 위한 일인 줄도 몰랐다. 남편과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대화하지 못했다. 그저 닥치면 해결될 줄 아는 안일한 마음으로 엄마라는 세계에 입장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꽤나 오래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다. 숲이 아니라 나무 하나만 보면서 안달복달 나 자신과 가을이를 괴롭혔다. 내가 기준이 없으니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가을이는 헷갈려했다. 그런 막막함에서 엄마라는 이름의 세계는 시작되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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