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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Apr 25. 2024

지옥에 떨어졌던 40분.

이 손 놓으면 안 돼.


성큼 봄이 와있었다. 차가웠던 바람이 어느새  산들바람으로 바뀌어 불어왔다. 우리는 봄을 만끽하기 위해 삽교호로 달려갔다. 따듯한 날씨만큼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 소란스러웠다. 그 소란함 속으로 우리도 뒤섞여 들어갔다. 2살, 5살의 유아들을 데리고 바람 쐴만한 곳은 공원이 최적의 장소였다. 아이들이 큰 소리를 질러도 사람들의 떠들썩함에 묻히곤 했다. 돗자리를 펴고 어린 단풍이는 세상을 구경했다. 신기한 건 모두 입으로 가져가 그 맛과 날씨를 음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을이는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며 킥보드를 타고 날아다녔다. 


“엄마 쉬 마려.” 

땀을 뻘뻘 흘리며 킥보드를 타던 가을이가 다가왔다. 남편에게 단풍이를 맡기고 가을이와 화장실로 향했다. 이제 5살이라고 여자화장실 출입을 꺼려하던 시기였다. 

“가을아, 쉬하고 여기 화장실 앞으로 나와.” 

“응 알았어.”

가을이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다. 이내 나도 화장실이 급해졌고 얼른 화장실에 다녀왔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가을이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당황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오지 않자 남편은 단풍이를 안고 화장실로 왔다. 망연자실 서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가을이가 안 보여.” 우리는 동분서주 가을이를 찾기 시작했다. “가을아, 가을아.” 


가을이에게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시킨 적이 있었던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준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교육을 받긴 했지만 5살 아이가 교육받은 대로 행동할 리 만무했다.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만 가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인파가 너무 많았다. 신나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울면서 엄마아빠를 찾고 있을 가을이가 더욱더 사무쳤다. “혹시 파란 셔츠 입은 5살 아이 못 보셨어요?”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가을이는 끝끝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돌덩이가 가슴에 내려앉는 것 같은 답답함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가만히 지키고 있었어야지 왜 화장실을 갔을까. 가을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누가 데리고 간 건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30~40분의 시간이 흘렀다. 끔찍하고도 간절한 시간이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남편이 보였다. 가을이와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히 가을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내 아들. “가을아, 어디 갔었어? 엄마 걱정 했잖아.”

가을이는 놀랐는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나도 가을이와 함께 울었다. 그런 모습을 남편과 단풍이는 숨죽여 지켜봤다.

“어디 갔었어? 엄마가 화장실 앞에 있으랬잖아.” 

“엄마가 안 보여서 찾으러 다녔어, 아줌마가 아빠 찾아줬어.” 

“다음부터는 엄마 아빠 안 보이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알겠지?” 


가을이의 포근한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 손이 애틋하고 따듯했다. 그전에는 이 따스함을 왜 알지 못했을까. 내 손에서 놓쳐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것 같다. ‘이 손을 다시 잡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옆에 있을 땐 항상 아이에게 바라기만 했다. 밥 좀 잘 먹었으면 좋겠네, 잠 좀 잘 잤으면 좋겠네, 가만히 좀 있으면 좋겠네 등.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가을이를 잠깐이나마 잃어보니, 내 마음이 보였다. 지지고 볶고 해도, 무탈하게  함께 하루는 보내는 것이 내가 바라는 행복의 순간들이었다. 힘든 순간들 뒤엔 언제나 따스한 해피엔딩이 있다. 그 해피엔딩들 속 어느 순간 가을이는 나에게 스며들어와 있었다. 미처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울고, 싸우고, 화내고, 웃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었던 거였다. 그 소중한 손을 다시 한번 맞잡는다. “가을아 이 손 놓으면 안 돼.”


기쁨의 재회도 잠시, 집에 돌아와서 가을이는 엄마에게 긴 연설을 들어야 했다. “엄마, 아빠이름 뭐지? 엄마 휴대폰 번호 뭐야? 집 주소 외워봐.” 가을이는 수십 번을 외우고도 물어보는 엄마 덕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싫어, 그만 물어봐.” 투정하는 듯한 음성이 그날 이후로 꽤 귀엽게 들리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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