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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Apr 11. 2024

"사랑해" 이 한마디 덕분입니다.

불안 가득한 육아의 세상에 희망이 깃드는 이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첫 아이의 어려움을 그 새 잊어버리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육아의 순간보다  행복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의 기쁨이 더 커서  어려웠던 순간을 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둘째 단풍이는 초등학교 2학년, 막내라서 그런지 아기 같은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학교를 마치고 오자마자 그 날 있었던 일을 재잘대기 시작한다. "엄마 나 학교에서 토했어." "진짜? 어디가 아팠어? 왜 토했을까?" "1교시 끝나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팠어, 급식 먹고 나서 복도에 토 했어." "지금은 어때? 지금도 속 안 좋아?" 경력직인 엄마는 질문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아이를 안심시킨다. "많이 힘들었겠다, 계속 아프면 오후에 병원 접수하고 가보자." "응, 알았어." 이제는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아픈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병원 안 그득그득한 아이들. 단풍이와 순서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본다. 주사 맞기 싫다고 도망가는 아이, 아픈데 말이 안 통하니 심술을 부리는 아이, 이제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래 저럴 때가 있었지, 아직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초보 엄마 시절을 떠올려 본다.


첫 아이 가을이가  대학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처음 하던 날. 그 작고 여린 몸에 혈관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주삿바늘을 찔렀다. 가을이는 온몸에 힘을 주며 발버둥을 쳤다. 모든 소리가 소거되고 가을이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아이 꽉 잡으세요, 안 그러면 다쳐요." 순둥순둥하게 피를 뽑는 아이들 속, 유독 가을이만 순조롭지 않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새내기 간호사가 혈관을 잘 찾지 못해서 가을이가 고생 하는 거 같아 화도 났다. 병원을 잘못 찾아온 거 같은 죄책감에 눈물도 흘렀다.


가을이를 겨우겨우 압박해서 가느다란 팔을 쥐어짜 냈다. 가을이는 대성통곡했다. 큰 눈망울에 눈물이 뚝뚝, "싫어, 싫어" 외치며 몸부림치던 아이는 실랑이가 길어지니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꼈다. 나는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했다. 피를 담아내는 통에 새빨간 피 가득, 4통을 채우고서야 가을이는 그 고통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가을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길지 않은 인생에 이런 시련은 처음이라는 듯 울다, 울다 지쳐 잠들어서도 움찔움찔 훌쩍댔다. 그런 아이를 보며 안타까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좋지 못한 유전자를 준 거 같아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가을이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일이 생길 때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를 키우며 다른 존재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상처보다 아이의 아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음식알레르기 반응으로 응급실로 급하게 뛰어갔던 밤, 열이 밤새 떨어지지 않아 함께 울며 꼬박 밤을 지새웠던 일, 소파에서 떨어져 팔이 빠졌던 경험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날. 아이의 잘못으로 죄송하다고 남에게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던 날. 혼자였으면 몰랐을 감정과 경험들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나를 점점 단단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아이와 함께 내 마음도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감정의 변화는 여전했지만 내 온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루를 잘 살아 내는 것. 힘겨운 일은 언젠간 지나간다, 지나 보면 별 일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기준을 조금 낮추기로 했다. 오늘 하루  내 손으로 아이를  돌봤다는 것으로 잘하고 있다는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시간은 흘렀고 그만큼 아이들도 자라났다.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아이로 변모해 갔다. "엄마, 엄마"를 외치던 아이는 "엄마 이거" 라며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건네기도 하고  어느새 "엄마, 사랑해"라고 서툰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어려웠던 육아의 나날들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다. 모성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진흙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연꽃처럼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들 속에서 꽃을 피웠다.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울었다. 그 감정 속에 각자이던 아이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불안 가득한 육아의 세상에 희망이 빛이 한 줄기 생겨나는 순간이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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