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뭐라고 2
지금이라면 내 선택이 달랐을까?
김 할아버지는 유명한 사립 남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셨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셨고 고지식한 분이셨다.
평생 남자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분이라 체벌이 몸에 베였던 분이었다. (지금이라면 큰일 날 일이었겠지만, 내 학창 시절을 포함한 그 당시엔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니...)
며느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더 신경질 적으로 변하시고, 난폭해지셨다고 했었다.
그래서 입원해서도 우리 한테도 늘 버럭 소리를 자주 질렀었고, 본인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셨다.
특히, 내가 담배를 압수하고 나서부터는 부쩍 짜증이 많아지셨다.
"할아버지 지금 거의 돌아가실 뻔했는데... 뭐라고요? 담배를 달라고요? 지금 제정신이세요?"
"철썩" 내 왼쪽뺨이 할아버지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날 정도로 붉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나를 금방이라도 다시 때릴 것처럼 날 노려 보고 있는 표정이었으나 들어 올린 손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곧 죽을 건데... 내가 피고 싶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또 맞기 싫음 내 담배 내놔."
나는 그 순간 오늘로 이런 실랑이를 끝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내 오른쪽 뺨을 할아버지 얼굴 가까이 들이대었다.
"자요~ 이깟 뺨 얼마든지 더 때려 보세요. 더 치세요. 대신 할아버지 인생에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담배란 단어는 두 번 다시 찾지 않으셔야 해요. 맘대로 때려 보세요."
내 말에 옆에 서 있던 아드님이 내 몸을 뒤로 당기며 "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이러지 마세요. " 하며 날 만류 했다. 하지만 난 고집을 꺽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는 가만히 날 쳐다보기만 하셨다. 분명 속으론 '뭐 이런 또라이가 있어?' 하며 잘 못 건드렸다 싶으셨을 터였다. 할아버지 눈 빛이 심하게 당황하며 요동치는 게 보였다.
난 다시 할아버지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들이대며 한 번 더 말했다. " 더 때리시라니까요. 할아버지 담배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절 때려 보시라고요." 그러자 거의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 미안해, 때린 건 실수야.."
난 그대로 얼굴을 할아버지 가까이 들이댄 체 " 뭐라고요? 안 들려요. 이제 담배 안 찾으신다 약속하실 거예요?"
하는 내 말에 " 알았어. 그깟 담배.. 이제 안 피우면 되잖아. 이제 그만 나한테서 좀 떨어져." 하자 며느님이 얼른 내 몸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담당의는 날 쳐다보며 고개를 휘저으며 두 손을 가운 주머니로 질러 넣더니 방을 나서면서 " 서간호사 잠깐 나 좀 봐요" 한다.
" 아니, 서간호사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다 진짜 또 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들이대? 들이대길... 아이고야.. 난 내 심장이 쫄려서... 가서 거울 좀 봐봐... 뺨이.. 아이고..." 그러더니 뒤 따라 나오던 다른 간호사를 휙 쳐다보더니 " 얼음팩 좀 가져다 대 줘요. 이거 오래갈 것 같은데..." 한다.
간호사실로 돌아와 동료가 대어 주는 얼음팩을 얼굴에 가져다 대니 그제야 내 뺨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서샘, 괜찮아요? 저러다 저 할아버지 난동 더 심해지면 어떡해요? 가뜩이나 주사 한 번에 못 놓으면 난리난리 치는 분인데... 내일부터 어떡해요?" 하며 걱정한다. 잠시 후 김할아버지 병실에서 콜벨이 울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동료 간호사는 가기 꺼려하는 느낌이라 얼음을 때며 내가 일어섰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들어가서 " 부르셨어요?" 하자 며느님과 아드님은 동시에 " 화장실 다녀오셨는데 이거 모니터가 안 나오는 것 같아서..." 말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본다.
" 잠시만요. 바로 봐드릴게요. " 그러곤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가 모니터를 확인하곤 다시 연결했다. 그러곤 할아버지에게 산소를 연결하곤 " 할아버지 숨차던 건 좀 어떠세요? 아까보단 괜찮으세요? " 하고 묻자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계속 창문을 응시하던 김 할아버지는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내 뺨 쪽을 흘깃 쳐다보더니 " 아까는 정말 미안해요. 돈 줄테니 꼭 치료받아요. " 한다.
늘 반말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존대를 하셨다.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와서 " 할아버지 갑자기 왜.. 높임말을.... 저한테... 하시던 대로 하세요. 그리고, 뺨에 무슨 치료를 해요. 하하하하 " 하며 내가 웃자 할아버지도 날 따라 웃으셨다.
그 뒤, 할아버지는 한동안 날 볼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 하셨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간호사들에게 그 어떤 짜증도, 신경질도 더이상 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날이면 아드님을 시켜서 수시로 간호사실에 치킨이며 피자등을 사다 주시고, 퇴원할 때면 음료수를 포함한 간식거리를 잔뜩 사다 주고 가셨다.
할아버지는 자주 입퇴원을 반복하셨다. 그러다, 이번에는 정말 말씀도 잘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셨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일주일 정도 입원 하셨다가 퇴원하셨지만 새벽녘 입원 하신 이후론... 도무지 상태가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 갈 무렵 어느 날 오후,
이브닝 근무를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방에서 호출이 왔다. 뛰어 들어간 내게 " 서 선생.. 나 오늘 갈 것 같은데... 정말 마지막 소원이야. 나 담배 한 모금만,,, 딱 한 모금만 하면 안 될까? 나 오늘 죽을 것 같아." 하신다.
난 할아버지 산소 포화도를 확인하고 청진기로 호흡음을 확인한 뒤... " 할아버지, 누구 맘대로 오늘 죽는단 말씀을 하세요. 제가 오늘 근무하는 동안은 그런 일 없으니... 담배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지금 폐에 가래가 너무 많아서 숨 쉬는 게 더 힘들어지신 거예요. 제가 네블라이져 가져올게요." 하고는 나와 간호사실에서 네블라이져를 챙겨 가지고 들어갔다. 이제는 기운이 없으신지 축 늘어지시는 할아버지를 침상채로 일으켜 앉혀서는 네블라이져를 해 드렸다. 마스크를 입에 대어 드리고 가만히 옆에 서 있는 나를 한 번씩 쳐다보시더니 웃어 보이셨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서서 할아버지 등을 천천히 쓸면서 "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저 믿죠? 오늘 밤만.. 이 고비만 우리 잘 넘겨 보자고요. " 그러면서 네블라이져를 다 하실 때까지 옆에 있었다.
퇴근할 무렵이 되어 라운딩 하면서 할아버지 방에 들렸다. 아까 보다는 훨씬 호흡이 안정된 상태였다. 난 늘 그랬듯 " 할아버지 저 퇴근해요~ 내일은 오전 근무니까 아침에 올께요. 그동안 우리 선생님들 너무 부르지 말고, 말 잘듣고 계세요. 오늘밤은 아무생각 말고 편하게 주무세요." 하며 인사를 건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셨다. 내가 옆에 가자 내 손을 잡더니 "서 선생, 그동안 고마웠어." 하신다. 난 웃으며 " 뭐예요. 갑자기? 내일 아침에 온다니까요~ 뭐야.. 설마 또 담배 피우고 싶단 말 하려고 이러시는 거 아니죠? " 했더니 " 담배가 간절하긴 하네... 딱 한 모금만 피면 소원이 없겠어~." 하셨다.
난 할아버지가 잡고 있는 손을 빼면서 할아버지 팔을 치며 " 할어버지~~ 자꾸 담배 이야기 또 하시면 내가 앞으로 이 방엔 안 들어오는 수가 있어요." 하자 할아버지는 웃어 보이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인사하고 나는 퇴근을 했다.
이 인사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채....
다음날 내가 아침 6시 40분에 출근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폐암말기라 DNR(심폐소생술거부) 상태였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새벽 4시경부터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가 이내 숨을 멈추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나 보다. 당신이 가실 걸... 그래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셨나 보다.
나중에 장례 후, 아드님 두분이 병원으로 찾아 오셨다. 할아버지께서 마지막 순간에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날 보고 싶어 하셨단 말을 전하며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전했다.
난,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생각했다.
만약 지금이라면....
마지막 소원인 담배 한 모금... 그깟 담배 한 모금... 소원을 못 들어 드린 게 내내 맘에 걸린다.