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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Nov 13. 2024

쯔쯔가무시 할머니

시부모님도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님입니다.

홍 할머님은 올해만 3번째 입원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신 후 식사도 잘하지 못하시고, 내내 울기만 하신다는 홍 할머님은 이번엔 진단명이 발열 및 대상포진 의심으로 막내딸과 동행해서 입원하셨다. 


처음 입원하셨을 때는 내가 쉬는 날이어서 누구와 왔는지 모르겠고,

한 달 전 두 번째 입원하실 때는 큰 아들 내외와 함께 입원하셨었는데,  입원 수속만 밟고는 병실로 오신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아들내외는 집으로 가버렸다.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혼자 거동 가능 하니 혼자 있을 수 있다고 하며 퇴원할 때까지 한 번도 나타나질 않았다. 

할머님은 입원해서도 식사도 거의 드시지 않았고 창가 쪽 자리에서 등을 보인채 내내 누워만 계셨었다. 

그때 할머님 식사 챙겨 드리며 할머님 가족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홍 할머님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셨다고 했다. 둘째 아들은 몇 년 전 외국 나갔다고 하며, 큰 아들은 가까이 살긴 하나 일이 바빠서 자주 못 본다고 했다. 막내딸은 서울에 살아서  명절 때나 볼 수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둘이서 같이 농사지으며 살아서 적적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살 낙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러면서 "난 우리 영감 보러 갔으면 좋겠어... 혼자 외로울 텐데.."라며 울곤 하셨다. 


그런 어르신이 이번엔 5일 전부터 몸살기가 있더니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져 입원하셨다. 담당의는 대상포진일 가능성 있으니 어르신 발진 양상을 잘 관찰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입원한 지 이틀 정도 지났을까 어르신 열이 해열제 및 항생제를 쓰는데도  전혀 떨어지질 않았다. 

심한 근육통을 호소하며 힘들어하시는 어르신에게 얼음팩을 해드리려고 윗 옷을 들췄는데... 겨드랑이 주변에

뭔가 딱지 같은 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대상포진양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 할머님께 최근에 할아버지 산소 간 적 있냐 물었다. 할머님은 딸 눈치를 봤다. 

" 엄마, 설마 또 아빠 산소 갔다 왔어요? 거길? 혼자? "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할아버지 산소가 언덕꼭대기쯤에 있는 데다가 가는 길이 험해서 자신들도 가기 힘든 곳이라고 전했다. 할머님은 외로울 때면 그곳을  몇 번이고 찾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거의 기다시피 해서...

그러면서 할머님은 " 거기나 가야 내가 덜 외로우니까... 거기 가면 내가 혼자가 아니니까."라고 말씀하시며 흐느껴 우셨다. 


할머님은 진드기에 의한 쯔쯔가무시병이었다.

쯔쯔가무시병은 쯔쯔가무시라는 세균을 가지고 있는 진드기의 유층이 사람을 물어 감염시켜 발생하는 질병이다. 주로 밭, 논이나 성묘를 다녀온 후 잠복기를 거쳐 일주일 뒤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담당의에게 바로 보고 하고 대상포진의심으로 사용되던 약을 중단하고, 독시사이클린으로 바꿨다.  그렇게 어르신 열은 떨어지고, 검사상 염증 수치나, 증상들은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님의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님의 우울감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시니 몸에 회복이 더뎠다. 

정신과 협진을 보고 노인성 우울증 진단을 받고 우울증 약을 처방했지만 할머님은 여전히 무기력감이 심했다.  할머님은 내내 울기만 하셨다. 간병하러 함께 왔던 막내딸은 자신의 일 때문에 며칠이 지나고 서울로 가버렸다. 대신에 큰 며느리가 와 있었다. 큰 며느리는 그야말로 할머님 옆을 지키고만 있을 뿐 할머님의 식사 보조는커녕, 화장실 갈 때도 간호사를 호출했다. 그러면서 내내 누군가와 전화하느라, 할머님껜 말 한마디를 건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의사들 회진 돌고 오더들이 추가되는 시간이라 많이 바빴다. 홍 할머니 침상 콜벨이 울렸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들어갔다. 이번에도 며느리가 할머니 화장실 때문에 부른 거였다. 

나는 일단 할머님을 부축해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돕고, 며느님을 밖으로 불렀다.


" 보호자분, 화장실 이용은 보호자분이 하셔야 하고요. 저희가 간병까지 도와 드리기엔 지금 바쁜 시간이에요. 그리고 환자분 우울증 진단받은 건 아시죠? 낮에는 좀 모시고 휠체어로 산책이라도 나갔다 와 주세요. 평소 좋아하는 것 있으면 좀 사다가 드실 수 있게도 좀 해주세요. 그리고, 환자분께 말도 좀 건네어주시고요." 


며느리는 팔짱을 낀 채 못 마땅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 간호사아가씨 결혼 안 했죠? " 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내 말에... "결혼을 해봤어야 알지. 며느리가 시어머니랑 할 말이 뭐가 있어요?. 직장에 눈치 봐가며 연차 내고 이렇게 와 있는 것만 해도 내 할 도리는 차고도 넘쳐요. 그리고, 간호사면 환자나 봐요. 무슨 오지랖이야." 


하더니 본인 저녁 먹으러 간다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버렸다.

곧... 병동 환자분들 저녁 식사 시간인데 말이다. 


다른 환자분들 약 돌리고, 이것저것 챙기고 홍 할머님께 갔더니 할머님은 여태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 계셨다.  식사하시라고 할머님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호흡음이 이상했다. 할머님은 너무나 숨이 찬 듯 헐떡이셨다.  바로 산소를 연결하고 담당의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을 할머니의 검사 및 처치가 이루어졌다. 며느리에게 아무리 연락해도 연락이 되질 않았다. 큰 아들에게 전화로 현제 어머님 상태를 담당의가 설명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밥 먹으러 나갔던 며느리가 돌아왔다. 이미 담당의는 퇴근한 후였다. 나는 며느리에게 고비는 넘겼지만, 할머님 폐가 쪼그라들어 있어 다시 위험할 있다고 전했다. 아들에게는 전화로 담당의가 통화했다고 말이다. 


설명에도 며느리는 시큰둥하게 반응 보이며,

" 그래서요? 그럼 오늘 죽을 수도 있어요? "라고 내게 되물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보호자분?"라고 되묻는 내게...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간호사가 왜 이리 호들갑인지..." 

하더니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난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 보호자분, 환자분 지금 상태 안 좋으셔서 보호자분 상시 대기 하셔야 해요."

 돌아온 대답은 

" 아들 곧 도착할 거예요. 전 교대해요. "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 버렸다. 


다음 날,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홍 할머니 보호자가 불만 신고를 했다고 말이다.  

내가 보호자에게 매번 잔소리하며 큰소리 치고 말할 때마다 땍땍 거리고 너무 불친절하다고 건의함에 써냈다고 한다. 


결국 홍 할머니는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으셨고, 며칠 뒤에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할머님의 소원대로 말이다. 할머님이 이젠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할아버님과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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