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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Nov 06. 2024

누구를 위한 이별인가요?

치매병동에 가끔 부부가 한 번에 입원하실 때가 있다.

2인실이 아니고서야 어차피 따로 입원하시긴 하지만, 대부분은 같은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때로는 보호자들의 요구에 의해서 혹은 컨디션이 달라 다른 병동으로 입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님은 90세 남자로 치매, 당뇨, 혈압, 전립선 비대증 등의 진단명으로 입원하셨다.

치매란 진단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일상대화는 전혀 문제없으신 분이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이** 어르신은 날 보자마자  " 선생님 오늘도 약속 지켜줘요 토요일이니까 난 매일매일 오늘만 기다리며 하루를 버텨요 선생님만 믿어요." 하며 다짐을 받으셨다. 


이 **어르신은 몇 달 전 할머니(부인)와 함께 입원하셨다. 하지만 보호자(아들, 딸)들의 간곡한 부탁에 각자 다른 병동으로 입원되셨다.  보호자분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병원에 입원 전에 요양원에 함께 입소해 계셨었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치셔서(강박에 가깝고, 의부증 증세도 보인다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계속 같이 있으려고 하여 할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기에 이제는 어머님 보단 아버님이 우선이라며 절대 두 분을 만나지 않게 해 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보호자분들 생각이고 막상 입원해서 어르신들 상태를 보니 할머님은 중증치매로 제대로 대화도 어려운 상태였고, 매일 울기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찾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할어버지께서 입원한 첫날부터 할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날 볼 때마다 애원하셨다.


"선생님, 

내가 나이가 90이요. 내가 살아봤자 얼마나 살겠소. 그저 내 마누라 얼굴이나 보면서 그리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만날 수 없겠소..."


나는 몇 차례 보호자분들과 면담 끝에 담당의 동의하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게 해 드리는 걸로 합의를 봤다.

난 이대목에서 사실 화가 났었다. 아무리 치매환자라도 스스로 이 정도쯤은 선택할 권리는 있지 않을까?

왜 이걸 보호자와 담당의가 결정해야 하는지 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질 테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할 때마다 보게 해 드리자고 아무리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시작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의 만남,

첫 만남땐 이**어르신만 애달파하시며 우시고 할머님은 반응도 안보이시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시다 헤어지셨다. 할머님은 할아버지를 잊은 듯했다. 아무리 할아버지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야~ " 하며 말을 건네어도 할머니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셨었다. 


그랬는데, 

그다음 주는 만나면서부터 할머니가 대성통곡하며 울고 불고 하시는 통에 우리 모두 당황했다. 

거기다, 할머니는 병동으로 돌아가셔서도 계속 소리 지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셨다고 한다. 그날 잠도 안 주무시고 불안해하셔서 담당의가 만남 금지령까지 내렸었다. 


그렇게 한주를 만나지 못한 채 건너 띄게 되었다. 

토요일인데 만날 수 없다는 걸 들은 할아버님은 갑자기 혈압이 180까지 오르고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하시며 거의 panic상태를 보이셨다. 내게서 할머니 다시 만나게 해 드리겠다고 확답받고 나서야 안정을 찾으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세 번째 만남...

복도에서 만나자마자 우시며 할아버지께 손을 뻗어 잡으려는 할머니... 

너무 애틋하게 할머님 손에다 뽀뽀를 하시던 이**어르신...

두 분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전기가 계속 오기 시작했다. 

내 찌릿함이 어르신들의 간절함에 감히 비길수 있을까...


두분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15분, 

우리가 모시러 면회실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시며 할아버지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셨다.

할머님은 오늘도 내가 퇴근할 때까지 병원이 떠나갈 듯 소리 지르고 우셨다.

이**어르신은 날 찾아와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보고 왔어요. 근데, 선생님 내가 이제 살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그저 얼굴만이라도 매일 보게 해 주면 안 될까? 이리 보고 나니 맘이  아프네."


월요일 미팅 때 의논해 보겠노라 말씀은 드렸지만, 자녀분들이 너무나 확고하셔서 쉽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들은 할아버님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걸 택했다. 

갑작스러운 이**어르신의 전원이 결정되고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보호자들은 아버님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이 아버님을 위하는 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년의 이 애틋함과 사랑을 왜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지 화가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전원 가시던 날 "선생님, 우리 할머니 잘 부탁해요. 꼭... 한 번씩 들러서 우리 할머니 잘 있는지 확인해 줘요."라고 몇번이나 부탁하셨다. 그렇게 이**어르신은 강제로 다른 곳으로 전원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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