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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May 16. 2024

‘욕심 많은 엄마’의 사교육 유혹 떨쳐내기.

불안이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


“아, 심심해 친구랑 놀고 싶다.”

5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그날따라 친구가 고팠는지 가을이는 몸을 비비 꼰다.  “그럼 친구한테 전화해 봐.” 기다렸다는 듯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나 못 놀아 학원 가야 돼.” “학원가는 차 안이야, 안 돼.” 되돌아오는 대답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친구들은 바쁘다. 가을이도 안다.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여유롭다는 사실을.


학기 중에도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은 날은 5교시하는 날, 친구들이 학원 가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내가 전화하지 않아도 오후 3시 반이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들 학원 갔구나.” “응, 다 영어학원에, 수학학원에 바빠.” “너도 가보는 건 어때?” “싫어 학교공부도 싫은데 학원에서도 하라고?” 가을이는 그렇게 오늘도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긴다.


가을이도 사교육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미리 귀띔을 하자면 나는 욕심이 많은 엄마다. 의욕이 없는 아이라 안 시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운동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것이 생겨도 아무 소용없어. 그러니 너를 위해서 운동은 꼭 해야 해.” 가을이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가 외친 말이다. 첫 운동은 축구였으나 친구와 경쟁하는 운동은 맞지 않다고 그만뒀다. 그 뒤 시작한 운동은 수영. 다행히 물을 좋아해서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피아노. 어른이 되어서 즐길 취미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둘러댔다. 하지만 엄마에겐 큰 그림이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대비하려면 초등학교 때 악기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 두 가지는 다른 대안 없이는 그만둘 수 없다. 가을이와 나만의 규칙이다. 다른 학습학원은 보내지 않기에 그 규칙을 가을이도 받아들인다.


내 교육의 기준은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인 ‘보통’을 목표로 삼았다. (보통: 뛰어나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간의 상태. ) 잘하길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 같았고 못하는 건 가을이의 자존감형성에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보통의 기준이 얼마나 방대하고 깊은지 가을이를 키우며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가을이는 유치원 때 가장 바빴다. 체력은 국력이라며 시작한 첫 사교육은 스포츠 아카데미였다. 5살에 축구, 6살엔 미술학원 추가,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지금이 적기라며 학습지가 추가됐다. 7살부터는 생존수영이 기본이라며 수영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유치원 정규시간이 오후 4시에 끝나면 하루에 한 개의 사교육만 해도 가을이의 스케줄은 오후 6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해야 할 건 갈수록 많아졌고 시간은 부족했고 가을이의 체력도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다. 남들 하는 건 중간정도는 시켜야 한다면서 그 욕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우스갯소리로 유치원엄마들은 얘기했다. “유치원생들이 제일 바빠요. 시킬 게 너무 많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그 욕심은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학원들이 기나긴 휴업에 들어갔다. 2020년에 1학년이 된 가을이는 5월 26일 되어서야 첫 등교를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아이들의 학업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고 방송에서는 연일 떠들어댔다. 열혈엄마인 나는 그 불안증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 유튜브와 교육서적을 뒤지기 시작했다. 공부하고 적용하면서 우리에게 맞는 정보를 선별할 줄 아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불안감은 줄어들었다. 무엇을 교육의 1순위로 잡을 건지가 중요했다. 유치원 2년의 경험으로 지출할 수 있는 돈과 시간, 아이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교육의 1순위는 단연 독서였다. 다양한 경험이나 사람 많은 곳은 갈 수 없는 코로나 상황에서  책만 한 것이 없었다. 내가 경험시켜 줄 수 없는 세계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세계 어느 나라든 언제든지 가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밖에 없던 때였다. 아침에 눈을 떠 온라인으로 학교수업을 듣고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는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모든 사교육비를 책값에 투자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아깝지 않았다. 책은 가을이에게 다음 책의 안내자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주었다. 또한 가을이가 읽는 책 제목이나 내용으로 그 시기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이의 마음을 알아 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학년이 되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가을이는 습관처럼 책을 읽는다.


2순위는 공부정서다. 공부정서를 망치는 최대 적은 엄마의 잔소리. 최대한 안 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루틴이 답이다. 아이와 상의해 스크린타임 규칙을 정한다. 스크린 타임 제한만으로도 아이의 취미생활은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루의 루틴을 위해 계획표를 짠다. 저학년 때는 엄마주도로 짜고 학년이 올라가면  주도적으로 계획표를 짤 수 있도록 엄마는 지켜봐 준다. 스스로 짠 계획은 아무리 어려도 지켜야 함을 본인이 안다. 한 번에 루틴이 잘 안 잡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걸 기본설정 값으로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화가 덜 난다. 또한 근근이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야 한다. 근근이 이어만 나간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그 습관은 체화된다. 그 안에서 가을이가 느끼는 성취감은 덤이다. 학습학원을 가지 않고 지금까지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밑바탕이 여기에 있다.


코로나는 나와 가을이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답답하기는 했지만 정서적으로 돈독해지는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시간. 사교육의 늪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루틴으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게 됐다. 포기하지 않고 이어 간다면 작은 것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우리 엄마는 내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다.


엄마의 교육적 기준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기준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휩쓸린다. 내 기준이 있으면 아이를 닦달하지 않고, 하루 공부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멍 때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도 그 시간을 존중해 줄 여유가 생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가을이는 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할 일을 시작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흐뭇하게 내 책을 집어 든다. 욕심 많은 엄마가 사교육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 이유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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