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야 하는 이유.
“엄마 오늘 행복했다, 그렇지?”
야외활동을 끝마치고 단풍이는 항상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아이의 얼굴에 맑은 웃음기가 서려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일렁인다. 생각지 않은 아이의 행동이나 말속에 깊은 여운이 밀려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저 나이에 즐거웠던 마음을 입 밖으로 표현할 줄 알았었나?’ 단풍이의 말에 피곤했던 몸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그리고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다시금 고맙게 느껴진다. 성인이 되어서도 기쁘다, 슬프다 솔직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나는 아이에게 또 하나를 배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새롭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을 마음으로 품는 일. 그중 첫 번째는 인내(忍耐)라는 단어였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내가 인내할 일은 나를 위한 일밖에는 없었다. 다이어트로 음식을 참는다거나, 시험공부로 잠을 참는 일들. 하지만 아이 키울 때의 인내는 내가 아는 인내와 큰 괴리감을 안겨주었다. 시간에 맞춰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웅얼웅얼 아이 어를 이해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들. 그 일들에는 초보엄마의 자는 것, 먹는 것, 싸는 것의 제한이 따라옴과 동시에 24시간 만성피로를 누적시켰다. 피로감만 있다면 버틸 수 없는 일들. 아이가 한 번씩 배냇짓을 해주면 그게 좋아서 감내하게 되고 새로운 덕질의 힘으로 괴리감을 줄여나가게 된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말의 의미가 육아를 하며 다 시 한번 새롭게 마음에 되새겨진다.
두 번째는 사랑이라는 단어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누군가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은 연애를 하면 드는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열심히 빨던 사탕을 내 입에 넣어줘도 기꺼이 먹을 수 있는 일. 다른 사람의 토사물만 봐도 같이 웩웩되던 내가 아이의 토사물을 치우고 똥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에 더없이 환히 웃는 내 모습을 보게 되고 아이들의 일에 내 일보다 감정이 격해짐을 느낀다. 조건 없는 사랑과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는 사랑의 의미를 마음에 품어본다.
세 번째는 기다림이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일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밥을 먹길 기다리고, 배변을 가릴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자신의 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되길 기다린다. 사춘기가 오면 본인 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길 기다리고, 본인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말없이 응원하며 기다린다. 수 없는 기다림 속에서 나는 혼자 마음을 졸이고, 들뜨고, 화도 내며 아이가 나아가는 길이 평안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성격 급한 내가 누군가를 기다려준다는 것에 많은 조급함이 있었다. 욱하는 마음에 소리도 질렀고 내 화를 못 이겨 아이 앞에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원인을 해결해 주지 못했고 아이에게 불안과 그로 인한 후유증만을 안겨주었다. 결국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진 뒤의 상황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얕게 알고 있는 시간의 흐름보다는 믿고 기다려주는 지지의 시간이 기다림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다.
요즘 나는 꾸준함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있다.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다는 뜻의 꾸준함. 예전의 나는 나를 꾸준함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으며 살았다. 시작은 잘하나 얼마 가지 않아서 지지부진. 자존감은 갈수록 낮아지고 시작하기도 전에 ‘이것도 얼마 못 갈 거야.’라며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려움에 시작도 하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꾸준함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어린 날은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의식적으로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는 노력을 한다. 물론 못할 수 있지만 얼른,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시작하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 아이 앞에서 책을 열심히 읽는다. 아이들하고 노는 데 체력이 떨어짐을 느껴 작년부터 주 3일 걷기, 주 2일의 요가를 이어간다. 아이들은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엄마라고 인식한다.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비법은 ‘척’에 있다. 아이들 앞에서 읽는 척, 하는 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읽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사실 이런 꾸준함도 큰 아들 가을이를 보며 배웠다. 수영, 피아노, 독서, 학습습관. 한 번 시작하면 군말 없이 오래 지속한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봐도 저렇게 지속하는 게 가능했을까 생각한다. 처음은 엄마의 강제성으로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고 습관은 꾸준함을 선물한다. 못하면 안 닦은 거 같은 찜찜함이라고나 할까. 가을이의 끈기에 자극받아 작년부터 나도 독서, 운동, 글쓰기를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다. 아들에게 지기 싫은 묘한 경쟁심이 일기도 한다. 동생 단풍이도 형과 엄마를 보며 툴툴대면서도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좋은 습관은 옆 사람에게 전염이 되나 보다.
어느새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자극받고 자극 주는 좋은 경쟁자가 됐다. 아이에게서 배우고 아이들은 나를 보며 자란다. 오늘의 하루를 의미 있게 잘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꾀가 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에 나는 더욱더 열심히 ‘척’을 하며 살아간다. 읽는 척, 열심히 운동한 척, 쓰는 척. 이런 척들이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내일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떠한 단어들을 품어가며 살아가게 될까? 품어가는 단어들이 많아지면서 스스로가 꽤 괜찮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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