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원래 이 정도로 눈이 왔었나? 서울이나 수도권에는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래도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밟은 기억이 꽤 된다. 눈은 이쁘다. 내릴 때는 좋다. 눈은 더러워진다. 내리고 난 후엔 싫다.
질척 질척. 질퍽질퍽. 조심히 걸으려 노력해도 종종 헛수고가 되어 돌아온다. 아이는 신이 난다. 멀쩡한 길을 내버려두고 일부러 눈이 쌓인 길로 돌아간다. 발이 젖어도 옷이 젖어도 옆 사람에게 눈과 흙탕물을 튀겨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옆 사람이 내가 아닐 때는 주의를 주지만 나도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 한때라는 걸 아니까.
겨울이 겨울 같지 않았던 곳에서 2번의 겨울을 보내고 오니, 겨울이 겨울 같은 곳에서 느끼는 겨울이 새삼스럽고 기분 좋다. 그렇지. 계절이 그 계절다워야 사는 느낌이 나지. 이렇게 한껏 추웠다가 꽃피는 봄이 오면, 봄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
어렸을 때 눈이 한참 내리면 골목 어귀에 버려진 연탄재를 주워와 그 위에 눈을 덮어 쉽게 눈사람 몸통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연탄재도 구하기 어렵고 눈사람을 만들 마음도 찾기가 어렵다. 아이는 책에서 많이 본 것처럼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당근코와 솔방울 눈을 붙이고 싶다. 엄마는 장갑이 없다는 이유가 타당해 보였는지 크게 보채지 않고 다음에는 꼭 장갑을 가지고 나오라고 한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수많은 책에서 봐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아이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부디 내년에도 이렇게 눈이 펑펑 와주었으면. 그땐 꼭 눈사람을 너의 키보다 크게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