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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Mar 04. 2023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

- 다시 한번 자식이 되어 본다는 것


엄마.. 나 할 얘기 있어




저녁 쌀을 씻고 있는 내 옆으로, 첫째가 바짝 다가와 말을 건다.

"어 왜?"

"아니 여기서 말구. 내 방에 잠깐 같이 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뭔가 설레 보이는 얼굴. 응?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닌데?

아이 손에 이끌려 방으로 가는 그 걸음 걸음마다 물음표가 따라온다. '요즘 모쏠 모쏠하더니 남친이 생겼나?' '세븐틴 오빠들 콘서트 얘긴가?'  도대체 뭔 말이길래. 궁금해 죽겠다. 아이가 문까지 꼭 닫는다. 몇 초 뜸까지 들어더니 어렵게 입을 뗀다.


"엄마 나 그거.. 그거 시작한 거 같아"

"응? 그거? 뭐?  아.. 그거. 진짜?"


호들갑스러운 엄마 반응에 아이는 수줍게 웃는다. '아무튼, 나 지금 기분 무지 좋음' 얼굴에 쓰여 있다.

 

생리를 이토록 반기는 아이가 또 있을까.






나라도 지킨다는 무적 중2. 올해로 열다섯이 된 첫째는 사실 오래전부터 그날을 기다려왔다.

모르긴 몰라도 반 아이들은 거의 다 하고 있는 거 같다면서 나는 왜 아직이지? 이런 말을

몇 번씩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난 "늦어지면 좋은 거래. 키도 더 클  수 있구" 주워들은 말로 안심시켰지만, 언제쯤 하려나 내심 신경쓰였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기다리던 '그분'이 와 준 거다.


축하를 해 주고 싱크대로 돌아와 다시 쌀을 씻는데 머릿속이 꼭 쌀뜨물 같다. 영 뿌옇고 복잡하다.  "아싸! 나도 인제 생리결석 할 수 있다" 정작 당사자는 이렇게나 해맑으신데.   



30년 먼저 시작한 선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나.

'생리 A to Z' 챙겨야 될 것, 신경 써야 될 것들을 떠올리다 보니 이건 뭐 끝이 없다. 키만 컸지 마냥 아이 같기만 한데. 지나가다 미끄럼틀 보면 바람같이 달려가 그 큰 몸을 욱여 넣고 쌩 내려오는, 덩치만 큰 애긴데. 한 달에 한번 거사를 치를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 와중에도 아이가 화장실 들락날락하는 소리는 계속 들린다.  







"오는 길에 꽃집 문 연데 있으면 꽃다발 하나 사 오셔"

남편한테 귀띔을 해 줬더니, 용케 작은 꽃다발을 구해다 딸아이에게 쥐어준다. 아빠의 어색한 축하와 딸의 어색한 웃음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해맑던 아이는 점점 한숨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한숨은 신경질로 바꿔었고 급기야 "아, 언니랑 진짜 같이 못 살겠다"는 둘째의 심경고백으로 이어졌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손님이 생각보다 얼마나 불편하고 까탈스러운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책의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아이를 왜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아닐까.
누구도 본인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 김애란 님 '두근두근 내 인생'


작가님 표현처럼, 한번 더 자식이 되어 그 시절 나를 보게 된다. 30년 전 나를.




'이게 그..그거구나'

30여년 전 그 날, 누가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적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온통 내 몫이었다.  만화 영화에 빠져있는 조무래기 동생들에게 말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분명 엄마도 한 달에 한번 치르고 있는 일일 텐데 도대체 엄마가 이걸 어떤 식으로 치렀는지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어리둥절한 얼굴로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다,  

퇴근한 엄마한테 어렵게 어렵게 얘기를 꺼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 한 달에 한번 슈퍼에서 집까지 생리대를 공수해 왔다. 그 당시 슈퍼에서는 생리대만의 독특한 포장법이 있었다.  신문지로 한번 휘리릭 감싸는 걸로도 모자라 검은 봉지로 또 한 번 돌돌 말아주기.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럴 일이었나 기이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혹시나 학교 체육 시간에 실수(?)할까 봐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고 걸었던 모습,  

어쩌다 걱정이 현실이 되어 일이 벌어지면,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처럼 벌게져서  

교복 치마 위에 체육복을 허리에 두르고 서둘러 집에 왔던 모습,


잊고 있던 30년 전 나를 생생하게 다시 보게 됐다.

거기에 못 보던 장면까지 덤으로.

그때 내 얼굴이 저렇게 난해 했구나, 내 뒷모습이 저렇게 불안구나,

저렇게나 '애'였구나 하는 것까지.




딸아이는 그야말로 기복 있는 생리주간을 보냈다. 잔뜩 날을 세웠다가도 조용해서 뭐 하나 보면 신생아 마냥 다소곳이 이불 덮고 누워 있었다. 그러다 없는 에너지를 끌어 모아 가끔씩 활동을 하고 또 부지런히 신경질을 내다, 어느 날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아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딸아,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은 차마 못 했다.  밑이 빠지는 느낌, 허리가 끊어지는 느낌을 알아가며 뭘 해도 불편한 그 시간을 수도 없이 겪을 아이를 보며 응원의 눈길만 보낼 뿐이다. 우리 서로 그 주간에  'JS'(진상) 오브 JS' 만은 되지 말자고도 눈으로 얘기해 본다.

 




- 에필로그

며칠 뒤, 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개키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이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양말 짝을 맞추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고' 하는 내 얼굴을 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날이잖아. 엄마 힘들잖아"


자식을 낳으면 부모만 자식이 되어보는 게 아니었나 보다.

자식도 부모 마음이 되어보나 보다.


아주 '찰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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