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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May 02. 2024

아이를 위한 놀이치료, 엄마도 같이 자랐다.

엄마도 연습과 공부가 필요하다.


“가을이 엄마, 가을이  한 번씩 원에 왜 안 나와요?”

“센터에 놀이치료 다니고 있어요.”

이런 대화 후엔 항상 두 가지의 반응이 있다. “아 그러시구나.” 말을 아끼는 타입과 “매주 가기 어려울 텐데 대단하네요.” 나를 치켜세워주는 타입.

내 앞에서 내뱉진 않지만 그 말들 뒤에는 수많은 줄임말들이 따라붙는다. “아이가 문제가 있구나.” "아휴, 힘들겠다." "적응 못하는 거 같더니 역시나 센터에 다니는구나." 


몇 년 전만 해도 상담센터에 다닌다고 하면 인식이 좋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센터에 다닌다고들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도 다르지 않았다. 커가면서 나아질 건데 꼭 센터에 가야만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야만 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다독여줄 사람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한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가을이의 마음은 점차 편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담센터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가을이가 호불호가 너무 강해서 걱정이에요. 좋아하는 레고나 블록놀이는 3~4시간이고 집중하는데 관심 없는 분야는 하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예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도 배워야 해요. 예민하고 싫어하니 안 시키는 게 아니라 자꾸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선을 정해주면 더 편안해해요. 울타리를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베스트예요.”


그 말을 듣고 가을이와 도서관에 다녔다.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하는 거야 뛰어다니면 다른 사람한테 방해되겠지 규칙 잘 지키면 매점에서 가을이가 원하는 거 사주는 거야.” 가을이는 자신만만해했다. 하지만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 행렬에 동참하곤 했다. 그러면 그날은 가을이가 울어도 매점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와버렸다. 서럽게 우는 가을이를 보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아이의 눈물을 단호하게 모른척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가을이는 점차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켜 원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쥐면 성취감에 기뻐했고  엄마가 잘했다고 칭찬하면 가을이의 입 꼬리는 씰룩였다. 


도서관에 적응하면서 우리는 경험치를 넓혀갔다. 문화센터에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하고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보게 해 큰 소리에 예민한 아이를 차츰 적응시켜 나갔다. 한 번에 태도를 바꿔나가는 것이 아닌 단계를 적용해 잘한 부분을 칭찬하면 가을이는 그 칭찬을 에너지 삼아 차츰 나아갔다. 그 모습이 기특했다. 가을이의 변하는 모습에 힘을 얻어 나도 육아 책과 교육 유튜브를 통해 육아의 지혜를 넓혀갔다.



가을이는 어린이집만은 힘들어했다. 가을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좋지 않은 피드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결단해야 했다. 어린이집을 옮기든지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당진에는 아이들이 많아 유치원 당첨되는 게 로또보다 더 힘들다는 시기였다. 우리는 간절했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 간 가을이는 6개월 만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눈치가 생겼고, 하기 싫은 것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센터도 6개월 만에 졸업했다. 가을이의 센터 졸업식에 선생님은 말했다. “이렇게 빨리 졸업하는 아이는 드물어요. 똘똘해서 잘할 거예요.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배웠을 거예요. 노력하는 부분을 칭찬해 주세요.”

초보엄마인 나는 선생님의 공감과 방향제시에 힘을 얻었다. 아이에게 믿고 기다려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 아이는 잘 자랐다.


센터에 다니며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봐도 그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아이를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양육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6개월이었다. 가을이를 보는 시선이 바뀌자 가을이는 웃는 일이 많아졌다. 그 웃음이 나의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모두 엄마 탓이라는 자책에서 엄마가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다독였다. 문제도 노력해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언 마음이 녹고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났다. 

가을이가 유치원에 가고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님, 가을이가 미술수업만 하려고 하면 책상 속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네요.”

예전 같으면 왜 그랬느냐고 가을이를 닦달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6개월간 가을이와 함께 많이 자라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한 가을이가  못하는 걸 안 하려고 하는 성향이라는 걸 알기에 집에 온 가을이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가을아 미술시간에 왜 책상 속에 들어갔어?” 

“친구들은 다 잘하는데 나는 못한단 말이야.”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런데 못한다고 안 할 수는 없어, 자꾸 연습하다 보면  나아질 거야, 힘들면 미술학원 다녀볼까?”

가을이는 한참을 고민 한다. “엄마 나 미술학원 다닐래.”

새로운 장소,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싫어하는 가을이가 스스로 결정했다. 그렇게 가을이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을 가지고 미술학원에 적응했다. 


가을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그 칭찬에 자존감이 올라가고 부정적인 마음은 정화가 되어 얼굴에 밝은 빛을 발한다. 그런 가을이를 보며 생각한다. 아이의 인생에 강요가 아닌  친절한 배려와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주면 가을이는 충분히 잘 자랄 거라고. 최고로 키운다는 마음보다 가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보통'을 목표로 육아를 해보자고.

한 아이가 잘 자라는데 친절한 어른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된다는 말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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