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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Apr 28. 2023

생라면인건가

그러고 보면 수학에만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살다 보면 나만의 루틴 같은 공식이 하나 둘 생기기도 하는데 나에겐 언제부턴가 이런 공식이 생겨버렸다.  


야밤+나홀로+헛헛한 기분=생라면


야심한 시간 혼자 덩그러니 있는데 왠지 모르게 헛헛하다 그러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게 바로 생라면이다.

오늘이 바로 그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날이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들고 남편은 출장 중. 카드값에 각종 공과금까지 바쁘게 빠져나간 초췌한 통장 내역을 보고 있자니 기분까지 휑한 날.  

어지간하면 머릿속에 생라면이 떠다녀도 그냥 침 한번 꿀꺽 삼켜버리데 오늘따라 유난히 부지런한 오른손이 벌써 싱크대 문을 열어 버렸다.


상아색 뽀얀 면에 빨간 스프를 뿌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세상에 역사적인 식품을 선보인 그  주인공은 이런 장면을 상상이나 했을까.

수천수만 번 끓이고 맛보고 최상의 비율, 최상의 맛을 뽑아냈더니만


'뮐 끓인대요. 생으로 먹어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하 세상 행복해하는 나 같은 사람을 보면 "왓??"

김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로 먹어도 이렇게 맛깔난 '물건'을 만들어 놓은 그의 잘못이다. 물론 끓인 라면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생라면은 나에게 특별히 옳다.



'나에게는 명곡이지만 같이 듣기는 뭔가 좀 부끄러워서 숨어 듣는 노래' 숨어서 듣는 명곡이라고 해서 요즘 말로 '숨듣명'이라고 한단다.

나에겐, 숨어서 듣는 거 말고 '먹는 거', 그것도 소울푸드가 바로 생라면이다.


'숨어서'라는 말을 붙여 놓고 보니 왠지 궁상맞고 찌질한 느낌까지 들지만 사실 처음부터 숨어서 먹었던 건 아니다.


원래는 당당하게 먹었다. 물론 야심한 시간인 적이 많았지만 음지가 아닌 양지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제조 과정은 궁상맞기 짝이 없어졌다.



일단 거실 주방 제조가 불가능했다. 그 자리 서서 한 바퀴 삥 돌면 360도 뷰가 가능할 정도로 집이 워낙 작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는 소리에 특히 예민했다. 이 경쾌한 퍽퍽 소리에 신나서 깨기라도 하면 그 순간 산통도 다 깨져버리기 때문에 일단 먹겠다는 의지가 올라오면  

라면 봉지를 들고 골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이불속에 라면 봉지를 가만히 넣고 주먹으로 툭툭 투둑 부숴준다.  데시벨은 최대한 작게, 압은 최대한 강하게.

런 다음 입구를 양손으로 잡고 최대한 소리 안 나게 열어주는데 이때 힘 조절이 관건이다. 은근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라 온 힘을 모으다 보면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었다.   

내가 이 나이에 이걸 이렇게 까지 해서 입에다 쑤셔 넣을 일인가.



KBS '홍김동전' 60데시벨 이하로 생라면 먹기 도전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이렇게 까지 해야 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생라면은 내 유일한 친구였다.

  


결혼 3년 만에 기다리던 아이가 테스트기 두 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날, 난 한참을 기뻐했다. 너무 한꺼번에 기뻐해버리면 왠지 훅 날아가버리기라도 할까 봐 조금조금씩 아껴가면서. 그렇게 아이는 신기하게도 세상에 왔고 아이는 모든 걸 처음 보듯 봤다.  


처음 보는 건 처음 보는 대로, 수십 번 본 것도 지금 이 순간은 처음이니까 또 처음처럼 신기한 듯 봤다.

그렇다 보니 "우르르르르 까꿍!" 무한 반복부터 방구쟁이 뿡뿡이가 뿡순이한테 로켓방귀 선물하는 동작도 수십 번 재연했다. 그때마다 빵빵 터지는 아이를 보며 내가 '개그'에 재능이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는 웃음만 빵 터지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음은 더 삥빵 터트렸고 그렇게 희로애락이 확실한 아이와 울고 웃다 보면 하루는 길고도 짧았다.


그 당시에도 남편은 출장이 유난히 많았고 종일 혼자 아이와 "그랬쩌 저랬쪄"만 실컷 하다 어른의 말은 한 번도 못 써보고 하루가 지나가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다 나까지 재우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살아남아 머리는 산발이 돼서 식탁 앞에 덩그러니 앉으면 맥락도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니가 그렇게 바라던 아이잖아. 너무 이쁘잖아. 슬프면 안 되는 거잖아' 뭔지도 모르겠는 눈물을 옷소매로 쓱 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면 느 순간 허기가 몰려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그때 내 헛헛함을 채워 준 게 바로 생라면과 맥주 한 캔이었다. 남들은 맥주 생각이 나서 안주로 뭘 먹는다지만 알쓰인 나에게 맥주는 생라면을 먹기 위한 곁다리 정도였다.


그렇게 생라면으로 시작해서 미드로 이어졌던 나만의 시간은 다음 날 어김없이 부은 얼굴을 만들어줬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게 왜 그렇게 좋냐고 물으면 글쎄. 그 한 봉지를 비우는 그 시간만큼은 그냥 '', 철없는 내가 되는 기분이랄까.



그때 그 소리에 예민하던 그 아이는 이제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자는 아이가 됐다.

식탁 밑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라면 부스러기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주워 먹으며 "엄마 또 우리 잘 때 1봉 하셨구만"하기도 하고

또 어쩌다 맘 맞으면 같이 찍먹, 뿌먹기도 하는 청소년이 됐다.


맥주와 어울리는 멋스럽고 어른스러운 수많은 안주들이 있지만

난 투박하고 유치한 생라면이 좋다.

유치한 나로 돌아가게 해 주는 그게 좋다.

치아가 허락하는 한,

아니 틀니를 하고서도 어쩌면

생라면을 씹을지 모르겠다.

철없이.





                                                                       


                                                                       이미지 : Pixabay / KBS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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