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다 Jun 27. 2024

쿨한 엄마는 밤 11시 30분까지 기다린다.

아들의 첫 외박날 생각 난, 거리두기.

“엄마, 나 목요일 날 선재네 집에서 자고 와도 돼?”

“응 그래 가고 싶으면 다녀와.”

선재 엄마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은 터라 쿨하게 허락했다. 가을이의 첫 외박이었다. 엄마 없이 못 자던, 자립심이 없어서 항상 걱정이던 아이였다. 고학년이 되더니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걸까?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오겠다는 가을이는 어느 때보다 들떠 보였다.


목요일 저녁.  가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심플하게. 칫솔, 충전기, 비염 약, 갈아입을 옷가지.  포스트잇에 해야 할 일과 자신의 짐을 잘 챙기길 당부했다. 노느라 깜깜무소식일 걸  알기에 자기 전, 등교하기 전 전화도 하라고 메모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가을이는  환한 웃음을 남긴 채 선재네 집으로 향했다. 그런 형을 단풍이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단풍아 부러워?” “아니 안 부러워.” 부러 괜찮은 척 뒤돌아서는 단풍이가 귀여웠다. “오늘 하루 외동아들처럼 즐겨봐.”


그날 저녁, 한 명이 빠진 식사 자리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항상 시끌시끌 귀가 아팠다. 그만해라, 조용히 좀 해라라고 열심히 외치던 날들. “ 한 명 빠졌다고 엄청 조용하네.” “그러게 떠드는 애가 없으니 집이 텅 빈 거 같네, 표정 보니 아들 없다고 서운한 거 같다?” “아니거든.” 


내 마음은 허전했다. 화려한 진수성찬이지만 막상 먹을 것이 없는 허탈함이랄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적막감 뒤에 고독감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가을이가 궁금했다. 뭘 먹고 있는지 뭘 하면서 놀고 있는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선재 엄마가 아이들의 사진을  톡으로 전해왔다. 꽤나 신나 보였다.   괜한 심술이 일었다. ‘이 놈의 자식은 가족 생각도 안 나나? 전화 한 번을 안 하네.’


처음 겪어보는 아들의 외박에 내가 더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점점 더 이런 일이 많아질 텐데. 이제 시작일 텐데. 생각해 보면 5학년이 되고부터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친구가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함흥차사. 전화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가을이는 어느새  가족보다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  내 가시거리 안에서 아이가 머물길 바랐다.



나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잠깐잠깐 친구를 만나러 갈 때와는 다른 외로움. 아이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가을이 자리를 보며 기다리는 나의 모습. 내가 평소에 꿈꾸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도 너의 인생을 즐겨, 엄마도 엄마 인생을 즐길게'라고 말하는 쿨한 중년 여성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언제 연락오나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은 꽤나 찌질해 보였다.  계속 이런 모습이라면 훗 날  나도 괴롭고 아이들도 머물러 있는 엄마가 신경 쓰일 터였다.  그러지 않기 위해  책을 펼쳐 읽어 본다. 단풍이에게 조금 더 관심을 보여본다. 하루 종일 형을 찾던 단풍이도 엄마, 아빠의 관심에  자신의 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내 내 생각은 더 의지에 불타오른다.  더 열심히 내 삶을 살아야겠다.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의 비중을 나에게 더 쏟아야겠다. 


지금은 아이와 나의 거리를 조정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두며  조금은 씁쓸하겠지만 그 애정을  1~2년은  단풍이에게 더 줄 수 있다. 그 시간 안에  취미생활을  더 깊이 있게 하거나 하나 더 늘려야겠다.  연습하다 보면 아이들과의 거리 두기가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엄마가 필요하다고 할 때 관심을 줄 수 있는 유연한 엄마. 아들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힘들 때  어깨 한 번 툭툭 쳐 줄 수 있는 쿨한 엄마.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아들과의 거리 두기가 시급한 숙제가 되었다.


“엄마 나 이제 자려고.” 

그날 밤 11시 30분,  가을이는 전화를 했다. 짐짓 태연하게 대꾸한다. “잘 놀았어? 얼른 자, 내일 학교 가기 전에 전화하고, 잘 자.” 쿨한 척 전화를 끊었지만 학교 가기 전에 전화하라는 나의 말에  웃음이 났다. 아직은 아들과 거리 두기가 어색한 엄마의 소심한 미련이리라.



사진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