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스크 Feb 13. 2023

있을 때와 없을 때

이제는 그만 달리고 싶다.

 지난 8년간 미국 생활에서 차는 없으면 안 되는 삶의 질을 수직상승 시켜주는 물건 중 단연 1위였다. 특히 엘레이에서 차 없는 삶은 상상을 할 수 없다. 대중교통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치안이 그리 좋지 않아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차를 타는 걸로 익숙해진 일상이었기에 아이는 어려서부터 차를 아주 잘 탔다. 그 반대급부로 걷기에 아주 취약했다. 유아차를 태우기에도 어중간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유아차를 대뜸 처분해 버렸다. 아주 짧은 거리라도 걷기 연습을 하기 위해 다운타운 산책을 늘리고 하이킹도 자주 데리고 갔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삶의 질을 상승시켜 주던 차는 이상하리만치 족쇄처럼 느껴졌다. 오전 7시 50분에 차로 출발해야 겨우 8시 10분 전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는 항상 조금씩 늦게 준비를 마쳐 나는 갈지 자를 쓰며 곡예운전의 선수가 되었다. 5분만 일찍 준비를 마쳐도 여유로운 운전이 될 텐데 아침마다 곡예운전은 내 수명을 깎아먹기라도 하는 듯했다. 운전이 싫어졌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에 오는 시간은 족히 1시간은 걸렸다. 귀한 아침 시간을 운전으로 허비하고 아이가 학교를 끝마칠 때쯤이면 또다시 운전으로 하교를 도왔다. 학교 앞에는 언제나 나와 같은 부모의 차량으로 교통체증이 있었고 개중에는 꼭 성질을 돋우는 운전자들도 있었다. 씩씩 댈 틈도 없이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했다.

 아이는 주 3회 태권도가 있고, 주 1회 미술 수업이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운전으로 시작된 하루는 퇴근길의 지루한 교통체증과 함께 6시에 마무리되었다. 집에 오면 아이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는 부지런히 저녁을 차렸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운전으로 지친 하루의 마무리였다.



 장이라도 볼라치면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사야 하는 물건의 종류에 따라 다른 마켓을 방문해야 한다. 대용량의 저렴한 상품은 코스코를, 한국 식재료를 위해 한인마트를, 공산품 구입은 타겟을, 원하는 물건에 따라 트죠를, 홀푸드를. 그 어떤 마트도 서로 가깝게 인접해 있지 않았다. 장을 보는 날은 하루 종일 운전 하는 날이고 트렁크 가득 쌓인 물건을 집으로 옮기는 것도 일이었다. 나중에는 운전대만 봐도 목에서 신물이 넘어오는 것 같았다. 운전이 싫었다. 어마어마한 엘레이의 교통체증도 그렇고 하이웨이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운전 빌런들도 이골이 났다.

 그렇게 운전이 질릴 데로 질린 후에 뉴욕 여행을 떠났다. 엘레이와는 또 다른 비교할 수 없는 운전대란이었다. 행복했다.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남이 운전하는 차에 타서 그저 여유롭게 앉아있기만 해도 된다는 점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운전 빌런들도 더 이상 내가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우리는 차 구입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원하면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시내로 교외로 한참 멀리로 어디를 갈지가 문제였지 어떻게 갈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경기도 시민이 되고 나니 서울시내나 근교는 대중교통으로 거진 1시간이 소요되고 내가 원하는 근교는 2시간이 소요된다. 가 운전하는 차에서의 2시간과 대중교통으로 2시간은 천지차이다. 특히나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더 큰 용기와 체력을 요구했다. 그렇게 나의 외출은 점점 줄어들고 운전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 커져갔다.

 주말 동안 부모님을 방문했다. 엄마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단기 보험을 신청해 놓았다. 한국에서 정말 오랜만의 운전이기도 하고 6개월의 공백 때문에 운전이 무서워졌다. 심지어 경미한 접촉 사고를 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좁은 주차장에서는 차 뒷좌석에서 혼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른 운전자들을 경외심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는 군산. 이유는 없다. 그저 부모님이 살고 계신 전주에서 가깝고 내가 아는 이름의 도시이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부르르릉. 오랜만에 느끼는 엔진소리와 차의 떨림이 좋았다. 이전에 타던 나의 13년도식 코민이는 내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했다. 21년도 식 부모님의 애마는 언제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지도 다 알려주고 긴장하지 말라며 엉덩이 따스히 덮여준다. 주기적으로 울리는 속도제한 알람이 신경 쓰였지만 오랜만에 밟는 페달의 느낌이 좋았다. 재깍재깍 걸리는 브레이크도 좋았고 내 등뒤에서 아이도 덩달아 신이 났다. 

 운전은 문제없으니 이제 차만 사면 되겠다는 엄마의 말에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운전이 싫어서 남편과 서로 조수석에 앉겠다고 아웅다웅했던 게 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운전이 그립다. 이래서 사람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언젠가는 피곤한 운전은 싫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서 좋다고 할 때가 오겠지 싶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시간은 항상 진행 중이다. 다른 건 둘째치고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상황을 불평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때를 즐기길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엔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이 떠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