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퍼프까지 '톡톡톡' 꼼꼼하게 두드린다. 가끔은 립글로스를 바르기도 한다. 오 학년이 된 아이가 세수한 뒤 하는 의식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양치는?" 물으며 칫솔모에 물기가 있는지 없는지 손으로 만져본 것 같은데 말이다. 얼굴 단장을 마친 뒤 머리를 묶고 입고 갈 옷을 고른다.
"힙한옷 을 입어야지"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다. 배꼽 위까지 오는 짧은 '크롭티셔츠' 츄리닝을 입겠다는 말이다. 속옷은 챙겨 입으니 다행이다. 아이의 학급에서 노래에 맞추어 손댄스를 하는데 세 명이 뽑혔다. 아이도 그중 한 명이다. 세 명이 먼저 손으로 춤을 만들어서 다른 모둠원들에게 전해야 한다. 다리에 부목을 하고도 바쁘다. 어젯밤에는 친구집에 모여 늦도록 연습을 하고 오더니 오늘 아침은 등교 전 일찍 놀이터에서 만나 연습을 한다.
친구들 앞에 나가 춤을 선보이니 힙한옷을 입겠다는 말이다. 사놓고 제대로 입은 적이 없는 흰 블라우스를 입히고 싶어 슬쩍 권해본다.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 소재에 셔링이 크게 잡혀 디자인이 특이하고, 체리핑크의 작은 단추와 라벨패치까지 달려있어 한눈에 반해 사 놓은 블라우스다. 아이는 쿨하게 거절한다. 4학년이 되면서부터 가끔 입어주는 스커트 말고는 매일이 츄리닝이다. 이제는 포기하고 아이의 말대로 힙한 츄리닝을 사줄 수밖에 없다.
놀이터가 학교와 붙어있는 곳이라 책가방을 메고 같이 갔다. "리나야 괜찮아?" 친구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으며 안부를 묻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나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을 보낸다. "할머니 품이 좋아" 파고들어 안겨서 자고 일어난 아이의 이중성이다. 괜찮다. 어차피 나의 목표가 너를 잘 독립시키는 것이거든? 이쯤 되면 빠른 독립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이른 시간에도 학교 가는 아이들이 많다. 오고 가는 아이들의 경쾌한 발걸음에만 눈길이 간다. 며칠 전부터 아이가 같이 목욕을 하자고 했는데 귀찮아서 거절했다. 오늘은 따뜻한 물을 받아서 같이 욕조에 들어가야지.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꼭 확인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